[해보니 시리즈 48] 카드 없는 일주일, 현금만 쓰며 살아봤다

[해보니 시리즈 48] 카드 없는 일주일, 현금만 쓰며 살아봤다

2018.09.22.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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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니 시리즈 48] 카드 없는 일주일, 현금만 쓰며 살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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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가지고 다닌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지갑이 서랍 한쪽으로 밀려난 것은 아마 6개월도 넘은 듯했다. 주머니에는 어느 순간부터 얇은 카드 두 장이 들어간 카드지갑만 남아 있었다. 신용카드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이용하면서부터는 그마저 집에 놓고 다니기 일쑤였다.

동전과 지폐가 점차 낯설어지는 듯했던 어느 날. 체크카드와 신용카드부터 교통카드까지 어떠한 카드도 사용하지 않고 일주일간 현금만 사용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눈에 보이는 현금을 안 쓰다 보니 확실히 지출에 대해 무감각해졌다고 할까? 현금만 쓰면 내 생활이 좀 윤택해질까? 아니면 더 불편해질까?

"20,500원"
카드를 멀리하기 위해 서랍 이곳저곳을 찾아봤다. 그렇게 동전과 지폐를 모으니 20,500원이 손안에 들어왔다. 이 돈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용돈이 다 떨어질까 걱정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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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만 사용한 첫날, 평소보다 5분 정도 일찍 출근했다. 지하철 일회용 교통카드 발권기를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발권 시간을 염두에 둔 계산이었다. 처음 이용해보는 발권기였지만 일회용 교통카드를 발급받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사진을 찍느라 현금영수증 발급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현금만 써도 연말정산을 위해서는 현금영수증 발행이 필요한 것. 눈앞에서 사라져버린 화면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일반 도소매점처럼 현금영수증 발급을 위해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는 시스템은 왜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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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비용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카드번호나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할 경우 해당 정보를 암호화시켜야 한다. "암호화 장비를 개발하고 모든 발매기에 시스템을 설치하는 비용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에 이용자가 직접 등록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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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영수증을 발급받다 보니 서울교통공사에서 발급받은 영수증과 한국철도공사에서 발급받은 영수증 사이 차이도 알 수 있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발급된 현금영수증의 경우 발행일로부터 2일 후부터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철도공사에서 발급된 현금영수증은 별도의 추가 설명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철도공사에 이유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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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철도공사 측 관계자는 기자에게 "한국철도공사에서 취합한 정보를 국세청에 전달하는 소요시간이 있기 때문에 영수증 발급 후 즉시 등록은 안 된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현금영수증 등록은 발급받은 다음 날 오전 7시 이후부터 가능하다.

"참치김밥과 기프티콘"
출근길 지하철에 앉아 메신저를 여니 친구의 생일이 눈에 띄었다. 평소처럼 기프티콘을 선물하려 했는데 현금만으로는 결제가 어려웠다. "곧 만나서 맥주를 사겠다"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점심으로 샤부샤부(9500원)를 먹고 커피 한 잔(4600원)까지 마시니 이미 현금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임에도 카드를 사용할 때보다 체감상 지출은 더 크게 느껴졌다. 동전과 지폐를 하나하나 세어 지급하는 과정은 손쉽게 카드로 계산할 때와 너무나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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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참치김밥이 너무나 먹고 싶었지만, 수중에는 1500원이 전부였다. 문득 커피를 줄이고 점심값을 절약해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은행을 찾다"
점심을 먹기 위해서는 현금이 필요했다. 어떠한 카드도 사용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기에 ATM 기계 대신 은행을 찾았다. 계좌 개설부터 적금 상품 가입까지 모두 앱으로 해왔기 때문에 은행을 찾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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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증과 통장이 있어야 출금할 수 있었다. 홍채인식과 지문인식으로 모든 은행거래를 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출금을 위해 창구에 통장을 제출하는 일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현금만 쓰기로 한 첫날은 통장이 지참하지 않아 발길을 되돌리기도 했다.

"가장 불편한 건"
무엇보다 불편한 건 사용 빈도가 가장 높은 대중교통 이용이었다. 지하철을 이용하며 기본운임전용 일회용 교통카드를 발급했다가 거리가 초과해 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하기도 했다. 운임비 정산을 위해 추가로 200원을 더 지급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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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환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금 쓰기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덕분에 출퇴근길을 합쳐 20분 정도 걷기 운동을 할 수 있었지만, 가방에 노트북이라도 들어있는 날에는 버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다.

문득 버스 요금은 왜 현금영수증이 발급되지 않는지 궁금해 국세청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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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국세청 관계자는 시내버스 사업자는 소득세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의해 소비자 상대 업종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법적으로 현금영수증 가맹 등록 의무 자체가 없다는 것. 이 관계자는 "다수의 승객을 대상으로 하는 버스의 경우 현실적으로 승하차 시 안전 문제도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8 : 2"
택시는 어떨까? 개인택시로 택시 영업을 하는 민 모 씨는 최근에는 현금 지급보다 카드 결제가 훨씬 많다고 했다. "외국인이나 연로하신 분들 제외하고는 대부분 카드를 이용해 요금을 내요. 대략 카드가 8이면 현금이 2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참고로 모든 택시에서 현금영수증이 발급 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세청에 확인한 결과 택시 운송사업자는 현금영수증 가맹점 가입의 의무가 없다. 택시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카드 결제 시스템을 장착하고 국세청에 현금영수증 가맹점 등록까지 마친 택시에서만 현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하다.

"미수금"
"에이 그냥 외상 달고 가세요" 퇴근 뒤 물리치료를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는 외상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예정에 없던 체외충격파 치료(111,770원)를 받아야 했는데 수중에 가진 돈은 12,000원이었기 때문. 치료를 망설이자 의사 선생님께서는 다음에 결제하라며 사정을 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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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커피는 500원이 추가된다는 사실을 깜빡했다가 후배에게 200원을 빌려 커피를 마신 적도 있다. 모두가 앱을 통해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하는 사이 나는 동전을 세어가며 커피를 주문해야 했다.

"일시 절약"
현금만 사용했던 지난 일주일은 예상보다도 훨씬 불편했다. 은행까지 찾아가 계좌이체를 해야 한다는 불편함에 인터넷 쇼핑은 전부 멈췄다. 돈이 굳는 기분이었지만 사실 잠시뿐이었다.

목표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각종 카드와 ○○페이들을 사용하니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껴졌다. 눈 깜빡할 사이 이루어지는 결제도 그랬지만 카드나 페이를 이용할 경우 현금보다 높은 할인율과 다양한 혜택이 제공된다는 사실도 너무나 큰 유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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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급을 깜빡 잊거나 습관처럼 버려버린 영수증 몇 개를 제외하고 일주일간 총 27개의 영수증을 모았다. 이제는 영수증을 수집해 가계부마저 자동으로 작성하고 분석해주는 앱을 옆에 두고 다양한 감정이 교차했다.

지갑 덕에 뒷주머니가 불룩해지는 일도 없고 손끝에 동전 냄새가 밸 일도 없어 편하지만, 시골의 작은 마을이나 연세가 지긋한 노인들은 오히려 기술로부터 소외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지마저 QR코드로 구걸한다는 중국에서는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 회장이 2022년까지 '현금 없는 사회'를 만들겠노라 선언했다고 한다. 굳이 그의 선언 없이도 종이돈과 동전은 이미 우리 곁에서 너무 멀어진 듯했다.

YTN PLUS 김성현 기자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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