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나누던 움막' 팽목항 분향소 역사속으로

'아픔 나누던 움막' 팽목항 분향소 역사속으로

2018.09.04. 오전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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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상훈 /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김광삼 / 변호사

[앵커]
뉴스타워 이번에는 두 분의 전문가와 함께 국내 주요 이슈 짚어보겠습니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 그리고 김광삼 변호사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먼저 살펴볼 주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를 위한 공간이죠. 진도 팽목항의 분향소가 3년 8개월 만에 어제 철거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관련 내용을 살펴보겠는데요.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를 인양한 뒤에 분향소를 정리하겠다라고 당초에 약속을 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는 차원에서 철거가 진행되는 거죠?

[인터뷰]
2014년 4월 16일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그 9개월 뒤인 2015년 1월 14일날 진도군 시민들의 도움으로 분향소를 열게 됐고요. 그러면서 세월호 선체 인양하고 여러 해저 수색을 마치면 분향소를 철거한다는 약속을 세월호 참사 일가족들이 하고 3년 7개월 만에 철거하게 된 과정이었습니다.

[앵커]
가슴 아픈 그런 장소가 아닐까 싶은데 유가족들이 희생자들의 사진을 옮기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다고 하죠?

[인터뷰]
일단 희생자가 304명이잖아요. 304명이나 되기 때문에 시신 옮기는 과정이 일반적인 물건을 옮기는 과정이 아니고 결국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야 하고 또 가슴에도 새기는 그런 작업이라고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시간은 많이 걸렀다고 보고요. 일단 분향소 설치가 사실은 세월호가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참사가 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304명의 희생자가 있었는데 295명은 일단 인양이 됐어요.

그런데 나머지 9명이 인양이 안 돼서 그리고 그 당시 분향소를 적어도 나머지 9명을 인양할 때까지는 여기서 끝까지 남겠다 그래서 분향소를 설치한 거거든요. 그런데 사실 시간이 많이 걸렸고. 결국 미수습자 9명을 전체 찾아야 하는데 찾지 못했고 선체는 인양이 됐잖아요. 그래서 해저 수색도 더 의미는 없어졌습니다마는 분향소 자체가 사실은 안산에 있는 4.16 기억 시설보다는 훨씬 더 의미가 있죠. 왜냐하면 일단 참사가 일어났던 장소고 또 이 자리에서 유가족과 또 희생자들을 인양할 때마다 만남의 장소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거기 기다림의 등대, 화면에 나왔습니다마는 그런 등대들은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아마 영원히 기억할 수 있는 그러한 장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304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사고의 현장, 팽목항 분향소가 철거가 되는데 앞으로도 그 의미를 되새겨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죠?

[인터뷰]
아무래도 세월호 참사의 의미가 구조적인 문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 하는 것에 대한 어른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그대로 들었던 것 때문에 많이 희생됐던 부분.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부족했던 안전의식이라든가 국민적 안전에 대한 여러 가지 의식들을 우리 국민적인 부분에서 그걸 고양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미,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그 장소인데 참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분향소 자체가 철거된다는 것이 그냥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사실 아쉬움이라고 할까요? 아쉬움이라는 표현이 너무 과도하다고 본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억할 수 있는 어떤 장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하는 국민적 의식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앵커]
앞서 말씀하셨던 기다림의 등대라든지 분향소 주변에 설치돼 있던 조형물들은 어떻게 처리가 되는 건가요?

[인터뷰]
일단 사진과 유품은 안산에 있는 4.16 기억 장소. 그쪽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마 지금 안산시에서는 대단위의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 있다고 봐요. 보수단체 시민들이 굉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마는 아마 제가 볼 때는 차질없이, 많은 시민들이 원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공원은 계속 진행될 것 같이 보이고요.

그다음에 내외부에 있는 추모 조형물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2021년도에 국민해양안전체험관이 개관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쪽으로 다 옮기겠다는 취지고 그다음에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방명록이랄지 그런 것들도 전부 다 일단 굉장히 의미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엄청난 국민들이 방문을 했고 그 방문록에 보면 굉장히 간절한 내용이 많아요. 제발제발 간절히 돌아오기를. 보고 싶다, 미안하다, 잊지 않을게, 기억하겠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보면 생생한 역사적 기록이고 향후 이게 재발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외침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이러한 방명록도 함께 옮겨져서 계속적으로 영구적으로 보관하도록 그렇게 방침이 세워져 있습니다.

[앵커]
어쨌든 유족들은 사고 현장에 있는 추모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쉬움 또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는데 말이죠. 이 현장에 추모공원을 세워야 된다 하는 그런 목소리도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원래 팽목항이라는 게 진도항 2항 개발사업을 하던 중에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그게 정지돼 있는 상태였고 그러면서 항만 공사가 진행되면서 배후지정학 개발 등등 하면서 아까 말씀하신 국민해양안전체험관이 건립이 되고 거기로 옮겨진다고 하니까 어쨌든 배후지로 가니까 그 공간 자체는 없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잊혀진다고 그러면 사실은 찾아가서 봐야 되는 건데 사실 의미가 있는 건 그 자리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이것에 대한 합리적인 방안이 나와야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지금 있는 곳도 보존하면서 진도 신항도 같이 하는 이런 방식이 좀 중요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사실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면 세월호 참사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유가족들의 아쉬움 그리고 국민적 아쉬움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어른들의 잘못으로 많은 아이들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고였기 때문에 그동안에도 추모객들이 많이 팽목항을 찾았었는데 앞으로도 이런 추모를 할 수 있는 그런 시설들이 계속 유지가 돼야 되겠죠?

[인터뷰]
우리가 생각할 때는 사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 5개월 지났어요. 그리고 분향소가 설치된 지 3년 9개월 됐거든요. 그러면 생각 같아서는 이거 다 잊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데 아마 지금 분향소를 철거하는 순간까지 많은 국민들이 오셨다고 해요. 그래서 휴대폰을 통해서 사진도 많이 찍고 그런 걸 보면 세월호의 아픔이 얼마나 우리 국민 마음속에 내재돼 있는지. 사실 일반적으로 다른 사건에서 4년 5개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국민의 관심을 받고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거든요.

그렇지만 일단 304명이라는 아까운 생명이 희생이 되고 또 희생되는 데 있어서 어른들의 잘못또는 국가의 잘못 이러한 것들이 사실은 원인이 돼서 이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우리가 2차대전 때 홀로코스트랄지 여러 가지 물론 희생자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렇지만 영원히 독일 같은 데서도 자기들의 부끄러운 역사지만 계속 그걸 보존하고 거기에 대해서 많은 투자를 하고 반성하는 그런 의미가 영구적으로 지속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단 안산에 제가 볼 때는 추모공원이 되지만 분향소 있던 자리도 어느 정도 추모공원을 설립하는 걸 검토하는 것도 제가 볼 때는 바람직하다 이렇게 봅니다.

[앵커]
3년 8개월 만에 팽목항의 분향소가 철거가 되지만 세월호가 우리에게 준 의미와 역사적인 교훈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모두가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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