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헌재, 과거사 피해구제 결정...대법원과 정면충돌은 피해

[취재N팩트] 헌재, 과거사 피해구제 결정...대법원과 정면충돌은 피해

2018.08.31. 오전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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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과거사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배상받을 권리를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제(30일) 나왔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원의 재판을 취소할 수는 없다면서도, 과거사 문제에서는 사실상 양승태 대법원의 기존 판결과 엇갈리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취재기자 연결해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신지원 기자!

이번 결정으로 과거사 피해자들이 보상받을 길이 열린 셈인데,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정을 내린 건가요?

[기자]
헌법재판소는 어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민주화보상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민주화보상법은 군부 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탄압을 받은 피해자들이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로 간주해서 더 이상 소송이나 분쟁을 제기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헌재는 이 법만으로 피해자의 정신적 손해까지 배상할 수는 없다면서, 보상금을 받았어도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앞서 민주화 운동 피해자 중 일부는 지난 2000년 제정된 이 법에 따라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습니다.

이후 2013년 긴급조치 위헌 결정이 나오면서 과거사 피해자들이 재심으로 무죄 선고를 받았는데,

이미 보상금을 받았기 때문에 국가를 상대로 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헌법재판소가 대법원 판결의 근거가 된 '민주화보상법'이 일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추가로 배상받을 길이 열린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권리, 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이번에 생겼다고요?

[기자]
앞서 양승태 사법부 시절인 2013년, 대법원은 과거사 피해자들이 무죄 확정판결을 받고 나서 6개월이 지나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국가배상 소멸시효를 따지는 민법 조항을 과거사 사건에도 적용한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헌법재판소는 과거사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한을 보통의 경우와는 다르게 봐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 폭력 사건은 진상규명을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특별한 기준으로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로써 앞으로 부당하게 유죄선고를 받았던 사람들은 재심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날로부터 3년, 민간인 집단 희생 피해자들은 과거사 정리 단계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앵커]
긴급조치 피해 사건 중 일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요?

[기자]
지난 2015년 백기완 통일연구소장 등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의 확정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다시 심판해달라는 취지로, 사실상 헌재가 대법원의 상위기관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었는데요.

헌법재판소는 어제, '법원의 재판은 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헌법재판소법 조항이 합헌이라는 기존 결정을 유지했습니다.

또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재판을 취소해달라는 헌법소원에 대해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습니다.

긴급조치가 위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도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해석을 따랐을 뿐이라며, 헌법소원 대상에 해당하는 예외적인 재판으로 볼 수 없다는 겁니다.

[앵커]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양승태 사법부 시절 대법원의 판결 논리를 뒤집은 셈인데, 앞으로 과거사 피해구제는 어떻게 진행될 전망인가요?

[기자]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을 자세히 보면,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하거나 지적하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법원이 법 해석을 잘못했다'는 한정위헌 결정이 아니라, '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법원이 판결의 근거로 들었던 조항이 일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사건 당사자들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길을 터줬습니다.

사실상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하면서도 정면충돌은 피한 셈입니다.

하지만,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따라야 할 의무는 없어서, 앞으로 대법원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관심입니다.

법원이 이번 과거사 사건에 대해서도 헌재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열려 있는 만큼,

헌법소원을 낸 피해자들이 재심을 요구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구제할 수 있을지는 법원의 결정을 기다려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헌법재판소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신지원 [jiwonsh@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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