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 우생순' 꿈꿨던 여자 아이스하키팀 '속앓이'

'빙판 위 우생순' 꿈꿨던 여자 아이스하키팀 '속앓이'

2018.01.17. 오후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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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아르바이트생, 피아니스트, 그리고 미 하버드대 출신, 이런 이력을 가진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정말 각양각색이라고 할 수 있겠죠?

지금껏 정규팀이 창설된 적이 없는 아이스하키 불모지 한국에서 이들은 그저 아이스하키가 좋아 풀뿌리처럼 모였습니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는 '동네북'이었습니다.

2003년에는 초등학생들과의 경기에서 진 적도 있습니다.

"여자 아이스하키도 국가대표가 있어?" 라는 무시와 무관심 속에 그들은 끊임없이 기량 향상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올해 초,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는 아이스하키 강국 중국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저변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이런 성과를 일궈내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선수들은 학업, 생업과 아이스하키를 병행하며 스틱을 잡았습니다.

전형적인 '음대생' 코스를 밟으며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 선수는 재수 시절 갑자기 아이스하키를 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하며 가족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쳤습니다.

어느덧 고참 선수가 된 한 선수,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면 혼자 싸움을 하지만, 아이스하키는 늘 동료들이 있다.

'원 바디(우리는 한 몸)"가 좋다며 웃었습니다.

이규선 선수는 밤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훈련했지만 낮에는 편의점, 고깃집 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낭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허리 부상으로 은퇴했지만, 대표팀 비디오코치 자격으로 동생들과 함께 꿈의 무대, 올림픽에 나갑니다.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랜디 그리핀 선수는 국가대표를 위해 미국 하버드 박사 과정을 중단하고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랜디 선수의 유니폼에는 어머니의 이름 '희수'와 등 번호 '37번'이 새겨져 있는데요,

편찮으신 외할머니가 평창올림픽에서 자신의 등 번호와 태극마크를 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외할머니가 태어난 해를 등에 새긴 겁니다.

각자의 사연을 안고 후회 없는 경기를 펼치고자 다짐했던 대표팀, 좋은 성적을 올리면 혹시 실업팀이 한 곳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오직 그 소망만으로 청춘을 바쳤습니다.

하지만 단일팀 이야기가 나오며 함께 땀을 흘려온 동료 선수가 실제 경기에선 빠질 수도 있는 상황에 선수들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세라 머리 감독은 "올림픽이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단일팀 얘기가 나온다는 게 솔직히 충격적" 이라며 조직력에 해가 될 것을 우려했는데요.

우리는 한 몸, '원 바디'를 외치며 달려왔던 선수들, 평창올림픽에서도 원 바디를 외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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