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N팩트] 조종사 행세로 옛날 화폐 사기...3번째 '판박이' 범행

[취재N팩트] 조종사 행세로 옛날 화폐 사기...3번째 '판박이' 범행

2018.01.04. 오후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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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 대형 항공사의 조종사 행세를 하며 옛날 외국 화폐로 사기를 친 남성이 서울 강남에 또다시 나타나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지난 2011년과 2015년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범행인데, 피해자들은 이번에도 감쪽같이 속았습니다

자세한 내용 취재기자 연결해 들어보겠습니다. 김태민 기자!

먼저 사건 개요부터 다시 짚어볼까요?

[기자]
사건이 일어난 건 지난달 22일,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저녁이었습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수입 명품 상점에 49살 남 모 씨가 나타납니다.

남 씨는 스튜어디스의 소개를 받고 왔다며, 자신을 대한항공 기장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12만 원 상당의 신발 한 켤레를 골랐는데요, 이 값을 브라질 화폐로 치르겠다고 한 겁니다.

피해 상점 주인의 말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피해 상점 주인 : 브라질 화폐고, 지금 막 귀국해서 공항에서 오는 길이라 우리나라 돈이 없고 외화밖에 없는데 결제가 가능하냐.]

1,000 헤알, 우리 돈으로는 약 32만 원 정도라고 설명하면서 신발값을 뺀 거스름돈 20만 원도 챙겨 유유히 상점을 빠져나갔는데요.

알고 보니 이 돈은 1994년 브라질 화폐개혁 이후,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구권'이었습니다.

피해자를 안심시키려고 건넸던 연락처도 모두 가짜였는데요.

상점 주인은 그때야 뒤늦게 사기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앵커]
보기에 따라서는 조금 어설플 수도 있는 사기인데, 피해자가 속은 이유는 뭘까요?

[기자]
범인은 상점 주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러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우선 겉옷 안에 항공사 셔츠와 넥타이를 입고 피해자에게는 미리 만들어둔 가짜 위조 신분증을 보여줬습니다.

또 수입 매장 특성상, 외국에 나갈 일이 많은 상점 주인에게 여러 비행기 관련 지식을 줄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브라질 화폐는 지난 1994년 화폐 개혁 이후에는 제일 단위가 큰 경우가 100헤알로 바뀌었는데요.

일반 시민들은 이런 사정에 어둡고 외국 지폐가 생소하다 보니, 남 씨의 말에 속아 넘어갔습니다.

여기에다 부인 몰래 신발을 사는 거라면서 카드결제가 곤란하다고 둘러대, 의심을 피했습니다.

[앵커]
생각할수록 황당한 수법인데 이번 범행이 처음이 아니라고요?

[기자]
남 씨는 이미 지난 2011년과 2015년, 똑같은 수법으로 범행을 저지르다 두 번 모두 덜미를 붙잡혔습니다.

지난 2015년에는 수도권 일대를 돌며 상인 30명을 상대로 약 8천만 원을 가로챘습니다.

이번 범행과 마찬가지로 조종사를 사칭하면서 옛날 외국 화폐로 물건값을 결제하고 거스름돈을 챙겨 달아났습니다.

주로 손님 한 명이 아쉬운 소규모 상점들을 노렸는데, 검거 당시 남 씨의 말 들어보겠습니다.

[남 모 씨 / (지난 2015년) : 교도소에서 알게 됐습니다. 같은 수법을 쓰던 사람이 들어왔었습니다.]

3년 전,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도 남 씨의 이번 범행 소식을 듣고는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특이한 범행 수법 때문에 기억이 남았다며, 당시 남 씨가 일정한 주거지 없이 도망 다녀 검거에 애를 먹었던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사기범이 범행에 쓴 외국 화폐는 어디에서 난 겁니까?

[기자]
지난 검거 당시, 남 씨는 범행에 쓴 옛 외국 화폐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실제로 인터넷 화폐 수집 사이트에 들어가 봤더니, 지금도 옛 외국 화폐를 많아야 만 원 안팎의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모두 실제로 사용됐던 지폐들이기 때문에 위조방지 무늬 등이 남아있어 의심을 피하기 좋았던 겁니다.

여기에다 옛 지폐를 이용한 범죄는 단순 '사기 혐의'가 적용돼 '화폐 위조'보다 훨씬 형량이 가볍습니다.

이 점 또한 옛날 화폐가 범행 도구로 활용되기 쉬운 특징이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은 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실제 사용이 가능한 지폐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지금까지 사회부에서 전해드렸습니다.

김태민 [t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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