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닝] "이별 후 행복했나요" 조선 마지막 세자빈 쓸쓸한 죽음

[이브닝] "이별 후 행복했나요" 조선 마지막 세자빈 쓸쓸한 죽음

2017.12.06. 오후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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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자 하나만 믿고 이국땅에 정착했던 이 분.

하지만 싸늘한 차별을 견뎌야 했던 푸른 눈의 며느리.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 선생의 부인, 줄리아 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며 그들의 기구했던 사랑 이야기가 다시 한 번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는 이구 선생과 미국의 한 건축사무소에서 만났습니다.

줄리아는 이 회사의 잘 나가던 직원이었고, 이구는 갓 건축학과를 졸업한 신입 직원이었는데요.

그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이구는 줄리아에게 처음으로 춤을 청했고 두 사람은 1958년 10월 어느 비 오던 날 뉴욕의 한 성당에서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8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 오직 사랑만으로 편견을 극복했습니다.

외로운 타지 생활을 보낸 이구에게 줄리아는 때론 엄마 같은, 때론 누나 같은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결혼 후 5년, 줄리아는 남편을 따라 창덕궁 낙선재에 정착했는데요,

낯선 궁궐생활이었지만 조선왕가 마지막 여성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느질방을 만들어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사회복지법인의 장애인들에게 기술을 가르쳐, '큰 엄마'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종친들은 이방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그녀를 철저히 외면했고 후사를 잇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혼을 종용했는데요,

결국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24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됩니다.

줄리아는 이혼 뒤 하와이로 떠난 이후에도 계속 이구의 연인으로 남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본명인 줄리아 멀록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줄리아 리로 살아간 건데요,

하지만 종친회는 끝까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구 선생의 장례식에도 "굳이 온다면 막지는 않겠지만 초청은 할 수 없다"며 부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옛 남편의 마지막 길을 모자를 푹 눌러쓰고 보행보조기에 의지한 채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와 이별 후 행복했나요, 안 행복했나요?"

자신의 영원한 연인, 이구 선생을 꼭 한 번 다시 만나 이렇게 물어보는 게 마지막 소원이었다는 그녀.

손전화도 들지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다가 쓸쓸히 눈을 감았는데요.

그녀의 처연한 죽음이 주위를 숙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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