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나는' 사법시험 역사 뒤안길로

'개천에서 용 나는' 사법시험 역사 뒤안길로

2017.10.11. 오후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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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현행법상 마지막 사법시험 2차 합격자가 발표됐습니다.

사법시험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로로 일컬어지기도 했지만, 이른바 사시 낭인을 양산한다는 비판도 받아온 게 현실입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사법시험 70년을 최재민 기자가 되돌아봤습니다.

[기자]
지난 6월 치러진 사법시험 2차 합격자 55명의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내년부터는 사법시험이 치러지지 않아 법조인 양성은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이 완전히 대체합니다.

1947년 조선 변호사 시험이 시초인 사법시험은 70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법조인이 될 자격을 검정하는 현행 사법시험은 1963년 도입된 이래, 모두 59번의 시험이 치러졌습니다.

응시 인원만 71만 명, 하지만 합격자는 2만7백 명에 불과해 합격률은 3%에도 못 미칩니다.

1969년까지는 평균 60점 이상을 합격시키는 절대 점수제가 시행돼 7회 시험에서는 단 5명만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부터는 정원제가 채택됐지만 여전한 바늘구멍이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사법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한 이들은 세간의 부러움 속에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법조계는 물론 정계에서도 출세가도를 달렸습니다.

혈연이나 지연, 학연 없이도 시험결과로만 성패가 결정되기 때문에 신분상승의 수직 사다리로 여겨지기도 한 사법시험.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는 많은 젊은이가 사법 시험에만 매달려 사시 낭인을 양산한다는 비판 속에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사법연수원 기수문화와 전관예우 문제는 잊을 만하면 나오는 단골 기사였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법학전문대학원, 로스쿨이지만 이 또한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종배 / 사법시험존치고시생모임대표 : 노력과 실력으로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정직한 제도였으며…]

[이형규 /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장 : 사법시험은 고시 망국론까지 야기 했기 때문에 이 제도를 버리고…]

사법시험 존치와 로스쿨 활성화를 주장하는 측이 팽팽히 맞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인 가운데 70년 역사의 사법시험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YTN 최재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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