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일한 소방관에게 '공무상 재해' 증명하라는 국가

37년간 일한 소방관에게 '공무상 재해' 증명하라는 국가

2017.09.25. 오후 4:48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강릉에서 소방관 2명이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일이 엊그제인데 또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습니다.

희귀병에 걸린 소방관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 기나긴 소송전을 겪어야 했습니다.

1977년에 임용돼 37년간 화재현장을 누빈 이실근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만3천 번 넘게 출동했던 베테랑 소방관인 이 씨가 소뇌위축증이란 희귀 병을 얻었는데요.

야간당직 중에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까지 겪자 명예퇴직을 결심했습니다.

이때 공무상 재해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불행은 계속됐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소방관 일 때문에 희귀병에 걸렸다는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며 요양급여 지급을 거부한 건데요.

결국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내야 했고 기나긴 싸움이 시작됐습니다.

1심과 2심에서는 이 씨가 패했습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혔는데요.

유전적 요인이 있더라도 화재현장에서 독성가스와 고열에 오랫동안 노출된 만큼 발병을 촉진했을 수 있다는 점이 인정된 것입니다.

기나긴 법정 투쟁 끝에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은 이 실근 씨.

그는 "몸이 아픈 것 보다 평생을 바쳐 봉사했던 국가와 싸워야 하는 현실이 더 서글펐다"고 말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일하는 소방관에게 희귀병의 발병 원인을 스스로 규명하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일까요?

소방관의 중증·희귀질환을 소방관 책임으로만 떠넘기지 않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해 보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