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군인의 '억울한 죽음'...누가 진실을 외면하나?

젊은 군인의 '억울한 죽음'...누가 진실을 외면하나?

2017.09.08. 오전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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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표적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이던 고 김훈 중위와 허원근 일병이 최근 잇따라 순직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유족의 가슴을 태웠던 정확한 사인 등에 대한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군 당국은 별다른 사과조차 없었습니다.

반쪽짜리 순직처리에 유족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이연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1984년 4월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 최전방, 첫 휴가를 하루 앞두고 있던 22살 허원근 일병이 내무반에서 50m 떨어진 폐유류창고 뒤에서 가슴과 머리에 총알 3발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최초 수사를 담당한 헌병대는 허 일병이 중대장의 가혹 행위를 비관해 총을 연달아 발사해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하지만 살상력이 강한 M16 소총의 특성을 무시한 데다 양쪽 가슴의 총상 자국의 색깔이 확연히 차이가 나 타살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습니다.

[박래군 /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3과장 : 먼저 총상은 오른쪽에 있었고, 동시에 쏜 게 아니라는 거죠. 만약 오른쪽 한 발 쏘고 (바로) 또다시 왼쪽에 쏘고 했으면 그게 색 차이가 나지 않을 텐데.]

급기야 허 일병의 아버지는 군을 상대로 진상을 밝히기 위한 기나 긴 싸움을 시작합니다.

[허영춘 / 故 허원근 일병 아버지 : 이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대로 덮어두고 가서는 안 된다. 안 당해 본 사람들은 다 몰라요. 사람들이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몰라.]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차례 조사를 통해 '타살'로 결론 내렸지만 국방부는 자체적으로 특별조사단을 만들어 '자살'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허 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도 대법원은 군의 초동수사 부실을 근거로 '진상규명 불능'으로 판결했을 뿐,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33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러, 허 일병은 지난 5월 진상규명도, 사과도 없는 반쪽자리 순직을 받았습니다.

[고상만 / 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 순직 인정이 마치 시혜적 차원에서 국방부가 좋은 일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고 있는데요. 이 부분이 정말 잘못된 겁니다. 어떻게 죽었는지 진실을 밝혀주는 것 또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또 다른 의무라는 겁니다.]

지난 1일, 19년 만에 순직이 인정된 '김훈 중위' 역시 진상규명은 없었습니다.

[김척 / 故 김 훈 중위 아버지 : '우리는 잘못한 거 없다. 그냥 순직처리 시켜줄게' 무슨 특혜를 주는 것처럼. 유가족들은 그게 아니에요. 재조사를 의뢰해서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하지만 국방부는 유족들의 한결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입장만을 내놓고 있습니다.

[최강욱 /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 : 어차피 올라가면 자기보다 더 높은 지휘관이 있기 때문에 조사하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최고 지휘관을) 불편하지 않게 할 책임이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군은 위를 바라보는 조직이지, 아래를 바라보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유족에게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아있는 수많은 군 의문사.

그리고 진상규명에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국방부.

우리는 아직도 국방의 의무를 다하던 젊은 군인들이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YTN 이연아[yalee21@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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