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백제 토성...난개발의 그늘

방치된 백제 토성...난개발의 그늘

2017.08.30. 오전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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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발굴 당시에는 '작은 풍납토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중요시됐던 백제 시대 유적이 난개발 압력 속에 사실상 방치되고 있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매장 문화재 관리의 사각지대를 취재했습니다.

함형건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장지대. 사업장 바로 앞으로 흙벽이 길게 이어집니다.

3~4세기 무렵 백제 시대에 축조된 길성리 토성입니다.

서울 몽촌토성에 버금가는 규모로 그 둘레가 2㎞가 넘는데, 성 주변이 당시 한성백제 남방의 거점 지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남규 / 한국고고학회 회장·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 성 내부만이 아니고 성 외곽으로 굉장히 넓게 유물산포지가 분포하고 3세기부터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출토되고 있습니다.]

백제의 주요 토성임이 확인된 지 10여 년이 됐지만, 문화재로 공식 지정되지 못하고 사실상 방치된 상태. 그 사이 성 안팎으로 소규모 공장들이 우후죽순 들어섰습니다.

[정해득 /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성벽만 지정한 경우가 많아요. 성벽은 울타리고, 안에 알맹이는 (과거에) 사람들이 살던 시설들인데. 이 시설들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무방비인 거죠.]

방금 보신 길성리 백제 토성 주변의 모습을 지도로 살펴보겠습니다.

사회 전반에 규제 완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던 때죠.

2009년부터 토성 내부로 작은 규모의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 27개의 공장과 창고 등이 지어졌고 지금도 그 인근에 건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이런 중소 규모 건축에 의한 문화재 난개발 압력을 살펴봤습니다.

매장 문화재가 있을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 즉 매장문화재 유존 지역에서 그 300m 반경에, 중소형 건축 공사가 몰린 곳을 전국적으로 조사했습니다.

현행법상 사업면적 3만 제곱미터 미만이어서 문화재 지표 조사 의무가 없고, 다른 문화재 조사 대상에서도 빠졌을 가능성이 높은 공사입니다.

이렇게 매장문화재 인근에서 중소 규모 건축공사가 집중된 지역이 어디인지 보겠습니다.

1위인 경기도 화성시를 비롯해 용인시와 평택시 등 수도권 도시 5곳이 10위 안에 들었습니다.

특히 신라의 천년 고도로서 매장문화재의 밀도가 높은 경주가 3위를 기록한 점이 눈에 띕니다.

신라 고분들이 밀집한 경주 도심 일대를 살펴보니, 문화재 조사를 실시한 기록이 전혀 없는 건축공사들이 줄줄이 확인됐습니다.

2010년 이후만 48곳입니다.

경주 시청 측은 과거 범람 지역이라 매장문화재 조사에서 제외했다고 해명했는데, 고고학 전문가는 문화재 행정에 허점이 있다고 경고합니다.

[안재호 / 동국대 경주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 범람 되었다고 해도 모래나 자갈에 위해서 잘 보존되어 있을 지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런 지역은 반드시 발굴을 충분히 해야 되고 깎여 나갔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되겠습니다.]

옛 도읍지뿐 아니라, 조선 시대 각 지방의 행정 중심지역이었던 읍치, 그리고 선사시대 유적이 발굴되는 곳들도 매장 문화재 밀도가 높아 별도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박순발 /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 청동기 시대 유적이 있으면 주변 3km 이내에 유적이 있을 확률이 95% 이상입니다. 전통적인 인구 밀집 지역 읍면 소재지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중심 지역을 눈여겨봐야 하고 그런 점에서 (문화대 지표 조사) 3만㎡ 기준이라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고고학적인 중요성에 무관하게, 일률적인 잣대로 매장문화재 조사 여부를 결정하는 현행 제도하에서는 소중한 문화유산이 훼손될 위험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YTN 함형건[hkhahm@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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