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갈비뼈 부러졌는데 피해여성도 가해자?...경찰 대응 논란

단독 갈비뼈 부러졌는데 피해여성도 가해자?...경찰 대응 논란

2017.07.25. 오후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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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 남자친구의 폭행에 시달리던 여성이 폭력을 막아서다가 이른바 '쌍방폭행 가해자'로 입건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무려 8달이 지나서야 무혐의가 입증됐지만, 그동안 피해 여성은 보복의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수사기관의 대응은 여전히 뒷걸음질 치고 있습니다.

신지원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여덟 달을 사귄 남자친구는 이별 이후 '폭군'으로 돌변했습니다.

집안에 갇혀 맞기를 수차례, 박 모 씨는 갈비뼈 두 대가 부러져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괴로웠던 건 끈질긴 협박 전화.

[가해 남성 : 너는 아주, 너는 내가 아주 가만히 안 놔둘 거야 XXX아. (우리 헤어졌어요.) 너는 내가 평생 가만히 안 놔둘 거야.]

일터까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온 전화에 직장마저 잃은 박 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오히려 '쌍방폭행' 가해자로 몰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휴대전화를 빼앗으려는 전 남자친구와 몸싸움을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박 모 씨 / 데이트폭력 피해자 : 자기를 찌르고 가라고 그러지 않고는 안 보내준다고. 나가는 중에 밀치고 밀쳐야 나가죠. 안 비켜주니까….]

거짓말 탐지기라도 써서 철저히 조사해달라는 호소에도, 경찰은 전 남자친구가 제출한 전치 2주 진단서에만 집중했습니다.

[경기도 용인 서부경찰서 관계자 : 무조건 고소장이 접수되면 입건을 해야 하니까…. 실랑이하는 부분에서 서로 몸싸움이 벌어졌다는 점에 대해 CCTV도 없고 진단서를 제출하니까….]

이렇다 할 보호조치 없이, 불안과 압박 속에 버티던 박 씨는 8개월 뒤에야 겨우 검찰에서 혐의를 벗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 씨는 심리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여전히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박 모 씨 / 데이트폭력 피해자 : 그 사람의 차, 비슷한 외모, 살짝만 스쳐도 심장이 너무 두근거리고 힘들어서 머리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고….]

전문가들은 '정당방위'에 대한 좁은 해석이 데이트폭력 피해자를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신진희 /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 : 우리나라는 정당방위를 굉장히 협소하게 보고 있어서 피해자가 같이 맞대응을 하다가는 본인도 가해자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도망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게 되거든요.]

미국이나 영국 같은 해외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이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방위도 폭넓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쌍방폭행 혐의가 악용되는 우려를 막기 위해 정당방위에 대한 수사지침을 개정했지만,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끔찍한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피해자에게 누명을 씌우는 덫이 되고 있습니다.

YTN 신지원[jiwonsh@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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