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시각장애인들에겐 에어컨은 '그림의 떡'

폭염에도 시각장애인들에겐 에어컨은 '그림의 떡'

2017.06.27. 오후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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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작은 차이가 큰 차별을 만든다', YTN이 마련한 인권 기획시리즈, 오늘은 그 두 번째 순서로 시각 장애인들에게 너무 불편한 에어컨 문제에 대해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가전 업체들이 이른바 음성 설명 기능을 외면하면서 시각 장애인들은 요즘 같은 불볕더위에도 사실상 에어컨을 사용할 수 없어 애를 먹고 있는데요.

장애인들이 인권위에 진정을 내고 정부가 가이드 라인까지 제안했지만, 업체들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조은지 기자입니다.

[기자]
찬바람이 맞는지, 손을 들어 한참을 확인하는 시각장애인 이민규 씨.

앞을 잘 못 보는 이 씨에게는 에어컨을 켜고 끄는 것부터 온도 조절까지 매 순간이 난관입니다.

냉방과 송풍, 제습과 공기청정까지, 에어컨의 다양한 기능을 차가운 기계음 하나로 구별해야 합니다.

[이민규 / 시각장애인·인권위 진정 : 켜고 끄는 소리도 똑같고, 온도 조절도 똑같고.]

여름마다 진땀을 흘리던 이 씨는 결국, 에어컨에 음성 기능을 넣어달라며, 지난달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습니다.

[이민규 / 시각장애인·인권위 진정 : 신호음이나 안내 멘트 기능이 나오지 않으면 사고 싶은 욕구도 안 생길 뿐만 아니라 에어컨이 있어도 잘 활용하지 못하니까 불편한 것 같아요.]

에어컨뿐 아닙니다.

명랑한 저시력 신혼부부도 가전제품 앞에서는 유독 작아집니다.

큰맘 먹고 비싼 스마트TV를 샀지만, 67인치 크기에 만족할 뿐, 기능은 거의 쓰지 못합니다.

[김혜일·손지민 / 시각장애인 : 흰색 왼쪽(버튼)은 거꾸로 가는 거야. 흰색 왼쪽이 거꾸로고….]

냉장고와 공기청정기 등 집안의 대다수 가전제품이 음성 설명이 없는 건 물론, 터치식이라 사용할 때마다 고역입니다.

[손지민 / 시각장애인 : 시각장애인은 터치 기능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거든요. 음성 정보만 줘도 이용할 수 있는데요. 가전제품을 만들거나 생활 제품을 만들 때 장애인도 쓸 수 있게끔….]

정부는 2년 전, 장애인과 노인 등 취약층을 배려해 보완 수단을 제공하라는 취지의 전자제품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강제성도 없고, 특별한 혜택도 없어, 지키는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말로 설명하는 제품도 더러 있지만, 값비싼 최고급 모델 몇몇 개가 고작입니다.

과거에 흔했던 음성 설명 기능을 없앤 건데, 명백히 장애인 차별금지법 위반입니다.

[강완식 / 가전접근성 포럼 팀장 : (가이드 라인을) 안 지켰다고 해서 제재를 당하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 차별을 당했다고 해야지 조사하는 그런 구조로 돼 있잖아요. 그러니까 업체는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거죠.]

목소리로 가전제품을 켜고 끄는 편리한 세상.

시각 장애인들은 가전제품에 음성 설명을 넣는 건, 돈이나 기술이 아닌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김혜일 / 시각장애인 : 돈을 아무리 힘들게 지불해도 원하는 걸 쓸 수 없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냥 개념이 없는 것 같아요.]

YTN 조은지[zone4@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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