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상자 지원 제도 곳곳 빈틈...의인 울리는 정부

의사상자 지원 제도 곳곳 빈틈...의인 울리는 정부

2017.04.23. 오후 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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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른바 세월호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렸던 김동수 씨가 트라우마로 생업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는데요.

김 씨는 뒤늦게 정부로부터 의상자로 인정받았지만 법에 규정된 지원은 각종 제약이 있어 사실상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주영 기자가 의사상자 지원 제도의 한계를 살펴봤습니다.

[기자]
지난 2014년 4월 16일.

다급한 구조 요청과 함께 세월호가 침몰했습니다.

자기 목숨마저 위태로운 그 순간에 한 남성이 배 안으로 향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파란바지의 의인’이라고 불리고 있는 김동수 씨입니다.

김 씨는 끝까지 배에 남아 소방호스를 몸에 감고 20명이 넘는 사람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김동수 / 세월호 탑승자, 파란바지의 의인 : 내가 몇 사람을 구했나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구해내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으니까무의식중에 계속 끌어올릴 수밖에 없었어요. 내가 몸이 아프다, 힘이 있다 (없다), 그런 (생각도) 없었고 우선은 살려야 된다는 것 밖에 없었어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내 도움이 없이는 사소한 일상생활조차 어렵습니다.

[김동수 / 세월호 탑승자, 파란바지의 의인 :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정신과 약 먹고 자면 한 2~3시간 자고 깨어나고 만날 계속 되새김을 하는 거죠.]

참사 이후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아나왔다는 죄책감이 매일 그를 괴롭힙니다.

[김동수 / 세월호 탑승자, 파란바지의 의인 : 침수될 때 그때 이삼백 명의 눈망울을 다 봤으니까. 사람을 다 봤는데 어떻게 그걸 잊어요.]

참사 1년 뒤, 정부가 김 씨를 의상자로 인정하고 1억 6백만 원의 보상금을 줬지만, 각종 치료를 받다보니 일찌감치 그 돈은 바닥이 났습니다.

더구나 화물차 기사로 생활하며 생계를 책임졌던 김 씨가 심신이 피폐해져 경제활동까지 못하면서 심각한 생활고까지 가정을 덮쳤습니다.

[김형숙 / 김동수 씨 아내 : 이 사람이 예전처럼 운전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고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어찌해볼텐데)]

유공자나 순직자와 달리 연금 혜택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비나 취업을 지원하는 등 각종 혜택이 규정돼있는 의사상자법도 실제론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작 필요할 때는 추가 조건이 붙어 제약을 받기 일쑤.

더구나 현장에서는 제도 자체를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김형숙 / 김동수 씨 아내 : 자꾸 사람들마다 왜 죄책감을 갖느냐, 자랑스러워해라(고 말하는데) 아니, 자부심을 갖게 해줘야 자부심을 가질 거 아니에요. 가는데 마다 의상자증 내놓으면 ‘유공자도 아니고 뭐예요? 저희는 몰라요. 혜택 없어요.’ 거기다가 대고 전화하고 뭐해야 하고….]

그의 희생과 용기에 합당한 예우를 갖추겠다던 정부의 다짐이 무색합니다.

희생 뒤 상처는 온전히 그의 몫으로 남았고 여전히 고통은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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