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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지급했잖아요"...의사상자 거부당한 세월호 잠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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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7-04-23 19:30
앵커

세월호 참사 이후 민간 잠수사들은 목숨을 걸고 제 몸을 버려가며 수색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얻은 병 때문에 상당수는 잠수조차 할 수 없게 됐지만 뒤늦게 정부가 지급한 일당 때문에 모두 의사상자 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김주영 기자가 잠수사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기자

물속에 가라앉았던 세월호가 3년 만에 육지로 올라오던 날 한 여성이 아이들과 함께 목포를 찾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눈물만 닦아내던 여성.

세월호 참사 당시, 선체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 씹니다.

[김혜연 / 고 김관홍 잠수사 아내 : (어머님, 세월호 보시니까 어떠세요?) 근데 말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어떡하죠?]

평범했던 이들의 삶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스쿠버다이빙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오붓한 가정을 꾸리고 예쁜 세 명의 자녀까지 낳았습니다.

유난히 물과 아이들을 좋아했던 남편.

그랬던 그가 변하기 시작한 건 세월호 수색에 참여했다가 돌아온 직후부터였습니다.

[김혜연 / 고 김관홍 잠수사 아내 : (남편이) 감정기복도 왔다 갔다 했지만요, 아이들이 옆에 오는 걸 되게 두려워했어요. 아무래도 (시신을) 수습하면서 다 안고 올라왔으니까 그런 기억이 있어서 그랬는지 애들도 (몸을) 못 만지게 하고 잠도 못자고 그러니까 한쪽에서 멍하니 있고 거의….]

수색 도중 얻은 병 때문에 직업이던 잠수도 할 수 없었고,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던 김 씨는 안타깝게도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 수색 당시 김 씨와 함께했던 민간 잠수사들은 열악했던 현장 상황을 어제 일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황병주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첫 다이빙에 처음 들어가서 유리창을 망치로 깨고 이렇게 그때 잘 안보이니까 손으로 더듬으니까 머리가 동시에 여러 명이 잡히더라고요. 그러니까 내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감당이 안 돼서 막 소리를 질렀어요. 막 소리를 지르고 욕을 막 했어요.]

한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물속에서 그들은 거친 물살과 사투를 벌이며 위태롭게 목숨을 지켜냈습니다.

[김상우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나는 진짜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어요. 잠수할 때마다.]

잠수병의 위험 때문에 보통 심해 잠수는 하루에 한 번 넘게 하는 경우가 없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현장에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루 24시간을 꼬박 현장에 머물며 세 네 번씩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공우영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하루에 한 번 밖에 (심해 잠수가) 안돼요.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실종자를 내 가족, 내 동생, 자식같이 생각해서 아무 소리 안하고 한 번이라도 더 들어가서 결론적으로는 뭐… 잠수사들이 잠수병, 골괴사도 악화가 되고, 여러 병도 생기고 해서 (잠수한) 동생들한테 굉장히 미안하죠.]

덕분에 침몰한 배 안에서 200구가 넘는 시신을 찾을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잠수사에게 진도 앞바다는 마지막 잠수 현장이 돼버렸습니다.

[김상우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디스크 수술, 트라우마 치료 받고 그래서 그 이후로 잠수 일을 못하고 계속 치료 받고 있습니다.]

[황병주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생계는 거의 지금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대리운전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 대리기사로 나선 사람도, 일용직으로 나선 사람도 있습니다.

고충을 전해들은 해경은 고 김관홍 잠수사를 비롯해 이들 모두에게 의사상자 신청을 제안했습니다.

[황병주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원래) 해경에서 그러면 의사상자를 신청해라. 의사상자법으로 해서 아마 의사상자가 되면 보상을 해 줄 거니까 의사상자 (신청)하는 것을 도와주겠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들은 의사상자 심사에서 모두 탈락됐습니다.

사유는 ‘직무 수행’ 정부가 뒤늦게 지급했던돈이 문제가 된 겁니다.

정부에서는 일당 개념으로 돈을 지급했지만 잠수사들이 평소 받아오던 돈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금액이었습니다.

더구나 정식 계약도 맺지 않고 종사명령서만 쓴 채 떠넘기듯 받은 돈! 이 때문에 의사상자로서의 혜택도 지원도 명예도 모두 사라져버렸습니다.

[김상우 / 세월호 수색 참여 민간잠수사 : 자존감이 있고 명예가 더 중요한데 (일당) 안 받고 (의사상자가) 되는 거라면.저희 명예회복을 하고 싶어요.]

의로운 일을 했던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또 어떤 누군가는 죽음을 떠올릴 만큼 힘든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부마저 그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그들의 희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요.

[故 김관홍 / 세월호 수색 참여 잠수사 (2015년 9월) : (저희는) 법리 논리 모릅니다. 제발 상식과 통념에서 판단을 하셔야지, 법리 논리?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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