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2017.03.24. 오후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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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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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을 그렇게 쉽게 저버리는 어른들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워요" 최근 화제가 된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설치를 주관한 인스팅터스 박진아 대표의 말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지난 3월 3일, <"안전하게 사랑하세요", 거리에 등장한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기사를 통해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가 보도된 이후, 자판기는 언론과 대중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사를 접한 이들 사이에서는 "콘돔을 부끄러워하는 잘못된 사회인식 개선과 청소년의 피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실제로 강남, 이태원, 광주 등에만 설치됐던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는 주민들의 요청으로 충남 홍성의 한 만화방에 추가 설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박 대표는 "보도 이후 제주도나 부산, 경북 등에서도 설치 요청 문의가 쇄도했다"고 밝혔다.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언론 보도 이후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가 거센 홍역을 앓고 있다. 강남 지역에서 성인들이 자판기를 무차별로 이용해 콘돔을 대량 구매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 구매자의 연령 확인이 불가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자판기 속 콘돔은 모두 유해 화학물질을 제거한 '비건 인증' 콘돔으로 실제 소비자 판매가격은 개당 약 1,400원(10개 입 기준)이다. 해당 자판기를 설치한 인스팅터스 측은 성(性)적 약자인 청소년의 콘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1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2개의 콘돔을 제공해왔다.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자판기 앞에는 '만 19세 이상 성인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관리가 소홀해지는 새벽 시간대에 성인들이 마구잡이로 자판기를 이용하자, 강남 지역 매장의 점주는 판매 방식 변경 안내문을 부착하기도 했다.

일부 취객이 자판기를 발로 걷어차며 공격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가 설치했다는 보도가 이루어진 후, 일부에서는 "청소년의 성관계를 조장한다"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 수난, "성인이 사용하고, 기계 걷어차고"

(▲강남 매장 앞 판매 방식 변경을 알리는 안내문. 현재(24일) 본 안내문은 수거된 상태.)

인스팅터스 측은 "안타깝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YTN PLUS와의 인터뷰에서 "청소년들에게 성관계를 권장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인 안전한 피임을 위한 캠페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또한 "별도의 장치 없이 자판기 사용을 양심에 맡겨왔는데 일부 잘못된 어른들의 태도가 실망스럽다"며 "선의를 믿는 사람들을 더는 실망시키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현재 인스팅터스는 내부 논의를 거쳐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한편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첫 성 경험 시작 연령은 평균 12.8세까지 낮아졌다. OECD 국가 중에서는 낙태율 1위, 콘돔 사용률 최하위에 속한다. 이는 콘돔을 성인들의 전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선입견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청소년들의 피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현 상황에서 청소년용 콘돔 자판기가 수난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성인들부터 나서서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YTN PLUS 김성현 모바일PD
(jamkim@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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