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죽어서도 자랑스러운 소방관이고 싶습니다"

"저는 죽어서도 자랑스러운 소방관이고 싶습니다"

2016.09.23. 오후 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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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 350여 명의 생명을 구했던 젊은 소방대원이 갑자기 암에 걸려 31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각종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소방관의 암이나 백혈병 등 중증질환에 대해 공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홍상희 기자입니다.

[기자]
그때, 구조대원이 빠른 속도로 거센 파도를 가르기 시작합니다.

삼킬 듯한 파도에도 구조의 손길을 놓치지 않습니다.

화재와 재난 현장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타인의 생명을 구했던 김범석 소방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생명은 구하지 못하고 2년 전, 31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아직도 믿기 어려운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아버지는 사진 속의 웃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가슴 속을 파고듭니다.

[故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 그렇게 숨을 못 쉬면서 수개월 동안 버텼다는 게 너무 가슴 아프고. (하늘나라에서) 숨 편하게 쉬면서 지가 생전에 즐겼던 자전거도 타고 마라톤도 하고 이렇게 살아갔으면 좋습니다.]

지난 2006년 부산에서 소방공무원에 임용돼 119구조대와 중앙119구조본부에서 8년 동안 현장을 누볐던 고 김범석 소방관은 2013년 갑자기 숨이 가빠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선 혈관육종암 진단을 내렸습니다.

혈관육종암. 혈관에 악성 종양이 생겨 전이되는 희귀암입니다.

마라톤 대회마다 출전해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했고 산악자전거, 수영 실력도 뛰어났던고 김범석 소방관의 별명은 ‘구조머신’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암 판정을 판은 지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화재와 재난현장에 천 번 넘게 투입돼 350여명의 생명을 구한 김범석 소방관.

죽음을 앞두고, 김범석 소방관은 갓 돌이 지난 아들에게 아빠는 병이 걸려 죽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며공무상 재해 인정을 받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故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 아버지 나는 죽어서도 소방관이고 싶습니다. 병 걸린 아빠가 아니고 자랑스러운 소방관으로서 살다가 죽은 아빠로 기억해줬으면.]

유족은 고 김범석 소방관이 화재현장의 유해물질과 업무상 스트레스로 병을 얻었다고 주장했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김 소방관의 공무상 사망을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 : 희귀한 종양으로 의학적으로 그 발병원인이나 감염 경로등이 분명하지 않다 그것도 화재현장에서 유독성 물질 등에 노출이 되어서 혈관육종이 발병했다는 의학적인 근거도 설 수 가없다.]

중앙119구조본부가 김 소방관이 2년 전 받은 건강검진에서도 문제가 없었다며 이례적으로 공무원연금공단에 탄원서를 제출했지만 재심의도 기각됐습니다.

아들의 유언대로 ‘공무상 사망’을 인정받기 위해 공무원연금공단과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는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명예롭기를, 이 땅의 다른 소방관들에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故 김범석 소방관 아버지 : 우리 범석이 죽음이 아파서 있는 소방관들 오늘도 재난 속에 목숨을 걸고 뛰어드는 소방관들에게 처우가 개선되는 것, 이게 입법화가 되고 제도적으로 확립 되서 처우가 개선되기를 진심으로 간곡히 바랍니다.]

[서원효 소방관 : 체력관리가 중요한 거 같고요. 먹는 것만 좀 힘들어요.]

췌장암 판정을 받은 지 어느덧 일 년이 지났습니다.

매주 반복되는 일이지만 항암주사를 맞고, 의사를 만나 몸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까지 늘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24년간 대부분을 소방서 상황실에서 근무한 서원효 소방관.

그는 2교대로 24시간을 꼬박 일하는 근무환경이 늘 힘들었습니다.

끼니는 30분 안에 해결해야 했고, 신고 전화를 받느라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서원효 소방관 :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119신고 자체가 급박하고 그런 상황에서 압박감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래요. 사건 사건이 크면 그렇고.]

그러나 서원효 소방관 역시, 업무환경과 췌장암과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직 소송을 제기하지도 못했습니다.

재난 현장에서 일하다 암을 얻고도 공상 판정을 받지 못한 동료들이 많은데, 자신이 나서는 것이 미안하다는 겁니다.

서 소방관은 올 가을 태어날 손주를 보고, 소방관으로 정년퇴직을 할 수 있도록 암을 이겨내는 것이 소원일 뿐입니다.

이제 손자 태어나시잖아요. 그 손주 태어나시면 뭐 하고 싶으세요.]

[서원효 소방관 : 이제 병원 갔다 와서 아이 보는 모습도 그려지고 같이 걷는 모습도 보고 싶죠.]

지난 2011년부터 5년 동안 암 판정을 받은 소방관이 공상 그러니까 일하다 생긴 병으로 인정받은 경우는 18명 가운데 1명뿐 업무환경과 발병한 암이 관련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하는데 학문적 연구결과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소방관 개인이 이를 입증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정성호 교수 : 원인을 밝힌다. 그건 뭐 불가능 한 거죠. 위험인자를 찾는 건데 특히 이제 그 드물게 발생하는 암은 그것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현재 암을 포함해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등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소방관은 400여 명.

가장 위급한 순간에 달려오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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