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같은 골동품 기증했더니 "가치 없다"며 푸대접

자식 같은 골동품 기증했더니 "가치 없다"며 푸대접

2016.07.31. 오전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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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외국에서 어렵게 모은 자식 같은 골동품들을 고향에 기증했는데 그곳에선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1960대 말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던 한 80대 할아버지의 사연입니다.

황보연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지난 1990년대 초 유럽의 진귀한 골동품 소장가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제의 인물 남기석 하지만 이제 80 노인이 된 남씨에게 남은 게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는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독 출신 광부였던 남 씨.

우연한 기회에 독일 저택의 한 소장품들을 낙찰받게 됐습니다.

골동품들을 정리해 하나둘 집으로 옮기던 남 씨.

그곳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남기석 / 유럽 골동품 기증자 : 그때 벼락을 맞은 거예요. (뭐가 있었어요?) 금괴하고 돈하고 어마어마했죠. 조그마한 게 하나 있어서 가지고 나갔는데 금이라는 거예요. 아 이게 진짜 맞구나!]

남 씨는 금괴를 밑천으로 유럽 전역의 골동품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습니다.

1991년엔 이렇게 모은 진귀한 골동품을 가지고 귀국했고 금새 유명세를 탔습니다.

남 씨는 타국에서 어렵게 해 온 일인 만큼 고향에 기증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남기석 / 유럽 골동품 기증자 : 그래도 고향이니까 서구에 대한 문물을 일찍 학생들이 알아서 ‘외국에 나가도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겠구나' 하고서 기증한 건데….]

우리는 남 씨의 기증품으로 만들어진 청주의 전시관을 찾아가봤습니다.

방 한쪽에 짙은 갈색의 육중한 가구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늘은 멈췄지만 예사롭지 않은 큰 키의 괘종시계가 가구 옆에 서 있습니다.

한참 동안 전시관을 떠났 있던 남 씨는 최근 이곳을 다시 둘러보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기증 당시 특별히 아껴서 전시관 도록에 사진까지 올린 미국 케네디 대통령 우표 세트가 감쪽같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남기석 / 유럽 골동품 기증자 : 보니까 케네디 우표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게 쏙 빠져나간 거예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30점이 넘는 다른 골동품도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시관측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전시관 관계자 :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없어진 게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고 그래요. 상황이. 그건 뭐 어쩔 수 없어요. 지금 와서 누가 밝힐 수도 없고 20년 전 것을 확인할 수도 없고. 상품 가치도 없어요. 저거. 있는 게 본인은 히틀러가 앉아 있던 책상이라고 이러는데 입증된 게 없어요.]

과연, 남 씨가 기증한 이 골동품들은 정말 아무 가치가 없는 물건들일까?

[최지혜 / 유럽 골동품 전문가 :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작품이고요. 이렇게 사이즈가 굉장히 큰 건 대저택에서 소장하고 썼던 물건으로 보이거든요. (국내에 많이 들어와 있나요?) 국내에서는 보기 어렵고요, 특히 세트로 남아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20여 년 타향살이의 결실, 자식만큼이나 소중한 물건들을 후손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은 남기석 씨.

이제 뜻깊은 나눔에 스스로 가슴 뿌듯해야 할 때도 됐지만 현실은 오로지 쓰디쓴 후회뿐입니다.

YTN 황보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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