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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전사했지만, 증거 없어 인정받지 못하는 '민간인 참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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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6-07-23 10:30
앵커

한국전쟁 당시 사망했지만, 민간인 참전자라는 이유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많은데요.

아버지의 죽음을 심의받기 위해 전국을 뛰어다닌 사연,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정금임 : 엄마가 맨날 하시는 이야기가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 네 아버지는 군인이 데려갔어….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본 적) 없지! 6.25 때 아버지가 뱃속에 넣어 놓고 가서 안 오셨으니까. 얼굴도 없고 사진도 없고.]

1951년 3월.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눈 비극적인 역사의 한복판에서도 생명은 꽃을 피웠나 봅니다.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 달 전, 여기서 20km 떨어진 한 마을에서 시작합니다.

정 씨들만 모여 사는 평화로운 마을에 평범한 농사꾼 한 명이 살았습니다.

어여쁜 부인과 다섯 살배기 딸, 그리고 한 달 뒤면 태어날 둘째를 기다리는 평범한 가장이었죠.

[정금임 : 언니가 5살이었는데 그때 우리 집사람이 태기 가졌다고 엄청 좋아했대요.]

그의 이름은 정문채, 마을에선 ‘기수’라고 불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을에서 사라졌습니다.

행방불명된 것은 문채 씨만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마을의 다른 정 씨 2명도 함께 자취를 감춘 겁니다.

하나같이 이 마을에서 가장 덩치 좋은 농사꾼이었습니다.

[정판병 : 어휴 한창이지. 한 30살 됐으니까.]

[기자 : 힘이나 체격이 어떠셨어요?]

[정판병 : 힘이 좋죠.]

흉흉한 소문이 돌았지만, 마을 주민 가운데 이들의 행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사라졌던 남자 중 두 명이 다시 마을로 나타나면서 정문채 씨의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정판병 : 정창주 씨(생존자)가 앉아서 노상하는 이야기가, 어느 날 세 명이 군인들의 짐을 짊어지고 생막골(생촌리)에 갔는데 한 분은 (총소리가 나서) 소리를 지르고, 자기는 무서워서 여기로 도망와 버렸고, 그분은 그 길로 돌아가셨다고.]

공비 토벌 작전을 가던 군인들이 마을에서 제일 건장한 남자 3명을 짐꾼으로 차출해 옆 마을 장성으로 데려갔고,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에 두 두 명은 도망쳤지만 문채 씨는 가슴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는 것.

[정병운 : 그 양반, 기수 씨는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지.]

이것이 사람들이 기억하는 문채 씨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기리며 올해도 떠들썩하게 치러진 호국보훈의 달 마지막 날.

철도길 옆 판자촌에서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전쟁터에 갔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농사꾼 정문채 의 딸, 정금임 씨입니다.

[정금임 : 식모살이도 했고 노점 장사도 울기도. 저쪽에 야채 시장 있을 때는 정금임은 울보여 울보.]

아버지 명예를 찾고 합당한 보상을 받기로 결심한 건 10년 전인 2006년.

하지만 노무자였던 아버지 역시, 군번이나 기록 등, 증거가 없었습니다.

다른 증거를 찾아오라는 정부의 요구에, 금임 씨는 혼자서 안 다녀본 곳이 없다고 합니다.

때론 아버지 없는 서러움, 그 오랜 상처를 다시 들춰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이었고요.

[정금임 : 못 배운 것도 그렇고. 뭐를 했든 10년이란 세월이 걸렸겠어요. 내가 배워서 조금 잘 살면 이런 것이 없겠지. 이런 서러운 것이 없겠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한스러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울보 금임 씨에게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2012년, 국방부가 아버지의 전사 여부를 직접 조사하고 나선 겁니다.

[정금임 :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아. 거기서(국방부에서) 지역(고창)을 싹 쳐다봤어. 국방부에서 나온 사람들.
방에 들어와서 어른들 모셔놓고 하는데 타자 치면서 (조사하더라고)]

국방부는 당시 문채 씨가 사라졌다 동네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듣거나 본, 80대 마을 토박이들을 잇달아 조사했고.

[기자 : 아버님 인우보증서, 다 쓰신 거죠?]

[정판병 : 내 글씨구만.]

[기자 : 그때도 아버님이 말씀을 다 해주신 거죠?]

[정판병 : 네.]

특히 정문채 씨와 함께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정병덕 씨의 증언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3년 만에 나온 최종 보고서.

금임 씨의 아버지 정문채 씨는 노무자 신분으로 전쟁터에 끌려갔고, 장성 생막골 인근에서 공비들의 총에 맞아 숨졌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그러니, 딸도 이제는 다 잘 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믿을 수 없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육군 본부가 상급기관인 국방부의 조사 결과를 뒤집고, 정문채 씨가 전쟁터에서 숨진 것이 확실하지 않다고 판단한 겁니다.

문채 씨의 사망을 목격한 증인이 한 명밖에 없고, 그마저 너무 고령이라 진술의 신빙성이 낮다는 이유였습니다.

[정금임 : 자기네들이 조사했잖아. 조사하고 통보했으면서 이제 와서 인정을 왜 안 해주느냐 이거지. 여기 서류가 다 있는데.]

[기자 : 전쟁터 끌려가서 본 걸 말씀해주실 분이 이 동네에서 없으신가요?]

[정민성 : 없지. 다 고인 됐어. 없지 다 돌아가셨지.]

정말로 이젠. 목격자가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습니다.

[정금임 : 아빠! 딸이 왔어! 그런데 어째 아빠는 대답도 없어…. 영혼이 있으면 나한테 와서 안아주던가. 아버지 보고 싶어 미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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