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트럭 장사꾼의 비법 "대박 내려면..."

국가대표 트럭 장사꾼의 비법 "대박 내려면..."

2016.06.16. 오전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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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성기 / 국가대표 과일촌 대표

[앵커]
국가대표 트럭 장사꾼을 자처하는 상인이 있습니다. 트럭장사꾼이라고 하니까 트럭을 파는 게 아니고 트럭 위에 물건을 싣고, 그러니까 채소나 과일 같은 것을 싣고 다니는 것입니다.

[앵커]
빚더미에 올랐다가 트럭 하나로 재기에 성공하고 이제는 과거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트럭 장사의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데요. 트럭 장사 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국가대표 과일촌 배성기 대표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요즘 한창인 과일인 참외가 지금 와 있습니다. 배 대표님, 원래는 과일 장사가 첫 직장은 아니잖아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회사를 다니셨다고요?

[인터뷰]
네, 대기업에 저는 다니고 있었고요. 그 당시 대기업에 다닐 때 명퇴하고 감원이 바람이 불었어요. 그때가 IMF 때부터 시작해서 큰 항공사를 다녔었는데 그때 한번 감원되는 것을 보고 직장을 옮기기로 하고 좀 그래도 탄탄하다 하는 중소기업을 갔는데도 거기도 마찬가지로 점점 어려워지니까 감원을 하고 명퇴를 하는데 주로 대부분 감원, 명퇴 대상이 40대, 50대. 그런데 이분들이 회사 안에서는 가치를 인정받지만 회사를 퇴사하고 나면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요. 그냥 떡볶이집 아저씨, 치킨집 아저씨, 순대집 아저씨. 그걸 보고 한번 넘어진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젊은 나이에 시작을 해야지 장사가 그래도 한번 실수를 하더라도,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앵커]
여러 가지 일이 있는데 특히 과일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인터뷰]
제가 사실 과일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그래 가지고 무슨 일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요, 그때 당시에 방송에서 우연하게 TV를 봤는데 어느 야채가게가 굉장히 잘 되는 걸 봤어요. 저분한테 가서 배우면 장사를 정말 제대로 배우겠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 큰애가 6살 정도 됐을 무렵인데 30만 원을 받고 거기서 첫 직장을 다니게 된 거죠.

[앵커]
그렇군요.

[앵커]
대기업 월급을 받다가 첫 야채 가게에서 30만 원을 받으면서 일을 배우신 건데 그러면 장사를 시작하시면서 처음부터 트럭에서 물건을 파신 건 아니군요?

[인터뷰]
그럼요. 저도 가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강남에서.

[앵커]
그런데 트럭으로 옮기게 된 이유가 있었을까요?

[인터뷰]
제가 트럭 장사를 처음부터 한 거는 아니고요. 과일가게에서 직원으로 근무하다가 자신감이 생긴 거죠. 내 장사를 하면 정말 잘할 수 있겠구나, 나는. 그래 가지고 우연찮게 기회가 돼서 강남에 매장을 하나 들어가서 하게 됐어요. 그런데 때마침 그때 홍수가 엄청 피해였어요, 강남역에.

[앵커]
강남역에 물이 찼던 적이 한 번 있었죠. 그때를 얘기하시는 건가요?

[인터뷰]
그때 제 가게가 강남역 바로 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홍수 때문에 잘못된 건 아닌데요. 그 홍수 후의 대책이 저희 매장 바로 5m 앞에 대규모 빗물저류조인식이 공사를 했어요. 들어오는 입구가 세 군데인데 덤프트럭이 하루에 수십 대가 다니고 철근트럭이 다니니까 먼지가 너무 날리니까 사람들이 안 오기 시작한 거죠. 그래서 적자가 계속 운영되다가 큰 빚을, 한 1억 5000 정도 남기고 집사람이 운영하던 미용실도 사채업자한테 넘어가고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 보자 한 게 트럭장사였습니다.

[앵커]
강남역 침수 사건이 일어나고 난 다음에 그다음부터 장사가 안 되기 시작했고 장사가 결국 망하게 된 거네요.

[인터뷰]
그렇죠, 어떻게 보면 망하게 된 거죠.

[앵커]
그다음에 어쨌든 재기의 길을 트럭에서 찾으셨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인터뷰]
어려움이라기보다는 가족들부터 가장 어려웠어요. 미안했죠. 우리 가족들이 아빠를 바라봤을 때 어떤 아빠로 비춰질까. 그리고 아이들하고의 시간이 없다 보니까 집에 1시, 2시에 들어오고 4시면 다시 또 장사를 하러 나가니까요, 새벽에도. 그때 당시에 장사밖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 가지고 남들이 봐도 쟤는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장사밖에 몰라, 이 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나를 봤을 때, 아내가 나를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아빠,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 되기 위해서 장사만 했던 것 같습니다.

[앵커]
보통 트럭에서는 과일도 팔고 야채도 팔고 여러 가지를 많이 파는데 어떤 거를 주로 파시나요?

[인터뷰]
저희들은 야채도 팔고 과일도 팔지만 또 수산물을 팔 때도 있어요. 저희들이 주로 하는 거는 농가에서 풍년이 돼도 판로가 개척이 안 됩니다. 올해 같은 경우에는 피꼬막이 산지에서 엄청 잘 됐어요. 한 번 드셨던 분들은 이렇게 맛있는 꼬막이 우리나라에도 나올 정도냐고 하실 정도인데 너무 생산량이 많다 보니까 판로가 없는 거예요. 경매에 넘기자니 너무 싼 가격이 나오고 하니까 그럴 때는 어민들이 저희들을 찾아옵니다. 이걸 좀 대량으로 해결해 줄 수 없냐고 하면 저희들이 또 이런 트럭장사하시는 분들 네트워크를 가동해 가지고 올해 이렇게 농사가 잘 됐으니까 팔아줘야 되지 않겠냐 해서 그래서 주로 이런 걸 많이 팝니다, 저희는.

[앵커]
그러니까 그때그때 파는 게 달라지네요.

[인터뷰]
네, 바뀝니다.

[앵커]
전국적인 네트워크가 있다고 하면 큰 유통업체나 마찬가지인데요?

[인터뷰]
그렇죠. 저희 트럭장사하시는 분들한테 물건을 공급해 주는 데도 있고요. 또 저희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농가들도 있고, 어민들도 있습니다. 그분들한테 물건을 공급받고 그 물건을 공유해 가지고 같이 팔 수 있게 해 주는 거죠.

[앵커]
그렇군요.

[앵커]
지금 스튜디오에 참외향이 가득합니다. 참외를 가지고 나오셨는데 저희가 언뜻봐도 크기가 제 주먹만한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고 흠집이 있는 것도 있거든요. 못난이 참외라고 하던데요.

[인터뷰]
이게 못난이참외입니다.

[앵커]
이런 거를 판매를 하시는 거군요?

[인터뷰]
그렇죠. 이게 정상제품으로 나가기에는 보시면 알겠지만 울퉁불퉁해요. 그리고 상처들도 좀 있고요. 그런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농민들이 피땀 흘려서 가꾼 작물입니다. 그런데 이걸 정상제품으로 못 팔게 되면 가공공장에 헐값에 넘어가요. 그분들로서는 굉장히 억울한 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저희들한테 저렴한 가격에 저희들한테 공급을 해 주면 저희는 이걸 가지고 파는데 맛이 굉장히 좋아요.

[앵커]
그래요? 그렇게 생겼어도 맛은 좋다?

[인터뷰]
맛은 굉장히 좋습니다.

[앵커]
일단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트럭 위에 저렇게 주먹만한 참외가 올라와 있으니까 선뜻 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하시나요?

[인터뷰]
저희들은 일단 맛을 많이 보여드립니다. 아무거나 보는 앞에서 어머니, 아무거나 맛봐도 맛이 좋습니다. 한 번 맛보세요, 직접 드리기도 하고요. 또 마음에 드시는 사이즈를 골라가시라고 그래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니까요. 사람마다 작은 것을 좋아하시는 분도 있고 큰 걸 좋아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보통 고르고 그러면 싫어하시던데.

[인터뷰]
이제는 바뀝니다. 트럭장사가. 손님이 좋아하시는 걸 가져가셔야죠. 사람들이 트럭장사라고 하면 거친 이미지가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트럭장사 하시는 분들도 더 상냥하게 하고 손님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 됩니다.

[앵커]
굳이 그런데 모양이 안 돼 있는 것들 그러니까 못난이참외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것들을 굳이 갖다가 파는 게 농민들의 어려움 그리고 판로가 막혀 있기 때문에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직접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꼭 그게 아니라 잘 팔리는 물건을 팔아야 될 것 아니에요.

[인터뷰]
트럭에서 물건을 팔면 사람들이 매장보다 싸야 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지나가시는 분들은. 당연히 싸야겠죠. 그런데 같은 정상제품을 가지고 경쟁을 하면 저희는 경쟁이 안 됩니다. 매장 같은 경우에는 서비스로 한두 품목 정도는 서비스로 원가에도 주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한 가지 품목을 갖고 가다 보니까 같은 가격에 승부를 하면 저희는 승부가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못난이이지만 맛이 좋은 품질이 우수한 그런 참외를 가지고, 과일들을 가지고 손님들한테 다가가는 거죠.

[앵커]
저희 동네에도 사실 과일이나 이런 거를 싣고 트럭을 이용해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가끔씩 오시는데 보면 트럭 안에 앉아계시는 분들도 계시고 방송을 한다고 그러나요, 마이크를 잡고 하시지 않고 녹음을 해서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그런 내용들이 있거든요.
귀에 잘 안 들어오는 내용도 있는데 보통은 어떻게 하시나요?

[인터뷰]
저희는 절대로, 반복기라고 하거든요. 60초마다 반복이 되는데 예전에는 그걸 많이 트셨는데 저희 팀원분들은 그걸 안 해요. 왜 그러냐 하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이고 손님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한 분, 한 분은, 저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지만 손님들은 저를 처음 보는 겁니다, 그날. 그런데 반갑게 인사를 하고 서서 손님을 맞이하려면 준비를 하고 있어야죠. 인사도 잘하고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장사의 노하우가 직접 이렇게 맛을 보여주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는데 트럭은 일정한 장소가 아니라 여기저기 움직이지 않습니까? 장소에 따라서 파는 방법이 또 다른가요?

[인터뷰]
네, 많이 다르죠. 이동인구가 많은 데서는 소리를 약간 질러줘도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이동인구가 많더라도 약간 과일가게가 있다든지, 근처에, 그러면 예의가 아니잖아요. 저희는 어차피 노점이기 때문에 그런 건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는 조용히 하고. 또 이동인구가 적을 때는 맨투맨으로 합니다. 손님들 얼굴을 직접 마주대고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하고 한분한분한테 얘기를 하죠.

[앵커]
지금 장사 사관학교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많은 분들이 와서 정말 장사 수완들을 잘 배워가지고 가시고 있는데 그분들이 대표님이 하시는 장사 모습, 장사 수완을 보고 느낀 것들이 많다고 합니다. 잠시 얘기를 듣고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유준열 / 트럭 장사 : 감독님 보니까 이게 장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와서 잘하는 분이 하는 걸 보니까. 저는 매장에서 하듯이 안녕하세요, 이렇게 친절하게만 하려고만 했는데, 생각을 달리해야 할 거 같습니다. 저는 집이 강원도니까 강원도 쪽에 크게 저도 한번 물류센터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앵커]
트럭 장사 사관학교라고 저희가 소개를 해 드렸는데 이게 교육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건가요?

[인터뷰]
저희는 일단 아무나 들어올 수는 없고요. 전화통화를 먼저 해서 선별을 한 다음에 면접을 봐야 됩니다. 면담을 해 가지고 면접에 통과하신 분에 한해서 교육을 진행해 드리는데요. 처음에는 교육비가 없었어요, 저희가. 그랬더니 체험 삶의 현장도 아니고 그냥 오셔 가지고 팔짱 끼고 잘 봤습니다, 이래서 약간의 비용을 발생시켜드립니다. 책임감을 가지시라고. 그렇게 한 다음에 하루는 나가서 같이 이런 게 트럭장사라는 거를 보여드리고요. 다음 날은 와서 이론적인 것을 배웁니다. 자리 잡는 법, 손님들을 응대하는 법. 가장 중요한 것은 손님들을 응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장사는. 손님들 응대하는 것, 장사꾼이 갖춰야 할 인성이라든지 이런 사람은 장사하지 마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앵커]
배우고 싶은 사람을 면접을 한다고 하는데 뭘 보시는 거예요, 그러면?

[인터뷰]
가장 중요한 건 인성을 많이 봅니다. 왜냐하면 제가 판단할 기준은 감히 안 되지만요. 제가 가르쳐드리는 것을 어떤 분들은 고맙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있고요. 어떤 분들은, 학교에서 그렇잖아요. 우리 수학선생님은 저거밖에 안 돼, 이런 학생은 공부를 보면 대부분 못합니다. 그렇죠? 마찬가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분한테만 교육을 해 드립니다.

[앵커]
교육을 해 보시고 장사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이 그런가요? 장사꾼이라고 해야 되나요. 꾼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사람들, 어떤 사람이 있나요?

[인터뷰]
저희는 성실을 가장 봅니다. 저희 팀원들 중에, 아침에 저희가 7시 반쯤에 물건을 공급해 드리는데요. 좀 늦게는 오시지 말라고 그래요. 한 몇 번이 반복되면. 왜 그러냐 하면 저희들이 트럭 장사지만요, 트럭장사처럼 보이면 안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아침에 학교가는 아이들이 일어나는데 아빠가 자고 있고, 술 먹고 자고 있고, 아침에 비 온다고 자고 있고 하면 그 아이는 분명히 어른이 돼서 저렇게 해도 되는구나를 무의식 중에 인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분들한테 항시 하는 얘기는 비가 와도 나오고 눈이 와도 나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매일 출근하라고 합니다.

[앵커]
지금 사관학교, 그러니까 직접 장사 수완을 배우는 학생들한테 얘기를 들어봤는데 많은 걸 깨달았고 많은 걸 배웠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저희도 먼저 봤으면 좋겠는데요. 지금 못난이참외가 수북이 쌓여 있는데 이걸 저희들한테 팔아보시겠습니까?

[인터뷰]
아마 스튜디오에 칼을 들고 온 사람이 제가 최초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희들은 칼을 들고 다니고요. 일어서서 잠깐 보여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일단은 시선을 많이 끌어야 되니까요. 참외 같은 경우에는 많이 외쳐줘야 사람들이 쳐다봅니다. 그냥 참외 사세요, 참외 사세요,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안 보고요. 자, 달달달달 꿀참외 맛 보고 가세요. 이모, 오늘 날도 더운데 참외 한번 보고 가시겠어요?

[앵커]
너무 작아요.

[인터뷰]
작은 게 맛있습니다. 옛날에 개똥참외가 이런 거거든요. 맛을 한번 보세요, 이모. 맛 보고 맛 없으면 그냥 가도 됩니다.

[앵커]
이모라고 불러도 되는군요.

[앵커]
일단 거기서 점수를 많이 따셨어요.

[인터뷰]
맛 한번 보시겠어요?

[앵커]
너무 달아요.

[인터뷰]
짜지는 않으시고요? 그러면 됐습니다, 짜지 않으면.

[앵커]
아, 이런 식으로? 알겠습니다.

[앵커]
정말 그런데 보기보다 너무 다네요. 진짜 맛을 봐야지 알겠군요?

[인터뷰]
그럼요.

[앵커]
맛을 보면 확실히 매출에 차이가 있습니까? 매상이?

[인터뷰]
많이 차이가 납니다. 사람들이 트럭장사라고 그러면 안 좋은 물건을 파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럭장사들도 안 좋은 걸 가지고 손님한테 다가가면 안 되고요. 못났지만 좋은 물건을 가지고 다가가야지.

[앵커]
좋은 물건을 보는 눈도 있어야겠네요?

[인터뷰]
그럼요. 제가 산지에 직접 내려가서 농가를 직접 선정을 하고 다 과정을 거칩니다.

[앵커]
그렇군요.

[앵커]
저희도 오늘 참 많은 것을 배웠는데 앞으로의 꿈과 계획도 있으실 것 같아요.

[인터뷰]
저희 팀원분들이 한 이십여 분 되시고 또 지금 저희가 매장을 직접 운영하는 게 6군데 되는데요. 이분들이 좀 슬픈 현실이 뭐냐 하면 사람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보는 시야가 좁아져요. 스스로가 좁아지고요. 불만이 많아지고 불평이 많아지고요. 굉장히 사람이 작아지기 마련입니다. 또 최악의 선택을 하기 마련이고요. 같이 하시는 분들한테 꿈을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서 같이 밟아가지고 디딤돌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하시는 분들이 다 매장을 하나씩 열게 도와드리고 있고 그리고 향후에는 전국에 저희 국가대표과일촌이라는 물류센터를 만들어서 그분들이 정말 유통의 최일선에서 최고의 장사꾼이 되는 것을 같이 해 보고 싶습니다.

[앵커]
그 꿈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아주 재밌는 얘기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앵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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