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정마을 '할머니 칠공주'를 아시나요?

상정마을 '할머니 칠공주'를 아시나요?

2016.05.01. 오전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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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가족과 떨어져 사는 독거노인들은 외로움, 빈곤, 질병 때문에 힘겨워지는 때가 많은데요.

경남 의령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홀로된 할머니 7명이 한 가족이 돼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황보연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사]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인 경상남도 의령.

고즈넉한 돌담길 사이로 작은 들꽃들이 어우러진 이곳에 정다운 마을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마을도 여느 시골처럼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면서 을씨년스런 빈집과 나 홀로 사는 노인만 늘어갑니다.

81살 전점순 할머니도 역시 혼자입니다.

[기자 : 집에 가면 아무도 없잖아요.]

[전점순 : 아무도 없지.]

슬하에 5남매를 두고 할아버지와 알콩달콩 살아온 할머니.

[기자 : 할아버지 엄청 좋아하셨나 봐요.]

[전점순 : 뭘 좋아해. 그냥 그렇지.]

장성한 자식들이 모두 객지로 나가고 할머니 곁을 지키던 할아버지마저 2년 전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점순 : 좀 안 좋아요. 서운하고. 우리 할아버지 여기 계셨거든, 사랑방에.]

갑작스러운 충격에 일주일간 병원신세까지 졌습니다.

[전점순 : 우리 할아버지가 계실 때는 나는 독거노인이 안됐는데 이제는 독거노인이 완전 됐지.]

하지만 할머니는 이제 다시 웃음을 찾았습니다.

[전점순 : 애들이 그러니까 자꾸 거기에 있으라고 하지. 그래서 내가 저기 가서 있잖아.]

바로 이곳에서 말이죠.

군청의 도움을 받아 개조를 끝낸 마을회관엔 할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할머니 7명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일명 ‘상정마을 칠공주’.

자식들 다 키우고 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할머니들은 나이도 성도 다 다르지만 이제 매일 한 지붕에서 같이 자는 가족이 됐습니다.

[박말도 / 경남 의령군청 노인복지 계장 : 2007년도에 관내 공무원이 순찰 중이다가 아는 사람 집을 찾아갔어요. 할머니가 이불 세 개를 덮어쓰고 있고 밥을 해먹었는데 라면이 말라붙어있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경로당에서 웃음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착안한 게 이 경로당을 있는 그대로 조금 손봐서 마을에서 화합 차원에서 운영하면 좋겠다고...]

[김춘자 : 아플 때 좀 낫고, 제일 좋고. 좋을 거 있으면 서로 먹고 그런 게 좋지. 혼자 있으면 얼마나 외로워. ]

오랜만에 화창한 봄볕을 따라 칠공주가 마실에 나섰습니다.

차 안은 이미 시끌벅적.

예전에 함께했던 할아버지 생각도 나고 고생스럽던 옛 기억은 이젠 즐거운 얘깃거리입니다.

그 옛날 나물을 캐고 땔나무를 주워 모았던 곳입니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에 할머니들은 어느새 소녀 시절로 되돌아간 듯합니다.

오후엔 반가운 손님들도 찾아왔습니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건강 검진을 해주러 온 겁니다.

힘들게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이제 허리며 다리며 곳곳에 나타납니다.

간단한 치매 검사도 진행해보는데요.

[보건소 의사 : 지금 몇 월입니까?]

[할머니 : 몇 월 ? 4월 달 아이가?]

[보건소 의사 : 어머니 앉아 계신 여기가 1층입니까? 2층입니까?]

[할머니 : 1층!]

[보건소 의사 : 금방 세 가지 외우라고 했던 거 있죠? 그거 다시 말해보세요.]

[할머니 : 자동차, 나무, 모자.]

[할머니 : 간장공장공장장.]

[보건소 의사 : 93에서 7을 빼면?]

[할머니 : 84인가? 86이네.]

혈연으로 묶인 가족은 아니지만 일곱 명의 할머니는 이렇게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줍니다.

든든한 친구로, 다정한 동반자로 새로운 가족이 된 상정마을 칠공주.

이제, 심심할 틈도, 외로울 틈도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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