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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만 있었어도"...꺼져가는 시골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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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6-03-25 10:39
앵커

생사가 오가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농어촌 지역에서는 멀찍이 떨어져있는 응급실에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응급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아서인데요, 박조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사]
경북 의성군의 한 시골 마을.

이 마을 주민들은 4년 전 그날 밤을 악몽으로 기억합니다.

[우종두 / 경북 의성군 안계면 주민 : 저쪽에서 화물차가 오면서 자기는 이쪽으로 걸어가다가 서울 오는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여기서 사고가 나서.]

저녁 8시.

왕복 2차선 도로를 걸으며 집으로 향하던 김 모 씨가 마주해오던 화물차에 부딪혔습니다.

가해 차량인 화물차 운전자는 곧장 김 씨를 태우고 500m 병원으로 달렸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우종두 / 경북 의성군 안계면 주민 : 사람을 쳐서 급한 상황이 되니까 여기서는 병원이 좀 떨어졌잖습니까. 그래서 연락을 취하면서 병원에 가니까 운영을 안 하고 의사도 없고, 응급실 운영도 안 하고.]

당시 의성군에 있는 응급실은 모두 4곳이었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태였고 김 씨는 사고 장소에서 30km나 떨어진 상주시로 실려 가야만 했습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걸리는 거리입니다.

응급실을 찾아 헤매던 김 씨는 결국 과다 출혈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종두 / 경북 의성군 안계면 주민 : 그렇게 돌아가시니까 너무 억울해서. 죽을 사람도 아닌데.]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는 사고는 마을에서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119 소방대원 : 귀 쪽으로 출혈이 있다는 건 두부에 손상이 있다는 건데 근처에 의료기관이 없으니까 먼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때 당시 보면 상주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했고 사망하셨죠.]

약속이라도 한 듯 한꺼번에 사라진 시골 응급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경북 의성에서 약 230여km 떨어진 경남 하동으로 향했습니다.

지리산 남쪽 끝자락.

섬진강의 마지막 물길을 품은 이곳은 해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매화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이 지역에는 응급실이 단 한 곳만 남았습니다.

[기자 : 원장님을 뵈러 왔는데요, 지금 어디 계신가요?]

[직원 : 네, 지금 응급실에 계세요.]

텅 빈 응급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한 사람, 바로 이천형 원장입니다.

[이천형 / 경남 하동군 병원 의사 : 답이 없잖아요, 그러니 그만 두는 게 문제가 아니고 망한다는 말입니다.]

현재 이 원장의 병원 응급실도 벼랑 끝에 몰려있습니다.

바로 정부의 '응급실평가, 삼진아웃제도' 때문입니다.

정부는 매년 농어촌 응급실들을 평가해 법정 기준을 못 채우면 지원금과 지원 인력을 가차 없이 줄여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3년 연 속 기준을 위반하면 지원금 0, 응급실 지정을 취소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 원장의 병원도 응급실 전문의 한 명을 구하지 못해 올해 3진 아웃 대상에 들었습니다.

[이천형 / 경남 하동군 병원 의사 : 결국은 안 되면 폐쇄하는 수밖에 없죠. 우리가 어디 돈을 땅에서 차서 내주는 것도 아니고 결국 환자도 많아지고 응급실도 간호사들이나 의사들이 많이 구해져야 하는데 일부에서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등 이상한 이야기를 하지만, 뭘 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으면 해답이 없죠.]

계속되는 운영난에 응급실 문을 닫기로 했다는 이 원장.

하지만 정부는 생각지도 못했던 예외 규정을 들이댔습니다.

지역에 단 하나 남은 응급실이니 어쨌든 운영을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원금과 인력은 지원해줄 수 없다는 정부.

3년이나 법정 기준을 위반했으니 원칙상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겁니다.

참다못한 이 원장은 응급실 운영권을 반납하러 직접 군청까지 찾아갔습니다.

[기자 : 반납까지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맞나요?]

[이천형 / 경남 하동군 병원 의사 : 네, 반납하러 갔죠.]

[기자 : 군청에요? 근데 어떻게 되셨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자치단체도 난색을 표했습니다.

일단 열어 놓고 기다려 달라는 것입니다.

[하동군 보건소 관계자 : 여기서 진주까지 1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관광지니까 어려움이 여러 가지 되도록. 일반 고속도로로 가도 50분에서 1시간 가까이 소요되거든요.]

현재 시골 마을의 사정은 비슷합니다.

어느 누구도 돈이 안 되는 응급실을 열겠다고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4년 전 모든 응급실의 불이 꺼졌던 의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인기 / 경북 의성지역 병원장 : 돌아가신 분이 거의 절반 정도는 제 친척 분이셨고, 다 아는 사람들 아닙니까. 들어보면 김 씨 같은 경우는 500m 아닙니까. 왜 못 살립니까. 충분히 살릴 수 있었고, 근데 그때 너무 괴로웠죠.]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혼자 응급실 문을 다시 열었다는 김인기 원장.

이제 이곳이 의성에 남은 ‘마지막 응급실’입니다.

[신상도 / 응급실 환자 (의성군 두천리) : 병원은 많아. 병원은 많지만 해만 빠지면 문 닫거든. 근데 여기는 언제나 문 열어 놓거든.]

[기자 : 여기 없으면 어떻게 할 뻔 하셨어요?]

[신상도 / 응급실 환자 (의성군 두천리) : 여기 원장 없으면 죽는 사람 많죠. 대구까지 가야 하고 의성까지 가야 하고 뭐..차가 있나 뭐가 있나.. 당장 집구석에 앉아서 죽어야지 뭐 할 수 없지.]

아버지 뜻을 따라 고향에 내려와 19년째 병원을 이어왔지만, 김 원장은 지금 또다시 절벽 끝에 몰려 있었습니다.

[김인기 / 경북 의성지역 병원장 : 그때 아버님이 고등학교 선생님 하실 때인데, 너는 꼭 의사 돼서 여기 와서 병원을 꼭 차려가지고... 그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게 사실 좀... 제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인구가 적고 고령층이 많은 농어촌.

응급실 환자가 한 명도 없는 날이 수두룩합니다.

[김인기 / 경북 의성지역 병원장 : 응급실이 발목을, 내 인생에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죠.]

그러다 보니, 병원 자체 수익으로는 한 해 6-7억 원에 달하는 응급실 운영비를 충당할 수 없고, 시골 응급실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정부가 정한 인력을 채워야 지원금을 다 받을 수 있지만, 정상적으로는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현희 / 임상병리사 : 일단 인력이 제일 부족하죠. 진짜 부족하고 병리사도 저 포함해서 둘밖에 없고요.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 네 분 정도 계시고요. 젊은 사람들이 오기엔 꺼려지는 곳? 너무 시골이라서. 몇 분 오셨다가 가신 분들도 되게 많아요. 힘들어서.]

김 원장도 응급실 의료진을 구하려고, 별도 기숙사와 사택 제공은 물론, 심지어, 하루 13만 원에 달하는 콜택시 비용까지... 무리한 출혈을 감행했습니다.

하지만 전담 간호사 5명은 채우지 못 했고, 오히려 법정 기준을 어겼다는 ‘이유’ 만으로, 정부의 인력과 지원비는 깎여 내려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병원은 법정관리 4년째, 이제 빚더미에 앉았습니다.

[김인기 / 경북 의성지역 병원장 : 이제 올해 마지막 한 번 남았는데 정말 내가 한 번 해보고 언론에도 한번 호소해보고, 법 개정도 해 보고 하는데 그럼 마음 가진 사람들이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시골 마을의 마지막 응급실.

그 곳을 지키기 위한 골든타임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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