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박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대법원 제동

야박한 '업무상 재해' 인정에 대법원 제동

2016.02.14. 오후 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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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엔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가 쉽지 않은데요.

상사의 질책과 모욕감을 견디지 못한 회사원과 또 학교폭력 업무에 시달리던 교사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대법원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종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콘도미니엄 업체 간부로 일하던 이 모 씨는 회사가 합병된 이후, 한직으로 발령이 나고 상사와의 마찰이 잦아지면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0년 8월 고객에게까지 심한 욕설을 들은 직후, 객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목숨을 끊었고, 지갑에선 상사들을 원망하며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가 발견됐습니다.

이 씨 유족들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유족급여를 신청했지만 거부되자 소송에 나섰는데, 1·2심은 이 씨가 우울증 등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이 씨가 자살을 선택할 만한 다른 이유가 없었던 데다, 회사에서 당한 자존심 손상과 모욕감,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건에 직면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게 돼 급격히 우울증이 유발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업무상 재해를 인정한 겁니다.

중학교 수학교사이자 학교 폭력 업무를 담당하던 현 모 씨도 지난 2012년 9월 학교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유족들은 학교폭력 사건으로 학생들에게 잇달아 가혹한 조치가 내려지고 여러 구설에 오르자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업무상 재해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재판에서 1·2심은 사망 전 스트레스 지수가 정상이었던 건강검진 결과 등을 이유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업무 이외엔 우울증세가 발생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며, 또 한 번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선일 / 대법원 공보관 : 학교 폭력 업무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있는 데다가, 사망 당일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곧바로 목숨을 끊은 점 등이 공무상 재해 판단의 근거입니다.]

현행법은 근로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업무상의 이유로 정신적 이상 상태였다는 점이 의학적으로 증명되거나 진료를 받은 적이 있어야만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진료를 받은 적이 없더라도, 자살을 선택할 다른 이유가 없었다면 적극적으로 근로자 편에서 업무상 재해 요건을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습니다.

YTN 이종원[jongwon@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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