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고유의 명절, 설 풍속 변천사

민족 고유의 명절, 설 풍속 변천사

2016.02.08. 오후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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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용수, 코미디언

[앵커]
설 명절 잘 보내고 계십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요즘 설 쇠는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 고유의 설명절. 그동안 이게 어떻게 변해왔는지 참 궁금했어요.

그래서 설 풍속의 변천사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코미디언 엄용수 씨와 함께 합니다. 오늘 어떻게 차례 지내셨습니까?

[인터뷰]
집에서 차례도 했고요. 가족들끼리 모여서 차분하게. 왜냐하면 나가서 움직이면 다 돈이 들거든요. 그리고 괜히 추운 데 돌아다녀봐야 빙판에 미끄러지기만 하지 더 있겠습니까? 그래서 집에서 TV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설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봤습니다.

[앵커]
고향은 안 다녀오셨어요?

[인터뷰]
고향은 미리 다녀왔죠. 많이 막힐 것 같아서 미리 가서 동네분들한테 인사도 다 하고 묘에도 다녀왔습니다. 요새는 미리 다녀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앵커]
미리미리 다녀오고 옛날에는 차도 막히고 그래도 1년에 한 번, 두 번 가니까 꼭 명절 맞춰서 갔는데 이번에는 2, 3시간이면 가는 곳 많으니까요.

[인터뷰]
미리 가는 것. 그것이 현대적인 감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앵커]
오늘 혹시 차례상 지내시면서 오늘 느낀 점은 없으세요? 많이 달라졌구나.

[인터뷰]
이제 간소화됐죠. 옛날에는 조상님한테 뭘 많이 차리고 각양각색 좋아하시는 걸 올려놓고 그래야 잘하는 걸로 생각했는데 조상님들도 과소비하지 말고 간편하게 해라.

[앵커]
과소비하지 말고. 떡국은 드셨습니까?

[인터뷰]
떡국도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 떡국이라는 게 뭐냐하면 하얗고 뽀얗고. 시작이라는 말이죠. 백지 위에 하얗게. 그리고 떡국을 만들려면 가래떡이 길잖아요. 그래서 무병장수. 그런 뜻도 담겨있고 그게 깨끗하다는 뜻,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

[앵커]
방앗간에서 떡 뽑아오면 화면에 나옵니다마는 어머니들이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자르고 떡도 만들고 차차례도 지내고. 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어르신들한테.

[앵커]
요새는 방앗간 보기 자체도 어려운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데 옛날에는 방앗간 앞에 장사진을 치고 내일이 명절인데 오늘 밤 12시, 새벽 1시간까지 가래떡을 뽑았어요. 그거 왜 그랬냐 하면 갓 태어난 음식, 갓 만든 음식 그걸 조상한테 바쳐야 그게 정성이지 미리 만들어놓고 딱딱하게 굳은 걸 데워서 하면 불경한 것이다. 그러니까 방앗간에서 바로 나온 걸 갖다가 꼭 모시려고 그러다 보니까 모든 집들이 그렇게 몰리니까 방앗간이 밀리고 새치기 하지마, 내가 몇 번인데. 여기 줄이 또 생겼네. 이러죠.

[앵커]
아까 시작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하셨는데 사실 일반적으로는 떡국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잖아요. 어떻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요새는 청춘이냐, 노인이냐가. 설이 왜 설이냐? 설렌단 말이에요. 설렘이 있으면 젊은이고 설렘이 없으면 노화가 된 것이죠. 그래서 요새는 나이를 초월해서 떡국을 많이 먹어도 열정이 있으면 젊은 거고.

[앵커]
우리는 떡국을 많이 먹는데요. 북한에서는 만둣국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거 매생인가요? 살짝 담겨 있는데.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입니다. 어떤 떡국이 맛있을까요? 여러 가지 요리 방법이 있습니다마는 부모님이 해 주신 떡국. 옛날에 먹던 떡국이 제일 맛있겠습니다마는.

[인터뷰]
특히 옛날 떡국은 그냥 가래떡 썰고 만두가 하나, 둘 있으면 좀 있는 집이죠. 그랬는데 요즘에는 거기에 아까 매생이 이야기하셨잖아요. 굴도 들어가고 매생이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가 있어서 어우러지니까. 떡이 노란떡, 초록색 떡 다양하게 있습니다.

[앵커]
만두 빚는 모습도 지금 보고 계십니다. 북한에서는 만두를 많이 떡어서 만둣국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떡만둣국 떡이 위주가 되는데 북한은 만두가 위주가 된다고 하는데요.

[앵커]
아까 이윤재 기자가 풍경을 전해 줬잖아요. 일상적으로 차분하게 보내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앵커]
설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세배입니다. 아이들은 세뱃돈 받는 재미에 설날을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설이라는 건 가진 쪽에서 없는 쪽으로.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이렇게 흘러가야 되거든요. 그러니까 부자들이 상다리가 휘게끔 많이 차리는 건 뭐냐. 그걸 누가 다 먹을 수도 없고 냉장고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뭐냐하면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란 말이죠. 세배도 마찬가지죠. 부유한 쪽에서 없이 산다든가, 너무 어렵다든가 그런 쪽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세뱃돈을 많이 준비하고 또 어르신들 보면 그걸 신권으로 준비를 다 해서.

[앵커]
옛날에는 다 신권이었죠.

[인터뷰]
누가 세배하러 오면 격려하고. 세뱃돈을 받으면 반드시 학용품을 사거나 했죠. 일종의 장학금이고 격려금이고.

[앵커]
아주 옛날에도 세뱃돈을 주고 받는 게 풍습이었나요?

[인터뷰]
그렇죠. 전에는 뭐냐하면 음식을 음식을 주로 접대를 했어요. 왜냐하면 먹고사는 게 문제고 삼시세끼 먹고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랬는데 이것이 변해서 시대에 맞게 지폐로 주는 게 된 것이죠.

[앵커]
그런데 요즘 애들은 5000원짜리 주면 세뱃돈도 아닙니다. 어? 뭐예요 이렇게 한단 말입니다. 아이들한테 물어봤습니다. 설문조사를 했는데요. 초등학생은 1만원, 기본 1만원을 줘야 된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은 3만원, 그리고 대학생은 5만원 이상이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어떻습니까?

[인터뷰]
초등학교 때는 제가 1원, 2원, 10원 그렇게 받아봤고 중학교에 와서 100원짜리를 받아봤어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돈을 줄 때는 확실히 교육을 시켜야 됩니다. 저도 오늘 손자들, 손녀들한테 돈을 주면서 귀하게 써야 된다. 정말 이건 벌기가 힘들 거란다. 그리고 이것은 소중하게 너희들 공부하는 데 꼭 그런 데 써야 된다.

[앵커]
그런데 보통은 아이들 주잖아요. 그러면 왜 엄마가 가져갑니까? 왜 엄마가 가져가서.

[인터뷰]
어머니가 가지고 가시는 게 아니고 내가 보관해서 너 이 다음에 대학 갈 때, 너희들 장가갈 때 시집갈 때 밑천으로.

[앵커]
지금 쓰고 싶은데.

[인터뷰]
어머니들은 사시다 보면 쓰시죠.

[앵커]
그러다 보니까 아직도 여전히 첫째, 둘째, 셋째 차별도 있는 것 같아요. 장남은 좀더 주고.

[인터뷰]
그렇습니다. 옛날에 설빔이. 저는 삼남이었어요. 그래서 형님들 거 물려받아요. 그래서 새것을 입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앵커]
설빔을? 형 것을 입고?

[인터뷰]
그러니까 어머니가 양말만은 새거야. 그러면 그 양말이 내가 입은 것,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양말이 진짜 내 거고 전부 형으로부터 물려 받았어요. 그게 삼남의 설움입니다. 그러니까 지금도 아마 그런 차이는 있어요. 아무리 장남, 차남, 셋째. 1:1:1이라 하더라도 확실히 먼저 태어난 형을 좀 미뤄져야 집안의 위계질서도 서고.

[앵커]
왠지 엄용수 씨만의 질서가 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어떠셨어요, 세뱃돈 주실 때?

[인터뷰]
저는 이번에 다 똑같이 줬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똑같이 했는데 이번에 높였어요.

[앵커]
아이들이 많이 좋아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하고 싶은 걸 해라.

[앵커]
또 하나가 덕담입니다. 물건도 주고 돈도 주지만 아이들한테 올해는 공부 잘해라. 올해는 대학 가야지. 그런데 하지 말아야 될 말이 이제는 시집가야지 이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 되고요. 덕담 어떤 게 있습니까?

[인터뷰]
그래도 할 때는 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주로 나이드신 분들에게는 해서 좋고 들어서 좋고 또 격식도 있어야 돼요. 그래서 저도 무슨 이야기인지도 모르지만 늘 하던 것이니까 욱일승천하시고 기사회생하시고 만사형통하시고 권토중래하시고 와신상담하시고. 뭔지 모르지만 그런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고 격이 높아지잖아요.

그리고 어린이들은 건강해라, 싸우지 말아라, 잘커야 된다. 어머니 속썩이지 말고. 그래서 오늘 할 얘기 다 했습니다.

[앵커]
게임 많이 하지 말고.

[앵커]
혹시 어린 시절에 들으셨던 덕담 중에 기억에 남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인터뷰]
옛날 어르신들은 지금 하고 달라요. 부자 되라, 건강해라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큰일 해야 된다, 사회 이바지 하는 사람었을 돼야 한다. 동네에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야 돼. 말씀이 달라졌어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안중근, 윤봉길 의사가 된 것 같고 어르신들이 나한테 기대를 거는구나. 자유화, 민주화를 위해서 뭔가를 해야지, 꿈은 그랬습니다.

[앵커]
담대한 꿈을 가지고 계셨네요. 담대한 꿈을 가지려면 몸이 깨끗해야 됩니다. 목욕탕을 가잖아요. 대중목욕탕. 저는 사실 오늘 아침에도 아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보통 전날 가거나 당일날 가고 대중목욕탕 가는 데 항상 이때만 가면 오늘은 좀 덜한데 어제 가면 사람들 정말 많습니다.

[인터뷰]
그런데 그것도 하루 전에 몇 시간 전에 목욕탕을 가냐? 몸을 조금이라도 더 깨끗한 상태에서 조상께 절을 하려고 임박해서 목욕하는 겁니다.

[앵커]
엄용수 씨 께서 어리셨을 때도 목욕탕에 사람들 많았습니까?

[인터뷰]
왜냐하면 우리 가업 구조가 제가 어렸을 때는 아파트 문화가 없었어요. 그러니까 집에 목욕탕 시설이 안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부 목욕탕으로 몰리니까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앵커]
연중행사가 되는 거죠.

[인터뷰]
씻었는지 안 씻었는지. 그리고 시끄럽고 거기에 와서 양말 빠는 사람, 별의별 사람. 그런데 그렇게 북새통 난리를 쳐도 나올 때는 다 깨끗해. 그래서 목욕탕이 고마웠어요. 진짜 목욕탕 가면 너무 기분 좋았어요.

[앵커]
또 여러 가지 모습이 달라졌지만 요즘에는 널뛰기나 연날리기, 심지어 윷놀이하는 모습도 잘 볼 수 없을 것 같아요.

[인터뷰]
옛날에는 그게 왜 성행했냐하면 그것밖에 할 게 없었어요. 뭘 할 게 있어야지, 전화기가 있어야지, 게임기가 있어 뭐가 있어. 집에 있는 물건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거야. 윷놀이하고 널뛰기하고 그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문화가 하지 말라고 해도 융성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하라고 해도 거의 하는 아이들이 없고.

[앵커]
요즘에는 식사 끝나면 거의 집으로 돌아가거나.

[앵커]
그러니까 빨리 며느님들은 빨리 집에 가셔야 되고. 아들들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보니까 왜 벌써 가, 좀더 있다 가. 이 말이 좀.

[인터뷰]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사는지조차 모르게 1년에 겨우 한 번 보면서 빨리 만났다가 빨리 헤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약간 그런 게 있어요. 등산을 가도 산을 즐기고 산행으로 체력단련하는 게 아니라 남보다 빨리 정상에 올라갔다가 빨리 집으로 와서. 빨리 문화에 길들여져있으니까 역시 명절도 빨리 지내고 빨리 보내고 그러다 빨리 돌아가십니다. 그러니까 좀 천천히, 천천히 볼 거 보고 대화할 거 하고 생각할 거 하면서 그렇게 지내는 명절. 그게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차도 막히고 이런 것들도 영향이 있을 거예요.

[인터뷰]
오래 살려면 천천히 살아라. 오래 살려면 천천히 살라. 그게 명언이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음식도 천천히 먹고 인사도 천천히 남기시고 좀더 천천히 할 필요가 있어요.

[앵커]
요즘에는 고속도로가 정체가 될 만큼 주로 자동차로이동들을 많이 하시는데 예전에는 기차로도 귀성하지 않았습니까?

[인터뷰]
기차, 버스. 정말 그때.

[앵커]
무궁화로.

[인터뷰]
정말 고향 한번 가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정원을 초과해서 안내양이 못 타게 하면 창문을 열어줍니다, 위에서. 열어서 밑에 못 탄 사람을 싣고 가려고. 그렇게 해서 막 했죠. 고향가는 길이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북새통을 치고 난리를 치는데 그다음날 새벽에 보면 다 가 있어요. 한 사람도 고향 못 가고 서울에 있는 사람 없었어요. 신기했습니다. 그렇게 줄을 서고... 그리고 주차관리하는 사람들이 작대기를 들고 앉아, 앉아, 줄서, 줄서 그러면 순진했어요. 그 지휘봉에 따라서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앵커]
저도 그런 기억이 나는데요. 어렵게 좌석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탔던 게 무궁화호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이게 여기서 타고 그 안에 좌석 있는 데까지 가지를 못해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러니까 좌석의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2시간이면 오는 거리라서 2시간 그냥 서서 왔어요.

[인터뷰]
네 자리, 내 자리 아니고 서면 어때. 무조건 열차 안에 들어가만 있으면 다행이에요. 어떻게 해서 들어가있든 엎어져있든 끼어있든 그때 그 시절이 고향가는 기분도 났고 마침 고향에 갔다 오면 전쟁에서 이기고 온 것처럼 훈장을 단 것처럼 뿌듯한 것도 있었습니다.

[앵커]
마지막으로 선물 이야기만 간단하게 해 보죠. 옛날에는 양말 귀한 선물. 아까 말씀을 하셨잖아요. 양말도 귀한 선물, 참치세트도 귀한 선물. 지금도 많이 합니다마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인터뷰]
그런데 5, 60년대에는 밀가루, 농수산물, 설탕 이런 쪽으로 갔다가 70년대, 80년대쪽으로 오면 공업제품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혁띠라든가 수건이라든가 이런 생활용품들. 비누, 치약, 칫솔. 90년대쯤 와서 상품권. 상품권이 나왔다는 건 뭐냐하면 그만큼 우리가 경제가 커졌다는 거죠. 사고 싶은 것을 상품권으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그런 시대로 왔다가 이제 종합선물세트 그다음에 상품권을 거쳐서 2000년대 오면서는 건강이 중요하단 말이에요. 그래서 홍삼, 수삼, 백삼, 만삼 이런 것. 건강을 기원하는 그런 건강식품.

[앵커]
다이알 비누 선물세트. 그다음 저거 똑딱비누. 수저 세트, 스타킹. 스타킹도 선물 많이 하는 선물이었습니다.

[인터뷰]
스타킹 대단했죠.

[앵커]
이광연 앵커는 스타킹 선물 이해가 안 되세요?

[인터뷰]
스타킹 선물은 뭐 이해가 안 가요.

[인터뷰]
저때는 저걸 신는 사람도 드물어요, 귀했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명품까지. 명품이 조금 비싸고 품위가 있잖아요. 그리고 외국여행 상품권. 지금 보니까 외국여행객이 작년에 비해서 20%가 증가가 했대요. 그러니까 외국에 여행다녀오십시오 하는 그 선물이 최고예요. 그리고 한우는 시대를 초월해서 한우가 제가 알아보니까 16% 더 팔렸다고 하죠. 그러니까 한우는 시대를 초월해서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좋은 선물입니다.

[앵커]
어떤 선물을 받으시면 제일 좋았습니까, 지금까지?

[인터뷰]
저는 어떤 선물이고 받는다는 것. 내용은 둘째입니다. 내용이 무슨 문제가 있어? 누가 내 생각을 하고 나를 챙겨줬다는 것. 그게 너무너무 고맙죠.

[앵커]
선물은 또 나누는 데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내가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에 그 선물을 같이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그분들한테 나눠준다는 것. 그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설 풍속의 변천사, 코미디언 엄용수 씨와 함께 살펴봤습니다. 명절 때마다 여기 와서 얘기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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