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속으로] "아빠, 그래도 고마워요"...26년간 기다린 '코피노'

[사람속으로] "아빠, 그래도 고마워요"...26년간 기다린 '코피노'

2015.11.29. 오전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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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코피노'란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이르는 말인데요.

아버지들이 필리핀 여성과 아이들을 현지에 둔 채 떠나버려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YTN 연속기획 '사람 속으로', 김승환 기자가 필리핀 현지에서 26년 동안 한국인 아버지를 그리며 살아온 코피노 여성을 만나고 왔습니다.

[기자]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차로 8시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인구 10만 명의 도시, 다옛(Daet).

낡고 오래된 아파트 입구에 놓인 싱그러운 화분들이 오는 이를 반겨줍니다.

가파른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면 나타나는 자그마한 공간.

여기에 26년 동안 어머니가 간직한 아버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딸이 있습니다.

[캐서린 마다랑, 코피노]
"어렸을 때 특히 더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누구나 가족 모두와 함께 자라길 바라잖아요. 가족의 날 같은 기념일 때 엄마하고 저밖에 없으니까..."

지난 1989년 건설회사에 다니며 필리핀에 파견 왔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랑에 빠졌지만, 캐서린이 어머니 뱃속에 있던 3개월째 홀연히 한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때부터 결혼도 하지 않고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온 어머니.

속절없이 지난 시간에 무심히 가버린 사람을 원망할 법도 하지만 고맙다는 말뿐입니다.

[자넷 라치카 마다랑, 캐서린 어머니]
(그분을 만나면 뭐라고 말하고 싶으세요?)
"고맙다고 하고 싶어요. 저에게 아름다운 딸을 낳게 해줘 고맙다고요. 그 사람은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어요. 아직도 그립습니다."

바람이 컸던 덕분일까.

모녀는 사진 속에서만 그리던 남자와 지난 8월 기적적으로 연락이 닿았습니다.

코피노 아버지를 찾는 한 포털 블로그에 아버지 사진과 이름이 올라간 뒤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내년쯤 보러 가겠다는 기약까지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다시 감감무소식.

캐서린은 그때부터 아버지를 만나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언제고 이쪽에서 먼저 아버지를 만나러 한국에 가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습니다.

[캐서린 마다랑, 코피노]
"여기는 지방이라 월급을 조금 받아요. 하루에 290페소(약7천 원)정도.:"
(그 정도면 충분한가요?)
"사실 아니죠. 충분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엔 변함이 없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가족사진을 찍고 싶은 것이 캐서린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보고 싶다는 성급한 마음을 일단 편지로라도 달래 봅니다.

26년 만에 전하는 소식이 바다 건너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캐서린 마다랑, 코피노]
"아빠 안녕하세요! 저는 캐서린 마다랑입니다.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나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빠를 만날 생각에 너무 기대돼요. 안아주고, 뽀뽀해주고 싶어요.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아빠 보고 싶어요. 사랑해요'"

YTN 김승환[ksh@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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