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컷뉴스] 5만 원권 위인, '장영실'이 될 수도 있었다?

[한컷뉴스] 5만 원권 위인, '장영실'이 될 수도 있었다?

2015.10.11. 오전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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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뉴스] 5만 원권 위인, '장영실'이 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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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컷뉴스] 5만 원권 위인, '장영실'이 될 수도 있었다?

2009년 등장한 5만 원권 ‘신사임당.’ 선정 당시 다른 도안 후보로 신사임당 외에 어떤 위인이 있었을까요?

'백범 김구' (1876~1949)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아니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추사 김정희' (1786~1856)
청나라 지식인들을 경탄시킨 뛰어난 ‘학자’
금석학을 연구하여 독창적인 서체를 개발한 ‘서예가’
날카로운 감식안과 평으로 수많은 후학을 길러낸 ‘예술인’
수많은 사람들의 찬탄을 이끌어 낸 ‘문인화가’

'도산 안창호'(1878~1938)
“나는 밥을 먹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먹고, 잠을 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잔다.”

'유관순'(1902~1920)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장보고'(~846)
청해진을 설치하고 병사들을 지휘하여 해적을 소탕하고 서남부 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고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했다.

'장영실'(조선 태종·세종)
“이제 자격궁루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장영실)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 1836)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조선 최고의 실학자이자 개혁가

'만해 한용운'(1879~194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신사임당과 끝까지 각축을 벌였던 위인은 ‘장영실.’ 한국은행 측은 신사임당이 선정된 배경으로 한국 사회의 양성 평등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성학계에서는 “신사임당은 여성의 사회 참여와 상관없는 유교적 여성관을 상징한다”며 신사임당 선정을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얼굴’과도 다름없는 화폐 속 위인. 만약 10만 원권이 발행된다면 이번에는 어떤 인물이 들어가게 될까요?

한컷 디자인: 정윤주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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