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축구팀, 9박 10일 평양 체류기

유소년 축구팀, 9박 10일 평양 체류기

2015.08.28. 오후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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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성, 남북 체육교류협회 이사장 / 유태목, 경기도 유소년축구팀 감독 / 임재혁, 경기도 대표팀 주장

[앵커]
남북간에 긴장이 최고조까지 치달았을 때 그때 평양에 계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때 걱정을 하셨죠. 유소년 축구대회가 평양에서 열렸고 우리 대표팀이 거기 계속 있었던 겁니다. 저희가 그 중에 세 분을 오늘 초대했습니다. 당시 분위기는 어땠는지 그리고 직접 9박 10일이나 있었는데 직접 눈으로 본 평양의 모습은 어떤지 들어보겠습니다.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그리고 유소년 축구팀 감독 유태목 감독님,임재혁 선수, 주장입니다. 어서오세요.고생 많으셨죠. 마음도 졸이셨을 것 같고. 언제 돌아오셨나요?

[인터뷰]
25일에 전세기를 타고 심양을 거쳐서 한국에 도착했을 때 저녁 8시에 도착했습니다.

[앵커]
며칠 좀 쉬셨군요. 이번에 성적은 어땠었나요?

[인터뷰]
성적은 8개 팀 중에서 경기도팀이 2승 1무 1패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앵커]
원래 목표했던 정도입니까, 아니면 못 하십니까?

[인터뷰]
원래 4강에 올라서 결승전까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예전 마지막에 비긴 것이 골득실에 의해서 아깝게 4강에 진출을 못 한 겁니다.

[앵커]
평양에 도착하신 게 16일이었던 거죠?

[인터뷰]
네.

[앵커]
16일이었고 남북간 긴장이 고조됐었던 것이 20일, 21일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당시에 그 상황을 알기는 하셨습니까, 거기에서?

[인터뷰]
20일 오후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쪽에서 알려주더라고요.

[인터뷰]
주로 우리 선수단 입장에서는 상황 분위기보다는 대회를 준비하는 데 집중을 했고 저는 남북체육교류협회와 조선축구협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대회거든요. 그래서 북측 관계자들이 상황에 관련된 것은 전달을 했고 또 가기 전에 남측 정부와 저와의 비상연락망을 구축해 놨었습니다.

그래서 비상시에 남측 정부와 연결하는 비상연락망이 있어서 주로 남북의 비상상황은 제가 조율을 했고 또 우리 유태목 감독이나 선수들은 경기에 집중을 했습니다.

[앵커]
우리쪽에서는 가시기 전에 비상연락망 하면서 무슨 일이 혹시라도 있으면 어떻게 하라라는 지침이 미리 있었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하루에 두 번씩 평양의 상황을 알리고 또 남측 정부의 상황을 전달해서 비상시에 어떤 준비를 할 수 있는 그런 체제는 구축해 놨고요. 그런데 16일부터 20일까지는 현지 적응훈련기간입니다, 각 국가대표팀들이. 그런 점에서는 무리 없이 갔는데 20일 저녁 전 선수단 만찬이 있었습니다.

만찬에는 우리 남북한 선수단을 포함해서 300여 명이 참석을 했고. 그 중에는 북한 선수단과 임원 119명과 남한의 선수, 임원들 해서 70명 정도가 참석을 했었습니다. 그때 남북한의 만찬사라든가 이런 부분들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북한측 관계자가 남북한 군사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만찬사 문제도 서로 조율을 해야 된다. 그리고 우리 북측의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은 빼야 한다,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남북한의 군사 분위기가 안 좋은 부분을 들은 것이죠.

그리고 21일이 개막식이었습니다. 그 개막식이 열렸던 5.1 경기장에 관중이 7만 명 정도로 대단히 많이 모인 상황인데 경기를 진행하기 전에 북측 관계자가 저한테 어제 남북한에 폭탄이 왔다 갔다했다. 이제 내일 22일 오후 5시까지 우리가 준전시상황을 선포를 했는데 이게 더 악화될 수 있다, 그런데 제가 남측의 대표이니까 저한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상적으로 경기를 진행할 수 있겠냐는 그런 의지를 저한테 물어봤어요.

그래서 제가 북측 관계자한테 이럴 때일수록 안전하고 평화로운 대회를 진행해야 된다, 여기는 남북간에 경기가 아니라 국제대회이니 만큼 또 주변국가에 우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게 2회 대회거든요.

그래야 대회의 품질도 좋아지고 북측에 좋은 사례를 남겨야 되니까 이 대회만큼은 더 안 좋은 상황이 오더라도 진행하자. 그래서 북측 관계자가 위에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승인을 받고 그날 오후에 저한테 정상적으로 이 대회는 군사분위기와 관계없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상황인데 중간에 남측 정부로부터 저에게 메시지가 왔어요.

[앵커]
우리쪽 정부죠?

[인터뷰]
우리 정부입니다. 우리 정부에서 메시지 온 게 무엇이냐면 군사상황이 이렇게 위급하다는 것 아냐.네, 북측관계자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면 대회 진행은 어떻게 하느냐? 정상적으로 하기로 했다. 그러면 정상적으로 진행하려면 남한 국민들이 불안해하니까 북측으로부터 신변안전 담보를 받아달라. 그래서 지금 상황에서 신변안전 담보를 받아달라는 것은 잘하고 있는데 오히려 대회를 망칠 소지가 있으니 남북한의 두 공동주최자인 내가 대신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면 안 되겠냐 하고 우리 정부로부터 양해를 구했어요.

그런 뒤에 우리 정부에서 상의해 보겠다 해서 22일 오전에 저한테 신변안전 담보는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안 보내도 되겠다, 대회 전에 신변안전 담보를 받은 게 있었어요.

[앵커]
미리 가기전에 북한한테 받았습니까?

[인터뷰]
네. 받았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받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으니까 그래서 우리 남측 정부에서 저한테 더 큰 비상사태가 오면 철수지시를 내릴 수도 있으니 그런 것을 준비해서 정상적으로 대회에 임해라라고 ...

[앵커]
임재혁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죠?

[인터뷰]
네.

[앵커]
임 선수도 그런 상황이란 걸 알았습니까?

[인터뷰]
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다 경기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고 훈련을 받았습니다.

[앵커]
불안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습니까?

[인터뷰]
조금 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저희는 경기에 페이스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빨리 버리고 경기에만 계속 페이스를 맞췄습니다.

[앵커]
선수들끼리, 친구들끼리 그런 이야기를 나눴습니까?

[인터뷰]
나눴지만 제가 팀의 주장으로서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말고 경기에만 신경써서 좋은 성적을 내자고 했습니다.

[앵커]
김 이사장님께서는 남북간에 스포츠 교류를 여러 차례 해 오신 것을 제가 들었는데. 사실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저도 사실 걱정을 했고요. 여기에서 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 북측에서 괜찮겠느냐라고 했을 때 괜찮다고 하셨다고 하는데 과거에, 2013년에 개성공단 인질사태에 대한 우려도 있었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어찌보면 그때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고. 그런데 돌아왔어야 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았었거든요, 그때요.

그렇게 했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습니까?

[인터뷰]
글쎄요. 저희들은 운동장과 호텔에서는 특별히 그런 분위기를 못 느꼈어요. 그런데 이사장님께서는 외부에서 그런 분들과 그런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니까 우리는 그런 얘기만 들었지 잘 몰랐어요.

저희들은 사실 어떻게 보면 아주 좋은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하고 선수들도 잘 어울리고.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앵커]
거기에서 만나서 부딪치는 북측 선수도 있고 감독도 있고 관계자들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런 분들의 분위기나 태도들은 어땠습니까?

[인터뷰]
상당히 호의적이었고 친근감도 있었고. 같은 민족이고 또 축구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앵커]
북한 선수들도 많이 만났나요, 거기에서?

[인터뷰]
네.

[앵커]
어땠어요, 처음 만났을 텐데. 북한 청소년들을요. 어떻던가요?

[인터뷰]
정말 성숙하게 생겼습니다.

[앵커]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꼈죠?

[인터뷰]
일단 신체조건도 되게 크고 얼굴도 성인처럼 생긴 친구들도 몇 명 있어서 무서웠는데 좋은 이야기도 나누고. 경기장에서 좋은 경기를 나눴고 또 만찬 때 모여서 친하게 재미있게 놀았어요.

[앵커]
이야기를 해 보니까 똑같은 우리 또래구나. 우리와 똑같은 친구들, 그런 느낌이었던 모양이군요. 무슨 대화를 나누었나요?

[인터뷰]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남한과 북한의 여자들 얘기도 하고.

[앵커]
어떤 이야기인지 자세하게 얘기해 주세요. 남남북녀, 그런 얘기?

[인터뷰]
그런 것도 하고 여자들도 예쁘다고 하고.

[앵커]
북한에 가보니까 북한 또래의 친구들이 예쁘다. 진짜 그렇던가요?

[인터뷰]
네. 진짜 예쁜 친구도 많았습니다.

[앵커]
그랬더니 북한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뷰]
거기에서 느끼는 건데 여자가 자기들도 예쁘다고 생각한데요.

[앵커]
북녀들이. 그런데 궁금하거나 질문은 안 하나요?

[인터뷰]
한국은 어떠냐고 해서 되게 좋다고 하고 그런 식으로 얘기 많이 해서 즐거웠습니다.

[앵커]
한국은 어떠냐, 한국은 어떻게 살고 있냐, 그런 게 궁금했던 모양이군요. 그래서 어떤 얘기들을 해 줬나요?

[인터뷰]
재미있는 것도 많고 놀이기구나 이런 것도 다 똑같아서 정말 재미있다고 말했어요.

[앵커]
그 기간 동안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있었는데 그때 평양 곳곳을 다녀보셨을 것 아닙니까, 식사하러도 나가 보시고. 평양 분위기 어땠습니까, 그때?

[인터뷰]
경기장 안의 분위기는 우호적으로 했지만 경기장 밖에서는 평양시민들이 우리 정부한테 대하는 것은 아주 격앙된 태도라든가 우리 정부에 불만이 아주 많았습니다.

[앵커]
직접 그런 얘기를 하던가요?

[인터뷰]
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어요. 거꾸로.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우리 남북한 주민들이 느끼는 서로의 큰 이질감이 아닌가. 서로의 정보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거기에서 만나보신 평양 주민들은 적어도 그 주민들은 남쪽의 자작극으로 그냥 믿고 있는 모양이었군요.

[인터뷰]
아무래도 그렇죠. 북한사람들은 북한 정부에 대한 것에 있어서 신뢰를 할 수밖에 없겠죠.

[앵커]
그러면서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뷰]
이렇게 평화스럽게 축구 축제도 하고 하는데. 그런 부분들의 평화를 남한이 깨는 그런 분위기로 알고 있더라고요.

[앵커]
답하기가 좀 난처하셨겠는데요.

[인터뷰]
저는 그런 상황에서 항상 스포츠가 갖는 평화적인 상징 때문에 저는 체육과 관련된 것 말고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제가 관여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스포츠에 관련된 부분만 가지고 우리가 대화를 했으면 좋겠다 해서. 그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계속해서 마찰이 생기니까 그런 부분을 피해 나갔습니다.

[앵커]
타결된 다음에는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협상 타결이후.

[인터뷰]
협상타결이라는 것은 25일 새벽이었고 저희들은 군사긴장 상황속에서 20일 오후 5시가 사실은, 평양시간 5시가 타격시간이었거든요. 북한 북측 관계자와 그 시간에 같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5시가 됐을 때 어떻게 됐느냐고 했더니 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이런 포탄이 오고 가고 하는 것은 조금 유보된 것 같다, 그런 말을 하면서 그 상황에서 조금 더 연장돼서 24일날 정상적으로 대회를 마치고 나서 저희가 25일 아침에 비행기를 탔거든요, 평양에서.

비행기를 탄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공항 VIP실에서 조선노동신문에 나온 신문을 보면서 새벽에 타결이 됐다는 것을 우리 출발을 할 때 알려줬습니다. 그러니까 폐막식 때까지는 타결됐다는 이야기는 못 들은 거죠.

[앵커]
북한을 빠져나오실 때, 비행기를 타실 때 그때 안도감이 느껴지시던가요?

[인터뷰]
글쎄요. 저희는 빠져나왔다기보다는 잘 있다 잘 왔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은 관중이 거의 다 들어왔어요, 경기장에.

[앵커]
북한 친구들하고 헤어지면서 앞으로 또 만나자, 연락처도 주고 받고 그랬나요?

[인터뷰]
연락처는 안 받고 10월에 연천에서 하는 경기에 또 초대되면 더 그때는 좋은 경기를 하자고 이야기를 했어요.

[앵커]
10월에 어디서 한다고요?

[인터뷰]
아직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연천에서 한다고 알고 있어서.

[앵커]
연천에서 할 계획인가봐요?

[인터뷰]
1회 대회를 연천에서 했었습니다. 이 대회가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남북한을 오가면서 정기적으로 했던 경기입니다. 이게 2009년부터 남북관계가 악화돼서 중국에서 2013까지 하다 현 정부들어서 스포츠는 허용을 했기 때문에 국제대회로 작년 1회 대회 경기도 연천에서 했고 2회 대회를 평양에서 했었습니다.

그래서 3회 대회를 남쪽 도시에서 하는데 그걸 저희가 경기도와 강원도가 분산 개최하는 부분을 지금 현재 북측과 의견을 교환 중에 있는 상황입니다.

[앵커]
연천이 이번에 도발을 당했었던 곳인데.

[인터뷰]
작년에도 대회 전에 삐라 살포 때 북의 포탄이 떨어졌던 곳이죠. 그러니까 연천 같은 곳에서 축구경기를 하면 포탄이나 총알이 오가는 것 대신 축구공이 오가는 평화로운 상징적인 부분이 있다. 그래서 체육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또 이번 대회가 그런 좋은 계기를 만들었고. 이런 군사적 상황속에서 이렇게 경기가 잘 진행됐기 때문에 이후에도 이런 사례를 가지고 남북관계가 좀더 악화돼도 진행할 수 있는 그런 계기와 발판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앵커]
그런데 북한주민들은 여전히 정확한 진실을 전혀 모르고 있고. 남측이 왜 그랬느냐. 지금도 또 황병서는 돌아가서 자작극이라고 얘기하고 그러면 그것도 믿고 있을 거잖아요, 남쪽이 다 기획을 했다고.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좀 그런 면에서는 답답한 마음도 있고요.

옥류관도 가서 냉면도 드셨다면서요? 어떻던가요?

[인터뷰]
원래 저희 선수들은 예정에 없었는데요. 이사장님께 부탁을 드려서 저쪽에 허락을 해 주시라, 또 가기전에 연천 군수님한테 격려금을 받아서 이걸 선수들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는데 하도 냉면들을 먹고 싶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다 알고 왔더라고요. 그래서 허락을 받고 단체로 갔었습니다.

[앵커]
주장이 앞장서서 냉면을 강력하게 요구한 모양이죠? 어떻던가요, 먹어보니까.

[인터뷰]
냉면을 싫어했었는데 거기서 먹어보니까 너무 맛있고 담백해서 너무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앵커]
평양에서 열흘 동안 봤던 것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지금 어떤 건가요?

[인터뷰]
5.1 경기장이 제일 기억이 남습니다.

[앵커]
워낙 크니까. 유소년 경기에 10만 명이 들어왔다고 하면 정말 이례적인 일인데요. 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온 건가요, 관중들이?

[인터뷰]
아무래도 일반인들도 많이 오셨고요. 하얀색으로 보이는 부분은 학생들이고. 그런데 1, 2층 다 합치면 15만 명인데. 그런데 1층이 거의 다 찼으니까 10만 명 거의 가까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앵커]
북한팀이 축구도 굉장히 잘했다면서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거기는 몇년씩 같은 팀으로 해서 조직적으로 해 온 팀이고 그쪽의 대표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연령대의. 저희들은 각 학교에서, 경기도에서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전부 시합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들이 완벽하게 준비는 못 했고 몇 군데 학교에서 선수 선발을 해서 그렇게 해서 갔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까 저희들은 모여서 훈련한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그쪽 친구들은 몇년씩 꾸준하게 한 친구들인데 현지에 갔을 때는 서로 차이가 났어요. 그런데 저희들도 잘 준비를 하면 비등한 경기를 해서 앞으로 좋은 기회를 마련했으면 합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이제 그런 민간교류들, 서로 알고 또 많이 접해봐야 통일이 됐을 때 서로 우리가 다른 민족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고 같은 한나라가 빨리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노력들이 불안해하지 않고 앞으로 잘 많이 진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사장님 그리고 감독님, 주장은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세 분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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