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략 야욕 맞선 세계 평화의 꿈

일본의 침략 야욕 맞선 세계 평화의 꿈

2015.08.24. 오전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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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사죄는 이미 끝났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최근 담화를 두고 진정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럴수록 일본의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우리의 역사 인식이 중요할 텐데요.

안중근 의사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통해 우리가 배우고 연구해야 할 점을 김대근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 7발의 총성이 울렸습니다.

저곳에서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안중근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저것이 필시 늙은 도둑 이토일 것이다. 의아심이 머릿속에서 일어났다. 내가 본시 이토의 모습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만일 한 번 잘못 쏜다면 큰일이 낭패가 되는 것이었다."

이 결단의 순간은 당시 긴장된 국제 정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입니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안응칠 역사' 필사본을 국내에 최초 소개)]
"(러일 간 만주 지배권 논의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가 방문한) 세계사적인 위험 지구가 바로 하얼빈이었다. 그래서 만일 이토 히로부미가 죽지 않았으면 만주는 일본이 총괄 점령하는 양상이 나오지 않았겠느냐."

이미 일본의 야욕을 꿰뚫어 본 것은 물론, 국제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풀어줄 정도로 자유와 인권에 대해 선진적이었던 인식은 의거의 배경이 됐습니다.

"현재 만국 공법에 사로잡은 적병을 죽이는 법은 전혀 없다. 어디다 가두어 두었다가 뒷날 배상을 받고 돌려보내 주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런 면모는 안 의사가 이곳 뤼순감옥에서 사형 집행 직전까지 집필에 몰두했던 '동양평화론'에도 잘 나타납니다.

"지금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뻗쳐오는 환난을 동양 사람이 일치단결해서 극력 방어함이 최상책이라는 것은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익히 아는 일이다."

안 의사는 국가의 독립뿐 아니라 세계 평화까지 꿈꿨던 선지자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가 안 의사에 대해 아는 것은 하얼빈 의거, 한순간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안응칠 역사' 필사본을 국내에 최초 소개)]
"안중근 의사의 의거가 내셔널리즘(민족주의)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연구하고 강조해야 합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통해 세계평화에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범죄자, 테러리스트라는 망언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럴수록 우리 스스로 안 의사 의거의 배경과 의미를 더 깊이 연구하고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YTN 김대근[kimdaegeun@ytm.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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