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90초] 잔인한 경험

[개념90초] 잔인한 경험

2015.03.07. 오전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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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밖으로 꺼내기 매우 조심스러운 주제가 있습니다. 하여 '네모'라 지칭하려 합니다.

네모는 부정적 행위입니다.

국가에서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죠.

이 행위를 저지른 당사자와 조력자는 형법 제269, 270조에 의거 처벌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당사자는 부녀(婦女), 즉 여성을 뜻합니다.

2010년 연세대 보건대학원 조사에 따르면 네모를 한 여성이 전국적으로 17만 명이나 됐습니다.

이들이 다 처벌을 받은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암암리에 음성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탓인지 네모에 대한 찬반논쟁이 뜨겁습니다.

생명권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아이의 생명권 중 어느 것이 우선돼야 하는지가 논쟁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네모를 허용해야 한다는 사람들조차 이 행위 자체를 긍정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의 생명을 빼앗고 해당 여성에게 상상할 수 없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네모를 한 여성들은 '내가 그랬다는 것이 거짓말 같았고', '내 인생이 어떻게 될까 두려웠다', '어디서든 용납받기 힘든 일'이며, '다신 생각하고 싶지 않은 슬픔'이라고 말합니다. '올가미'이자, '지울 수 없는 낙인'이라고 자학하는 이도 많습니다.

이렇듯 여성들에게 너무나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는 네모는 다름 아닌 '낙태'입니다.

낙태는 사회가 가장 터부시하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낙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반의 책임이 남성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낙태를 마주 대할 수 있는 준비와 성찰이 필요합니다.

국가의 낙태에 대한 태도는 예방과 규제에만 치우쳐진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당사자인 여성을 범법자로만 보고 있는 것이죠. 찬반을 떠나 이러한 시각은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종교적 도덕적 논쟁과 법률적 단죄가 능사가 될 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그러는 사이 자격이 없는 사람이 시술을 하고 해외원정 낙태가 성행하는 등 음성적이고 비상식적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폐해만 쌓이는 현실을 우리 모두가 직시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허덕이는 여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낙태는 특정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언제든 닥칠 수 있는 현실의 문제이며 그에 따른 치유의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인식의 전환이 낙태를 바로 대할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이상엽[sylee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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