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 습격, 김기종은 누구인가?

미 대사 습격, 김기종은 누구인가?

2015.03.05. 오후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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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은 재야 문화운동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그의 전력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김기종은 과거 반일 활동에 주력했다가 최근에는 반미 운동으로 전환해 SNS 등에서 관련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먼저, 그의 SNS를 함께 보시죠.

김기종이 사흘 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의 문제점은 심각하다. 남북 서로가 신년사에서 밝혔던 대화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훈련이 끝나는 4월 말까지 대화가 이뤄질 수 없는 분위기"라는 발언 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엊그제도 자신의 블로그에 같은 취지의 주장을 하면서, "설날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된 이유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탓"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또 지난달 24일에는 미국대사관 앞에서 직접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면서 반미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이유도 이같은 극단적인 반미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김기종은 오늘 테러 행위를 한 뒤 경찰서에 출석하며 이렇게 말했는데요. 직접 들어보시죠.

[인터뷰:김기종, 미 대사 습격 피의자]
(왜 미 대사관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습니까?)
"그래야지 미국 놈들이 정신차리죠. 왜 전쟁 훈련합니까. 남북 정상회담 합시다."

오전 7시 40분쯤 범행을 한 김기종은 30분 뒤인 오전 8시 10분쯤, 경찰에 출석해 누운 채로 3시간 가량 조사를 받고 11시쯤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앰뷸런스 차량에 실리면서도 취재진을 향해 같은 주장을 반복했는데요.

이것도 들어보시죠.

[인터뷰:김기종, 미 대사 습격 피의자]
"전쟁 훈련 때문에 여기 남북 이산가족이 못 만나지 않습니까. 키리졸브 훈련 반대합니다. 전쟁 훈련 때문에 우리가 이산가족이 못 만났습니다. 전쟁 훈련 중단해야 합니다. 옛날에 팀스피릿도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팀스피릿처럼 전쟁 중단합시다. 팀스피릿도 때도 전쟁 중단했습니다. 아니 혼자 하지 누가 합니까. 팀스피릿처럼 전쟁 중단시킵시다. 전쟁 훈련 때문에 우리 남북 이산가족이 못 만났습니다. 전쟁 훈련 중단시킵시다."

현재 진보 성향의 단체인 '우리마당' 대표를 맡고 있는 김기종은 오랫동안 재야 문화운동가로 활동해왔습니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겠습니다.

1959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78년 광주 금호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84년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1995년 통일정책대학원을 졸업하고 1997부터 10여년간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로 강의를 맡기도 했습니다.

1984년 우리마당을 설립한 뒤 1997년 서울시민문화단체연석회의, 1998년 우리마당 통일문화연구소, 2006년 우리마당 독도지킴이를 잇달아 만들었습니다.

참 이력이 화려하죠.

한때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으로도 활동하면서 2000년대 중반 북한을 수차례 방문한 것으로도 확인됐고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에는 서울 도심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민주평통자문위원도 두 차례나 맡은 경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활동가로 활동해온 그의 전력을 보면, 극단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과거 반일 활동을 펼칠 당시, 일본 대사를 습격한 사건이 대표적인데요.

당시 사건을 정유진 기자의 리포트로 함께 보시죠.

[기자]

[기자]
모자를 쓰고 보안요원들에 의해 끌려나가는 50대 남성.

[인터뷰:김기종 씨, 지난 2010년 당시 일본 대사 습격 당시]
"너희들은 대한민국 국민 아니야? 왜 가만히 앉아 있어?'

이번에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씨의 2010년 모습입니다.

김 씨는 5년 전인 지난 2010년 7월 7일 저녁,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강연을 하던 시게이에 도시노리 당시 주한 일본 대사에게 손바닥 반 만한 콘크리트 돌덩이를 던졌습니다.

당시 일본 대사는 몸을 피해 다치지 않았지만 통역을 하던 일본 대사관 여직원이 손을 다치는 부상을 입었습니다.

우리마당독도지킴이 대장인 김 씨는 당시 '독도 문제와 관련해 대사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자 강연회에 참석했고 강연 전에 화단에서 주운 돌을 홧김에 던졌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뷰:김기종 씨, 지난 2010년 당시 일본 대사 습격 당시]
"내가 대변 할 수가 없다. 본국을 대표해서. 이메일로라도 답변을 하라고 분명히 직원들에게 전달을 했고, 전화도 했는데 아직까지 대답이 없어요."

이 범행으로 김 씨는 법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지난 2010년 주한 일본대사를 습격한 데 이어, 5년 만에 주한 미 대사를 습격한 김 씨.

동일인이 두 차례나 주한 외국 대사를 습격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이고 있습니다.

YTN 정유진입니다.

[앵커]
반미·반일 활동에 주력하며 극단적인 활동을 펼친 김기종의 전력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07년에는 지난 1988년 발생했던 '우리마당 습격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중 분신을 시도한 적도 있습니다.

김기종은 이 사고로 전신에 2~3도의 화상을 입었는데요.

우리마당 습격 사건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개막을 한달 여 앞둔 지난 1988년 8월 17일 새벽.

서울 창천동 신촌역 근처에 있는 우리마당 사무실에 괴한 4명이 침입해 여성 회원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사건으로 현재까지 진상은 규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백색테러'의 피해자에서 한미 동맹, 그리고 미 대사를 향한 테러 용의자, 즉 피의자로 전락한 재야 사회운동가, 그의 걸어온 길을 보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는데요.

그의 주장대로라면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이었다지만 이것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할 겁니다.

무엇보다 생명을 위협하고 해를 가하는 행위는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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