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널린 환풍구...도심 곳곳이 '지뢰밭' [정유진, 사회부 기자]

여기저기 널린 환풍구...도심 곳곳이 '지뢰밭' [정유진, 사회부 기자]

2014.10.20. 오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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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판교 테크노밸리 공연장 참사는, 전국 곳곳에 널려 있는 환풍구가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돼 또 다른 인명 사고를 예고하고 있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도심 곳곳이 '지뢰'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환풍구 안전 문제,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정유진 기자 나와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실 환풍구 사고가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요, 대형 인명피해가 나면서 환풍구 안전 문제가 재조명받고 있습니다.

정 기자, 도심 곳곳이 지뢰밭이라고요?

[기자]

지금 보시는 이곳은 서울 시청역 주변입니다.

역에서 3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이렇게 환풍구가 있는데요.

학생, 할머니 할 것 없이 편하게 환풍구를 밟고 지나가는 모습입니다.

일부 환풍구에는 보행 금지 경고문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어서 시민들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입니다.

한동오 기자의 뉴스부터 먼저 보시겠습니다.

[기자]

국내 공연장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사고가 난 뒤 다른 환풍구의 모습은 어떨까.

서울 대한문 앞 환풍구입니다.

환풍구 옆엔 '접근 제한' 경고문이 붙었고, 그 위를 걷는 시민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환풍구 위로 시민들이 걷거나 앉아 있었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입니다.

하지만 다른 곳의 사정은 다릅니다.

시청역 출구 앞의 환풍구 위로는 대다수 시민이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닙니다.

서울시청역 1번 출구입니다.

출구에서 불과 3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인도와 같은 높이의 환풍구가 자리 잡고 있어, 출퇴근길 보행자들의 인도처럼 이용되고 있습니다.

보행자가 다녀도 안전하기는 한 걸까.

이번 붕괴 사고가 난 판교 환풍구에서 수십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환풍구입니다.

발로 밟으면 덮개가 덜컹덜컹 움직이고, 한 손으로도 쉽게 들립니다.

환풍구 1㎡에 500kg까지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는 게 관련 기관의 설명이지만, 시민들은 장소마다 보행 규정이 다른 탓에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어디는 걸어도 되고 어디는 걸어서는 안 되는지 헷갈린다는 겁니다.

[인터뷰:통학생]
"환풍구 사고 나도 맨날 지나다니는 길이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다니는 것 같아요."

[인터뷰:권기현, 경기도 부천]
"사고 터지기 전에는 환풍구 밟고 왔다 갔다 했었는데 그 사건 이후에는 불안해서 지나가지 않고 있습니다."

서울 지하철 환풍구 2천4백여 개 가운데, 인도에 설치된 건 천7백여 개.

애초에 보행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닌 만큼, 안전 펜스를 설치하거나 추가적인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YTN 한동오입니다.

[앵커]

무심코 걸어다녔던 환풍구가 안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셈인데, 환풍구가 이렇게 깊고 위험한 시설인데 경고문구나 접근차단시설은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기자]

앞선 보도에서 나온 곳은 환풍구에 올라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대다수 환풍구에서 이런 경고문을 보신 분들이 드물 것 같은데요.

저도 사고 현장에 취재를 하러 갔는데, 환풍구가 나무가 있는 옆 정원과 평평하게 이어지는 구조였습니다.

물론 밟지 말아야겠지만 별 의심 없이 디딜 수 있는 접근이 쉬운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 경고문이 없고, 길에 사람이 많거나 길을 돌아가기 싫을 때 망설이지 않고 환풍구를 밟고 지나가는 상황입니다.

[앵커]

그런데 전국에 설치된 환풍구 수가 6천 개가 넘는다고요?

[기자]

전국에 설치된 환풍구 수는 6천 개입니다.

서울만 해도 3천 개가 넘고요.

수도권에는 3분의 2 정도인 4천 5백 개의 환풍구가 있습니다.

서울시가 밝힌 서울의 지하철 환풍구만 해도 2천4백여 개인데, 지하철을 포함해서 일반건물까지 환풍구 중에 80%가 보도 위에 설치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환풍구가 설치된 곳의 상당 수가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입니다.

[앵커]

이번 환풍구 추락사고는 처음이 아닌데요, 환풍구 관련 사고가 잇따랐는데도 그동안 관련 안전규정은 전혀 마련되지 않은 거군요.

[기자]

지난해만 해도 11월과 3월에 부산의 백화점과 서울 아파트 환풍구에서 10대 청소년이 추락해서 한 명은 목숨을 잃었고, 다른 한 명은 크게 다쳤습니다.

그런데도 환풍구 안전 대책은 지금도 전무한 상태입니다.

[앵커]

이번에 사고가 난 환풍구가 사람이 밟지 않는 지붕으로 간주돼서 약하게 설계됐다고요?

[기자]

이번 사고는 공연을 좀 더 높은 곳에서 잘 보려는 관람객들이 환풍구 위로 올라갔고, 한쪽으로 무게가 몰리면서 무너져 내려서 일어났습니다.

환풍구가 도심에서 너무 흔하기 때문에 그동안 위험하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밟더라도 그 밑이 10, 20미터 이상 깊이라는 생각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환풍구가 사람이 밟지 않는다는 전제 하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고한석 기자의 뉴스 보시겠습니다.

[기자]

피해자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구를 딛고 올라섰다 변을 당했습니다.

문제는, 이 환풍구가 사람이 밟지 않는다는 가정에 따라 설계됐다는 겁니다.

환풍구는 보통 지붕으로 간주돼 하중을 견디는 기준이 정해지는데, 사람이 사용하지 않을 경우 1㎡에 100kg만 견디면 됩니다.

산책로와 같이 사람이 다니는 길에 설치된 환풍구라면 1㎡에 300kg.

차가 지나다니거나, 지하철 역사 환풍구라면 500kg을 견뎌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환풍구는 가장 약한 단계인 1㎡에 100kg으로 설계됐기 때문에, 딛고 올라선 사람들의 무게를 견딜수 없었습니다.

환풍구는 지하 주차장이나 지하철 뿐 아니라 사실상 대부분의 건물에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합니다.

전국적으로 그 수가 너무 많아 통계를 내기 힘들어서, 실태 파악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환풍구의 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환풍구는 대부분 왕래가 없는 외진 곳에 있고, 수십명이 올라가는 것도 극히 드문 일인데 일괄적으로 안전 기준을 강화화면 지나진 규제일 뿐만 아니라 낭비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환풍구가 무너져 사람이 죽고 다치는 사고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YTN 고한석[hsgo@ytn.co.kr]입니다.

[앵커]

물론 이번 사고에서 올라가면 안 되는 환풍구에 올라간 사람들이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만약 경고 표시 없어서 환풍구인 줄 모르고 환풍구 위를 지나가다가 추락했다면 누구 잘못일까요?

이번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어떻게 타결됐나요?

[기자]

실제로 2009년과 2012년에 아파트 환풍구 지붕이 깨지면서 다친 두 어린이에 대해서 소송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관리업체 책임이 60% 인정됐고, 한 사람은 업체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엇갈린 판결이 나왔습니다.

관리업체의 사고 예방조치가 어땠나, 또 피해 어린이의 부주의 정도는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서 판결 결과가 달라졌습니다.

사고가 발생할 걸 미리 예상할 수 있었느냐가 판결 기준이 됐는데요.

지금 수사본부가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이번 붕괴사고 사망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이미 타결됐습니다.

유가족들은 고의로 난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관련자 형사처벌이 최소화됐으면 좋겠다고 요청했습니다.

김현아 기자가 관련 뉴스를 전합니다.

[기자]

환풍구 추락 사고로 숨진 희생자 16명의 유가족이 주최 측인 이데일리, 경기과학기술진흥원과 보상 문제에 합의했습니다.

밤샘 협의 끝에 사고 발생 나흘 만에 나온 합의안입니다.

[인터뷰:이재명, 성남시장]
"유가족 여러분의 결단으로 사고 발생 57시간 만에 대타협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16명의 장례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게 되고 유가족들이 빠른 시간 안에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소중한 성과입니다."

구체적인 보상 액수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고 다만 통상적인 판례에 따라 보상 액수와 시기를 추후 확정하기로 했습니다.

유족 측이 구체적인 보상 액수를 못 박지 않았고 보상 문제가 법정 다툼으로 이어질 경우 서로 지치고 상처 입을 것을 우려해 상식 수준의 판례를 따르기로 한 겁니다.

보상금 지급과는 별도로, 이데일리와 경기과학기술진흥원이 공동으로 사망자 1명당 장례비 2천 5백만 원을 이번주 안에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또 사망자에게 유자녀가 있을 경우 이데일리 측에서 대학 등록금까지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유가족은 사고 수습을 위해 성실하게 협의에 임한 주최 측과 대책본부에 감사하다며, 이번 사건 수사로 더 많은 사람이 다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밝혔습니다.

[인터뷰:한재창, 유가족협의체 간사]
"저희 유가족들은 악이나 고의로 발생한 게 아닌 점을 감안하여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이 최소화되기를 원합니다."

보상 문제가 원만하게 타결되면서 잠시 보류됐던 고인의 발인 절차도 차례로 진행될 전망입니다.

YTN 김현아입니다.

[앵커]

정유진 기자, 부상자들은 상태가 어떻습니까?

목숨이 위태로운 분도 계셨었는데요.

[기자]

부상자 가운데서 11명은 지금도 상태가 위중한 상태입니다.

추락 당시 충격으로 폐와 복부 치명상 그리고 일부는 뇌출혈과 동맥출혈이 심해서 수술을 못하는 상황인데요.

병원 6곳에 나뉘어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현재 중환자실에 일곱 분, 일반 병실에 네 분 있습니다.

환자 상태에 대해서는 호전됐다, 악화됐다 말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상황인데 일단 어제 환자 두 분이 중환자실 병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앵커]

빨리 회복들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부 정유진 기자였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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