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조기' 중점 수색 활동은? [이청관, 해군 해난구조대 고문]

'소조기' 중점 수색 활동은? [이청관, 해군 해난구조대 고문]

2014.04.22. 오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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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금 필사적인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전문가 얘기 좀 더 자세하게 들어보겠습니다.

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 기술고문이자 해군해난구조대 SSU, 선안함 선체 인양작업에도 참여하셨던 분인데요.

이청관 고문과 함께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3층 식당까지는 진입 못했다고 하고 들어가기 어려운 구조인 것 같습니다.

작업 속도는 더 내고 있는 거죠.

그제에 비해서는요.

[인터뷰]

훨씬 앞으로 하면 할수록 빨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맨 처음 화면은 숙달이 안 돼서, 그 환경에.

그러나 한 번 들어갔던 잠수사가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좀 활동력이 많아지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좀 잘 될 겁니다.

그런데 이런 생명줄 많이 하는 거 지금 생명줄을 6곳인데 원래는 10개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앵커]

가이드라인 말씀하시는 건가요.

[인터뷰]

가이드라인이요.

이걸 6개만 해도 충분하다고 판단을 한 건지 설치하기가 좀 힘들어서 한 건지 아직 저는 현장에 안 가서 모르겠는데 현장 총책임자가 6개로 해도 충분히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면 이걸로 계속 갈 거고 또 실종자 가족이 답답하니까 10개 해라, 많이 해서 그거로 더 하는 게 효과라고 생각을 하면 10개 아니라 15개 이렇게 할 겁니다.

제가 저쪽에다 이런 데 나와서 얘기한 게 맨 처음 부터 해경, 해경은 예를 들어서 4층, UDT는 3층, SSU는 1층, 핵타별로 서베이를 하는 게 가장 효과적으로 저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에 내가 현장에 내가 지휘자였다면 그 생각을 제가 말씀을 드렸던 것이고 지금 부터 그렇게 해서 효과를 얻었다고 보겠습니다.

그리고 실종자 가족은 많은 다이버가 한번에 들어가면 그냥 바로 끝날 줄 알지만 안 그래요.

그건 제 경험에.

저도 67년에 저거하고 같이 유사한 사건에 저도 직접 선실에 들어가서.

[앵커]

국내에서요?

[인터뷰]

네, 67년에 1월에 여객선에 침몰했어요.

군함하고 충돌했어요, 가족들 앞에서.

거의 비슷한 현상인데 진짜 들어가서 많이 다 했거든요.

그때는 다이버도 얼마 없고 없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첫째 들어가면 시야가 없고 둘째로는 부유물이 많고 그때는 또 겨울철이라 비교가 안 되지만 이불 덮고 뭐하고 하다가 그 이불이 그냥 막 쌓여서 그것 치우느라 시간도 걸려요.

그리고 나중에 애를 먹은 게 여기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날지 몰라요.

짐 속에 실종자가 있을 수 있다고 이불이 막 엎어질 때.

예를 들어서 그 밑에서 맨 처음 없는 줄 하다가 이제 그런 것까지 다 보려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익숙된 다이버들이 두 번, 세 번 들어가면 익숙해지고 지휘하는 체제도 지금 갖춰졌다고 생각하면 물때도 좋고.

제일 중요한 게 물 때인데 속도가 많이 붙어서 좋은 성과를 거두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진짜 자기의 생명을 위험을 감수하면서 지금 열심히 하는 거 아니니까, 현장에서.

그런 사람들을 믿고 기다려주면 좋은 성과를 얻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앞서 물때 얘기도 하셨는데 지금이 조류의 세기가 매우 약해지는 소조기잖아요.

이 소조기에 시야확보도 좋습니까?

흐름뿐만 아니라?

[인터뷰]

물론 시야도 좋죠.

[앵커]

어느 정도까지 보입니까?

지난 번에는...

[인터뷰]

그거는 바다마다, 장소마다 다 다릅니다.

같은 바다라도 항안이 더 맑고 바깥으로 많이 갈수록 결국은 물을 조류가 빨라서 먼지 같은 게 많이 떠다녀서 시야가 없는 거거든요.

물은 똑같은데 부유물이 얼마나 많이 같이 가느냐, 안 가느냐에 따라서 시야가 달라지는데 제 생각에는 지금 격실이라고 그럴까요.

승조원하고 사람들이 탄 거, 그 안에 들어가면 시야는 없다고 봐야 될 거예요.

그러면 수중 후레쉬, 렌턴이라고 하는 그거 시야로 모든 작업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못 들어서 렌터 시야가 얼마가 되는지 그걸 모르는데 20cm 냐, 30cm 냐.

그걸 저는 여기서 알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냥 수중 전등이 없으면 시야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앵커]

앞서 한일호 사고가 67년도에 직접 참여했던 분이시니까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게 생존해 있을 수 있는 분은 빨리 찾아서 구조하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또 중요한 것은 희생자들을 손상 없이 수습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인터뷰]

유실이 안 되게.

[앵커]

그걸을 위해서는 어떤 작업이 중요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인터뷰]

우선 생존자가 어디 칸에 아시느냐를 우선 탐색을 해야 되는데 탐색은 보통 망치 같은 걸두들겨서 저쪽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다시 신호를 바라는 방법밖에 없거든요, 물 밑에서는.

그런데 보통 실종자 사람이 보통 바깥에 많이 두드려요.

그래서 안에 하는데.

어차피 다가갔으니까 천장도 두드려보고 일단은 수습하면서 계속 어떤 소리를 내면서 이쪽에서 탐색작업을 해야 될 겁니다.

만일에 생존자가 있다면 생존자가 진짜 포기하고 가물가물할 때 어떤 소리가 들리면 아, 나를 구조하러 오나 보다 생각을 하면 의욕이 생겨서 진짜 살릴 수가 있는 거죠.

포기 안 하고 나를 구조하러 온 사람이 있다.

그래서 저런 데 불빛도 보내보고 누구 얘기하는데 낚시할 때 형광등 켜는 거 그것도 막 집어넣어봐라.

그게 맞는 얘기예요.

그 불빛을 보면 사람이 자기를 구조하러 온 것만 알아도 생존자는 큰 힘이었습니다.

그런 조치를 아마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현장에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조치를 취했을 거예요.

[앵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희생자들을 손상없이 잘 수습을 하는.

그걸 위해서는 어떤 것이 중요합니까?

[인터뷰]

지금 어차피 창문을 깨고 들어가지 않았으면 문이 있지 않습니까?

격실로 들어가는 그 문으로 들어갔는지 격실로 들어갔는지그걸 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뉴스 잠깐 보면 유리를 깼다, 그런데 유리를 깨고 들어가면

[앵커]

고문님, 저게 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안에 실종자가 바깥을 안에서 큰 변동이 오기 전에는 유실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격실 안에 조류가 막 흐르는 것도 아니고 그냥 평안하고 어떻게 보면 고정된 물이고 물론 양쪽에 창문이 뚫렸다고 그러면 왔다갔다 하죠.

[앵커]

쉽지가 않군요. 저렇게 깨보려고 하는데요.

[인터뷰]

특수유리로 제작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강화유리라고 그럴까요?

그러니까 좀 깨기가 힘들어서 저렇게 애를 먹겠죠.

[앵커]

그때도 한일호 사고 수습하실 때도 저런 상황에 직면하셨습니까?

[인터뷰]

그전에 창문을 안 깨고 문을 다 열고 그쪽으로 들어갔어요.

[앵커]

문을 여는 건 수압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런데 그게 수압이 양쪽이 평등됐을 때는 문을 열잖아요.

문을 여는 거.

그걸 보고 여는 거지 원칙적으로 힘만 가하면 열리게 되어 있어요.

한쪽 안이 기압이 얕다.

편심이 생기면 절대 바깥에서 못 열어요.

그래서 쉽게 얘기하서 영화 같은 걸 보면 자동차 빠졌을 때 자동차 문은 못 열리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유리창문을 내려서 물을 집어넣습니다.

물이 다 찼을 때 열면 열려지지 않습니까?

[앵커]

유리를 깼을 때 갑작스러운 수압 때문에 잠수부나 혹시 안에 있었던 실종자가 다치거나 이럴 가능성은 없습니까?

[인터뷰]

그건 없어요. 왜 그러냐.

그 안이 공기라면 그럴 가능성이 많아요.

그거는 깨고 피해야 돼요.

갑자기 그리로 들어가니까.

그런데 물이 다 찬 그런 공간은 바깥 압력이나 안 압력이나 똑같습니다.

물이 침하가 있는 게 아니거든요.

선실 물이나 바깥의 물이나 물은 평행을 이루려는 성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평행을 이루었기 때문에 그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앵커]

고문님께서는 해군해난구조대에서 현역으로 활동을 하셨었고 전역하신 다음에는 민간에서 잠수활동을 계속 하셨으니까 군과 민간의 차이와 또 어떤 특징들이 있는지 잘 아실 텐데요.

[인터뷰]

그런데 군은 군에 필요한 임무로 훈련을 시킵니다.

그러나 제가 60년대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는 민간인, 잠수사라는 게 그렇게 없었어요, 거의.

머구리 하는 사람들 있었고 그래서 제가 직접 참여해서 인양한 게 63년일 겁니다.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62년에 교육받고 바로 얼마 안 있어서 목포에서 큰 사고였어요.

삼각파도를 만나서 음력 쇨 때 인데 시골 자기 고향 간다고 이런 얘기 들어가면 길게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앵커]

제가 여쭤보는 것은 어쨌건 이번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이런 시스템을 잘 갖춰야 될 테니까요, 우리가.

지금 군이, 민간이 잠수능력이 더 나은 게 아니냐.

수중에서 하는 작업능력이 그런 부분에 대해서 좀 설명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인터뷰]

군은 군대로 작전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훈련을 시켰을 것이고 구조 이런 건, 구조는 물론 합니다, 해난구조대는.

그러나 실전경험이 지금 우리 특수하니까 이렇게 와서 하지만 사회에서 활동을 하는 잠수사들이 실전에 배 인양하고 그런 거는 좀 강하다고 봐요.

다 그런 부대 나왔던 사람이 그 일을 하기 때문에 더 잘한다고 할까요.

더 전문가가 되죠, 그쪽으로는.

[앵커]

군 출신이고 민간에서 또 해 봤고.

[인터뷰]

상업적으로 하는 게 더 발전이 많습니다.

[앵커]

장비 부분은 어떻습니까?

[인터뷰]

장비 부분은 사회도 장비 좋은 거 갖고 있는 회사도 많고 군은 군대로 작전에 필요한, 그래서 이제 원래 지금 다이빙벨인가 그거 때문에 말이 많았잖아요.

그게 맨 처음 미국에서 선진국에서 개발할 때 잠수함 구조목적으로 만든 겁니다, 원칙은.

잠수함으로 했을 때 그걸 내려 잠수함에 해치 맞춰놓고 잠수사들이 거기서 해치문 열어주고 탈출시키는 거 목표로 했던 장비거든요.

[앵커]

알겠습니다.

해군해난구조대 이청관 고문의 도움 말씀 들었고요.

좋은 결과 나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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