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협회 "연내 개성공단 재가동 기대"

개성공단협회 "연내 개성공단 재가동 기대"

2018.09.21. 오전 10:46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 진행 : 정찬배 앵커 / 장민정 앵커
■ 출연 : 신한용 / 개성공단협회장

[앵커]
역사적인 평양 정상회담에는 대기업 총수를 포함한 재계 인사도 10여 명이 함께 다녀왔습니다.

대북 제재 탓에 한계는 있지만 남북이 우선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내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이다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방북 수행단으로 평양에 갔다 어젯밤 막 돌아온 신한용 개성공단협회장과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앵커]
그거부터 질문드리겠습니다. 처음에 18일날 댁에서 나온 거 기준으로 몇 시에 나오셨어요?

[인터뷰]
5시에 나왔습니다. 5시에 나와 가지고 6시 반에 집결을 해서 7시에 이동했습니다.

[앵커]
어제는 댁에 돌아가시니까 몇 시였습니까?

[인터뷰]
10시 반 정도 그렇게 됐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2박 3일을 완전히 풀로 다녀오신 건데 백두산 가는 날은 몇 시에 일어나셨어요?

[인터뷰]
4시에 일어나 가지고 5시에 이동해서 순안공항에서 7시에 고려항공편으로 삼지연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앵커]
아이고, 정말 힘드신 여행 하고 오셨는데 여독도 아직 안 풀리셨는데 출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꽉찬 일정을 소화하셨을 텐데 이번에 특별수행원단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오셨으니까 2박 3일의 일정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곳, 인상 깊었던 장면을 이야기해 주신다면요?

[인터뷰]
뭐니뭐니 해도 우리 민족의 영산이라고 할 수 있는 백두산에 올랐다는 것이 제일 의미가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요.

보도를 통해서만 들었던 장군봉. 그리고 중국을 경유해서 간다고 하더라도 천지에 못 내려가거든요. 천지에 내려가서 직접 손을 담그고 얼굴을 적시고.

[앵커]
정말 손을 담그시고 얼굴을 적시셨습니까?

[인터뷰]
아, 그럼요. 그래서 느끼는 온도가 그야말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담는 그런 온도로 느낀 점에서 상당히 흥미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저는 백두산 장군봉이 2750m가 된다고 해서 오를 때 힘들 줄 알았는데 다들 구두 신고 가셨더라고요.

[인터뷰]
구두를 신고 갔고요. 그다음에 중국을 경유해서 가는 경우에는 대략 한 30분 정도 걸을 수밖에 없는 그런 코스인데 장군봉까지도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길이 확보가 돼 있었습니다.

[앵커]
날씨가 저런 날이 많지 않다면서요?

[인터뷰]
그러니까 그게 우리의 축복이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보통 백두산을 다녀오신 분들이나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10번 중에 2번, 3번 정도라고 생각이 되어 진다라고 하는데.

[앵커]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이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4시에 일어나서 순안공항으로 이동할 때 비가 내려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과연 백두산에 오를 수 있을 것인가, 이게 상당히 좀 의문이었었는데 삼지연공항에 내려가지고 약 42km을 백두산까지 이동하는 경로가 있거든요.

[앵커]
올라가는 거죠, 쭉?

[인터뷰]
그렇죠. 쭉 올라가는. 침엽수림이 좌우로 펼쳐져 있고. 그 침엽수림 사이로 햇살이 비춰지는 걸 느끼면서.

[앵커]
올라가면서 날씨가.

[인터뷰]
그렇습니다. 이게 반드시 오늘은 천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기대. 그런데도 불구하고 날씨가 상당히 변화무쌍하다라는 걸 알고 있어서 날씨가 또 급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를 했는데 올라가서 약 3시간 동안 동선에 따라서 경유를 하고 내려와서 삼지연 연못가에서 중식을 하고, 식사를 하고 그리고 이제 다시 비행기를 타고 이동되어지는 그 시간까지 줄곧 쾌청한 그야말로 가을 날씨였습니다.

[앵커]
처음에 천지를 순간 언제예요? 장군봉에 딱 올라간 다음에 보입니까?

[인터뷰]
아닙니다. 장군봉이 제일 높은 곳이고장군봉 밑에서 천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앵커]
대통령 사진 찍었던?

[인터뷰]
거기는 장군봉 위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천지를 볼 수 있는 그 지점에서 대부분 분들은 보고 또 장군봉까지 걸어서 약 20분 정도 올라가야 됩니다.

[앵커]
지금 보이는 저 장군봉은 걸어서 좀 올라가야 되는 것이고.

[인터뷰]
네, 맞습니다.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장소가 협소해서 못 올라간 부분도 있고. 그다음에 천지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야 되는데 케이블카가 4인용으로 5량이더라고요. 20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야 되는.

[앵커]
한참 기다려야겠네요.

[인터뷰]
그렇죠. 내려가지 못한 분들도 간혹 있었죠.

[앵커]
저기까지 갔는데.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여튼 모든 일들이 그 시간을 공유하고 개인만의 시간을 만끽한 게 아니라 이후에는 반드시 우리 모든 국민들도 장군봉에 천지에 올 수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를 담고 왔습니다.

[앵커]
많은 분들이 백두산에 가고 싶어 하고 천지에 가고 싶어 하는데 못 가신 분들 많잖아요. 대표해서 다녀오신 거나 마찬가지인데 천지물에 손을 담그셨을 때 그 느낌 어떤지 전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차요, 물이?

[인터뷰]
차죠. 상당히 찬 그런 걸 느꼈고 우리가 그야말로 북한강 이런 데다가 손 담고 이런 것들을 우리는 그동안에 해 왔는데 천지에 손을 담구고 얼굴을 적신다라는 게 그야말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큰 감회였습니다.

[앵커]
김정은 위원장, 리설주 여사도 가까이에서 보셨을 텐데 어떻던가요?

[인터뷰]
보도를 통해서만 봤던 그런 모습과 실제로 대면해서 본 그런 것하고 좀 차이가 있다라는 걸 느꼈고요.

[앵커]
어떤 차이입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우리 같은 민족이면서 또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소탈하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우리 문재인 대통령도 예외는 아닙니다마는 두 분이 그런 면에서 상당히 조화가 잘 되고 속말로 궁합이 잘 맞지 않나, 이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이 차이가 이렇게 남에도 불구하고.

[앵커]
그렇군요. 리설주 여사랑 또 김정숙 여사가 서로 팔짱을 끼는 모습도 많이 연출이 됐는데 화면 안 잡힐 때도 두 분이 자주 이야기를 합니까?

[인터뷰]
그런 것들은 저희가 근접거리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2박 3일 동안에 그래도 저는 운 좋게 두세 번 그런 광경을 직접 보기도 하고.

또 제가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소개를 해서 두 차례 정도 국무위원장과 이야기도, 개성공단 관련 이야기도 하는 시간도 있었고 그리고 정상에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염원이기도 한 조속한 개성공단이 재개가 되어진다면 그 공단은 우리 기업인들이 일구겠다, 지키겠다.

그래서 경협이 확대되어지고 남북 간에 그런 민생 차원의 그런 경협 활로를 찾겠다.

[앵커]
그 질문을 드리죠. 지금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백두산 관광보다도 개성공단 관련 사업이기 때문에. 실제로 개성공단 최근에 가보셨죠?

[인터뷰]
그렇죠. 얼마 전에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개소식에 저 외에 개성공단 기업인 2명이 방북을 해서 개별 공장은 가보지는 못했지만.

[앵커]
공장까지는 못 들어가보셨어요?

[인터뷰]
네. 공단 전체적인 모습은 보고 왔습니다.

[앵커]
어떻던가요?

[인터뷰]
그래서 상당히 가봤을 때 잘 정리, 정돈됐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앵커]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데도?

[인터뷰]
네. 외형적으로 그걸 보여주기식이 아닌가 하는 그런 염려를 하기는 했는데 그쪽에서 나온 그런 분들에 의한 말씀을 전언하면 내부적으로도 배수 관계라든가 동파, 이런 등등의 시설물 관리를 나름대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했고. 이번에 이제 평양에 가서도 고위급들이 우리는 모든 준비가 다 돼 있다, 언제든지 남측에서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

뭘 주저하느냐 이런 이야기를 전달받으면서 멀지 않았구나라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앵커]
9월 평양 공동선언문에도 개성공단 관련 내용이 담기기는 했습니다. 조건이 되면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겠다라는 문구였는데 아무래도 이 조건은 제재일 텐데요. 만족하십니까?

[인터뷰]
우리 기업인들도 제재가 어느 정도 풀려야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경협 사업이 전개가 될 것이다라는 건 다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4.27 정상회담에서는 개성공단, 금강산 이런 것들이 적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진일보돼 가지고 조건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그것이 이제 거기에 올려져 있고 곧 있을 한미 정상회담이나 그다음에 북미 정상회담에서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가시권에 들어오게 된다면 우선적으로 공단이 재개될 수 있다라는 그런 희망을 보고 왔습니다.

[앵커]
회장님 개인적인 사업체는 어떤 관련 업종이십니까?

[인터뷰]
저희는 물고기 잡는 어구입니다, 어망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리용남 경제부주석과도 면담을 할 때 제가 2007년도에 민간교류 차원에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 북쪽 관계자가 제가 어망을 취급한다는 것을 알고 정치적인 통일보다도 바다부터 통일하자, 어망으로. 그때 한참 남북 공동어로 작업이 제기되는 그런 시기였었거든요.

그때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면서 과거에 했던 개성공단 사업이라든가 금강산관광 사업, 철도, 도로 연결 사업, 이것이 우선적으로 재개되어지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 이런 말씀을 제가 드렸고 부주석께도 맞다, 그 말이 맞다, 하던 것부터 우선시하고 점차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앵커]
몇 가지 사업과 관련해서 어망 기계 만드는 그 기계는 1년 정도 멈춰서도 바로 다시 재가동 할 수 있어요?

[인터뷰]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기계가 있고 그렇지 않고 교체도 해야 되는...

[앵커]
개성까지 가신 김에 공장 문 열고 설비 잘 있는지 보고싶지 않으셨어요?

[인터뷰]
당연히 보고 싶죠. 그렇지만 머지 않은 시간 내에 볼 수 있다라는 그런 아쉬움을 가지고 왔습니다.

[앵커]
그거 공장 기계만 제대로 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생산 재개하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인터뷰]
당연하죠.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고 그다음에 당장 기계를 돌리고 조업을 할 수 있는 그런 기업이 있고 들어가서 일부 생산하면서 점진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이 있을 것입니다.

[앵커]
이 얘기는 조금 민감할 수도 있는데요. 지난번 개성공단 폐쇄할 때 논리가 개성공단에 준 임금이, 그 달러가 핵개발하는 데 들어갔다라는 근거가 희박한 걸 이유로 문을 닫게했습니다.

그 얘기 직접 가서 물어보고 싶지 않으셨습니까?

[인터뷰]
누구한테요?

[앵커]
관련자들한테나.

[인터뷰]
아니요. 그건 우리 정부의 논리지 북측의 논리가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것이 작년에 12월 말에 통일부 자체 혁신위원회에서 근거 없다라고 해 가지고 분명히 대국민에게 전달을 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그렇게 씌워진 그 프레임 자체를 국민들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그런 국면이지만 분명하게 임금이 핵 개발, 미사일 개발에 전용되었다라는 건 근거가 없다라고 우리 정부에서 공식 발표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개성공단에서 2007년부터 입주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서 운영이 중단되기도 하고 몇 년 동안 운영을 못 하기도 하고. 그냥 바로 운영이 재개되는 것보다 이런 안정적인 운영요건이 먼저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래서 4.27 정상회담 이후에 급속도로 그런 재개 희망이 보이면서 우리가 TF도 발족을 해서 그러면 우리는 어떤 그런 상황에서 재진입이 되어 지고 무엇을 보완을 해야 되느냐, 이런 걸 협의를 했거든요.

그래서 10여 년 동안 지금 경협을 하면서 상당히 부침이 많았었습니다. 그래서 부침이 있는 여러 조항들을 제도화시키고. 그래서 요즘 국회비준 이야기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거든요.

그런 것들이 제도적으로 안정화되어졌을 때 기업이 들어가야 제2, 제3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라는 그런 생각입니다.

[앵커]
너무 딱딱한 이야기이니까 이제 부드러운 얘기 몇 가지. 평양 시내에도 직접 가보셨잖아요. 전에도 가보셨고 이번에도 두 번째 방문이시라면서요? 1차 때가 언제였죠, 일단?

[인터뷰]
2007년도였습니다.

[앵커]
11년 만에 다시 본 평양은 어떻던가요?

[인터뷰]
상당히 보도를 통해 가지고 변화했다라는 건 알고 갔지 않습니까? 그런데 원도심 평양역을 주변으로 한 원도심은 크게 변화되어진 게 없고요. 우리가 보도에서 접하고 있듯이.

[앵커]
저 아파트 거리 저기는 신도시예요, 그러면?

[인터뷰]
저건 새로 신도시 개념으로 이제 그 주변인데 그렇게 되어져 있습니다. 여명거리라고 들어보셨죠. 그다음에 과학자거리 이런.

[앵커]
카퍼레이드 했던 그 옆길이잖아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래서 상당히 선진국과 비슷한 그런...

[앵커]
서울이랑 크게 다를 바가 없었나요?

[인터뷰]
크게 다를 바도 없었고 건물들이 우리 서울 건물들은 요즘은 달라졌지만 천편일률적인 건물 양식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나름대로 조화롭게 예술적으로 모양도 내고.

[앵커]
평양시민들은 어떻던가요?

[인터뷰]
그게 상당히 이번에 주목할 점이었는데 10여 년 전에 본 평양 그리고 저는 중동국이나 여타 경협을 하는 과정에서 처음 느꼈던 인상과 평양의 거리 시민의 인상이 11년 전과는 상당히 다르다라는 걸 느낀 게 일단 옷차림부터 형형색색.

[앵커]
천편일률적이 아니라.

[인터뷰]
그렇습니다. 심지어 순안비행공항장에 내릴 때 조류 이런 것들이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 허수아비를 세워놨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농촌의 허수아비는 그야말로 허수아비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색동저고리, 형형색색. 모자도 달아놨다든지 이런 것으로 해서 상당히 멋을 냈어요. 그러하듯이 북한 주민들도, 시민들도 상당히 그런 면에서, 개성공단에서도 이미 그런 걸 느꼈었거든요.

그게 달라진 점이고 그다음에 거리에 오가는 차량이라든가 물론 저희가 다녀온 동선은 차단을 했었습니다마는. 그리고 각종 건물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변화되어졌다.

[앵커]
사진을 통해서 보니까 학생들, 이건 많이 알려진 브랜드니까 나이키 신발 신은 학생들도 있었고요. 복장이나 이런 것은 어땠습니까?

[인터뷰]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구체적으로 디테일하게 나이키인지 어떤 브랜드인지는 굳이 모르겠습니다마는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있다, 그런 걸 느꼈고.

[앵커]
생활 수준은 옛날보다 높아졌다.

[인터뷰]
그리고 교원대학에 가는 시간이 있었는데 북한은 좀 전인교육에 가깝게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고 직접 확인을 했어요.

스포츠 같은 경우에도 최소한 두세 가지 정도는 수준급의 기량을 나타내기도 하고요.

예술 분야도 그림이나 음악이나 이런 것들도 상당히 하고. 우리는 경우에 따라서 노래를 하라고 하면 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북한은 절대 빼지 않아요.

오히려 자진해서 나와서 하는 걸 보고. 그 학교에서 느낀 게 영어교육을 아주 대대적으로 시키는 걸 봤어요.

그래서 겉으로는 타도 뭐 반미 이렇게 하면서도 미래를 준비하고 있구나, 이런 어떤 그런 느낌도 받았습니다.

[앵커]
이번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최태원 SK 회장 같은 재계 총수들과도 함께 가셨잖아요. 물론 신 회장님도 대표이지만 재계 총수들이 수행원 없이 가는 게 상당히 이례적인데.

[인터뷰]
그렇죠. 가방도 직접 들고.

[앵커]
분위기가 어땠습니까?

[인터뷰]
우리하고 똑같이 행동하는 걸 보면서 대기업 총수들도 우리 범인이구나라는 걸 느꼈고요. 그분들은 오히려 4대 그룹 총수가 갔는데 다 세대 교체가 돼서 젊은 층이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느낀 건 상당히 소탈하고 친근감도 있고 이런 걸 느꼈어요. 전혀 이렇게 권위적이지 않고 뭐 그런 걸 느끼면서 참 이게 우리의 진짜 모습이구나, 이런 것들이 서로 이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그리고 남북 어떤 경협에서 조화롭게 발휘되어진다면 이것이 그야말로 경쟁력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왔습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신한용 개성공단협회장과 함께 이번 평양 방문, 백두산 방문 등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감사합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