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 삼성 황태자 이재용의 '비단길'과 '가시밭길'

[뉴스통] 삼성 황태자 이재용의 '비단길'과 '가시밭길'

2017.02.17. 오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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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총수 중 처음으로 구속되면서 '79년' 삼성그룹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재계순위 1위인 삼성그룹의 황태자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수업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난 1991년, 스물 셋의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공채 32기로 입사해 총무그룹 사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김원배 / YTN 경제부 선임 기자 : 1994년, 1995년 상황인데요. 삼성전자가 삼성 계열사들 가운데 부동의 1위 계열사로 올라서게 됩니다. 여기서 이즈음 해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는데요. 첫 단추가 1995년에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60억 원을 증여를 합니다.]

입사 후 일본과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이재용 부회장은 2001년 다시 회사로 돌아옵니다.

이후 상무보, 상무, 전무, 부사장 그리고 2010년에 사장을 거쳐 2012년부터는 부회장의 직함을 달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승진으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해 온 셈입니다.

지난 2014년 5월,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입사 25년 만에 삼성전자 등기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책임경영 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재용 부회장이 그동안 걸어온 길이, 마치 비단길처럼 순탄해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인생 곳곳에는 자갈밭도 가시밭길도 있었죠. 한국 대표 기업의 후계자로서 적지 않은 시련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1년,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임원인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서른셋의 나이로 삼성그룹 전면에 등장한 이재용 부회장.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사업인 e삼성 설립을 주도하면서 사업을 확장했지만 200억 원대의 적자만 기록한 채 실패라는 결과만 낳았습니다.

이 부회장에게 '뼈아픈 기록'으로 남은 e삼성의 실패는 지난 청문회에서도 거론됩니다.

[박영선 / 더불어민주당 의원 : e삼성 세운 적 있으시죠?]

[이재용 / 삼성전자 부회장 : 있습니다.]

[박영선 / 더불어민주당 의원 : 실패했죠?]

[이재용 / 삼성전자 부회장 : 네.]

이 부회장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8년, 당시 삼성전자 전무였던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전환사채 발행 등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으로 특검팀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보직에서 잠시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초기대응에 실패하자 이 부회장이 허리를 90도까지 숙이면서 대국민사과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지난 2015년 6월 "저희 삼성 서울병원이 메르스 감염과 확산을 막지 못해 국민 여러분께 너무 큰 고통과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지난해, 갤럭시 노트7의 리콜 사태라는 비바람을 맞이한 이재용 부회장은 이번에는 최순실 게이트라는 강풍을 만나 끝내 구속에 이르게 됐습니다.

[최영일 / 시사평론가 : 이재용 부회장은 굉장히 쿨한 성격에 혼자 캐리어 들고 해외 출장도 떠나고요.그런 면에서는 조금 더 젊은 경영자의 면모를 보였었는데 이건 그것과 질적으로 다른 인생의 고비에 접어든 거죠. 이건 한 사람의 인생이 전환되는 타이밍일 뿐만 아니라 삼성이라고 하는 대한민국이 키워낸 글로벌 기업 하나가 앞으로 새로운 리더십의 실험대에 오른 것이다.]

글로벌 기업 삼성은 1938년 창사 이래 위기 때마다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극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총수의 구속이라는 거대한 암초를 마주한 삼성.

그리고, 오너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삼성그룹이 이 풍랑 속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또 이후 새로운 삼성의 모습은 무엇일지 국내외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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