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꿈' 유라시아 친선 특급 대장정

'통일의 꿈' 유라시아 친선 특급 대장정

2015.08.03. 오후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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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태현, 유라시아 친선 특급 취재기자 / 이동형, 유라시아 친선 특급 촬영기자 / 박은경, 동양대 교수 / 임재영, SNS 홍보대원

[앵커]
광복 70주년을 맞아 달렸습니다. 19박 20일. 1만 4400km, 지구 3분의 1 거리였습니다. 어제 대장정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저희가 원정대원들 중 두 분 그리고 동행 취재했던 저희 YTN 취재팀 두 분을 초대했습니다. 철도전문가 박은경 동양대 교수 그리고 SNS 홍보대원 임재영 대원 그리고 조태현 기자, 이동형 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까? 즐거우셨습니까? 조태현 기자는 얼굴이 좋아졌는데요?

[기자]
저는 햇빛에 약해서 햇빛을 피해다녀서 그렇게 상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다시 한 번 가라고 하면 가겠습니까, 아니면 사양하겠습니까?

[기자]
저는 여행으로 가라고 하면 다시 할 것 같고 일로 하라고 하면 그건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앵커]
교수님은 어떻습니까? 다시 한 번 가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인터뷰]
그럼요. 저는 다시 가라고 해도 충분히 다시 갈 의향이 있습니다.

[앵커]
우리 조태현 기자는 가서 일을 좀 많이 했고. 교수님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인터뷰]
19박 20일 동안 저는 몰랐던 상대국의 철도 시스템에 대해서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저는 굉장히 좋은 시간이었고요. 이제 곧 개강인데요. 돌아가면 학생들한테 한 학기 내내 얘기할 수 있는 강의자료를 확보한 것 같습니다.

[앵커]
일을 하셨다는 얘기군요? 나도 일했다, 가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어떤 거였습니까?

[인터뷰]
우선 국경 브레스트에서 대차 교환을 직접 봤던 것. 물론 다른 기자분들도 굉장히 관심 있게 카메라로 취재를 했는데요.

[앵커]
대차교환이라는 게 바퀴를 바꾸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쪽에서는 일상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시스템이 없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셨고 또 저 역시도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까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시스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에 굉장히 놀랐던 것 같습니다.

[앵커]
경치 좋은 곳들이 굉장히 많던데 그런 것보다 그것이 눈에 들어오셨군요.

[인터뷰]
그럼요.

[앵커]
SNS로 홍보를 하는 일을 맡으셨던 임재영 단원께서는 뭐가 제일 기억에 남으셨나요?

[인터뷰]
저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여행으로 베를린에 갔었습니다. 그때 때마침 베를린 장벽 붕괴 25주년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행사 같은 경우도 브란덴브르크문 앞에서 동일한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는독일인들의 행사이기 때문에 저 같은 경우에는 펜스 밖에서 그냥 바라보는 입장에서 행사를 응원해 주는 입장이었는데 올해는 대한민국의 행사이기 때문에 제가 펜스 안쪽에서 직접 참가자가 된 입장에서 다시 행사를 바라봤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앵커]
베를린이 대장정의 종착점이고 거기에서 축제하고 행사가 굉장히 많이 열렸더라고요, 보니까.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어땠습니까? 마지막에 도착한 순간에, 19박 20일 마지막 도착했을 그 순간에 어떻던가요, 느낌이?

[인터뷰]
일단은 제가 한번 가 봤던 도시에 다시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일단 뭐랄까 내가 이 도시를 다시 올 수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고 또 저뿐만 아니라 함께 갔던 많은 원정대 여러분들이 엄청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나름의 고생을 했던 것들을 다시 떠올리면서 그 많은 고생 끝에 결국에는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기차 안에서 생활하는 것 중에 제일 힘든 건 뭐였습니까?

[기자]
제일 힘들었던 것은 화장실이었던 것 같아요.

[앵커]
화장실이요? 화장실 불편한가요?

[기자]
화장실이 생각보다 좁습니다. 세면대가 막는 구멍이 없고 물이 계속 흘러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세수할 때도 물 받아서 그냥 해야 하는데 물도 충분하지 않게 하고.

[앵커]
샤워는 못한다면서요?

[기자]
샤워시설이 아예 없습니다.

[앵커]
그게 제일 힘들었군요?

[기자]
여러 가지 힘든 점이 많이 있었는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저희 YTN 취재팀이 구성인원이 많았었고 상대적으로 짐도 많이 있었기 때문에 취재하면서 동시에 짐을 움직여야 될 경우가 굉장히 많았었거든요. 거점 도시마다, 이동할 때마다 저희가 취재는 취재대로 하고 장비는 장비대로 또 짐을 옮겨야 되고 해서 일이 이중으로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이동형 기자가 촬영 기자입니다. 시청자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이번에 사실 화면, 영상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면 굉장히 정말 좋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저걸 어떻게 찍었을까. 예를 들면 기차 바퀴 아래에서 찍는 그런 앵글도 있고요. 그리고 위에서 기차 지나가는 걸 공중에서 찍은 것들도 있고요. 그래서 저건 어떻게 찍었을까 참 궁금했거든요.

[기자]
저희가 이번에 준비하면서 취재장비에 대해서 다른 때보다도 신경을 많이 써서 드론이라고 하는 일종의 작은 헬리콥터, 하늘에서 촬영하는 장비거든요. 드론을 저희가 전담하고 있었던 이동규 기자가 있었는데 드론 촬영를 통해 바이칼이라든가 각 거점도시마다 드론 촬영을 실시를 했었어요.

[앵커]
기차 안에서는 그것을 날리지는 못할 것 아닙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저희가 출장가기 전부터 계속 요청을 했는데 러시아측에서 거부를 하다가 기차 출발하기 직전인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침 허가가 났거든요. 그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많은 앵글을 잡아내기 시작했었고요.

드론을 띄워서 기차를 취재하려고 하면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있는데 그 현장 포인트를 어디에서 찍어야 더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는가, 이런 장소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현장에 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을 때 맞춰서 드론을 띄워야 하거든요. 드론이 공중에 떠 있는 시간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좋은 장면들을 많이 찍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러면 저걸 촬영하는 촬영팀은 기차를 못 타고 저기 있다가 나중에 어디 가서 합류를 하는 건가요?

[기자]
아니요, 그렇지는 않고요. 거점도시별로 저희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하루는 기차를 타고 하루는 외곽에서 머물면서 행사를 하고 그랬었거든요. 외곽에서 머무는 동안에 멀티캠팀은 외곽으로, 다시 다른 곳으로 빠져서 그걸 취재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위에서 찍은 것은 원정대가 탄 열차가 아니라 다른 열차를 찍은 거군요, 그러니까?

[기자]
철로를 지나는 차들이 워낙 자주 다니다 보니까 그중에서 객차들이 올 때마다 드론을 띄워서 촬영을 하고 그런 식으로 진행을 했었습니다.

[앵커]
기차 안에서의 생활을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거든요. 음식은 맞는 건지, 입에. 그리고 오랫동안 하루종일 달려가는데 뭘 거기 안에서 하시는지 그걸 말씀 좀 해 주시죠.

[인터뷰]
우선은 좁은 그러니까 4인용 객실에서 지내다 보니까 안 친할래야 안 친해질 수가 없습니다. 서로의 민낯을 보면서 또 서로의 성격도 안 맞을 수 있는데 그런 성격을 맞춰가면서 많은 만남들이 있었고. 그 만남들이 참 감사했고요.

그리고 또 때로는 식당칸 안에서 재능기부자들의 특강도 있었고요. 그래서 특강 스케줄을 보면서 아, 이건 꼭 듣고 싶다 할 때는 먼저 가서 자리를 맡고 다른 전문가들의 특강을 들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은데 굉장히 짧았습니다.

[인터뷰]
저 같은 경우에는 재능기부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들 끼가 있고 흥이 있으니까 즉석에서 바로 기타 공연을 하기도 하고 특히나 풍물팀 같은 경우에는 아무런 장비도 없이 그러니까 일반 저희가 쓰는 그릇이라든지 숟가락, 이런 것을 이용해서 즉석으로 공연도 하고 또 그림 그리시는 화가분도 있으셔서 일반 참가자들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그런 모든 활동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그런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앵커]
조 기자는 취재하면서 가장 어려운 게 뭐였습니까?

[기자]
일단 말씀하신 허가의 문제도 있었고 짐의 문제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날씨가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시베리아라고 하면 굉장히 추운 나라, 동토, 얼어붙은 나라를 생각을 하는데... 계속 말씀을 드리면 뜨거운 날씨 때문에 힘들었던 게 있고 개인적으로는 저희가 현장에서 생중계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생중계를 한 곳 중 하나가 하나가 바이칼 호수였거든요.

물이 굉장히 깨끗합니다. 또 하나가 굉장히 차갑습니다. 거기서 현지통신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TVU라고 저희 생중계 장비가 있거든요. 이것이 가능한 곳을 찾아다니면서 계속 맨발로 돌아다녔어요. 거기 20분 정도 있으니까 발에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기억에도 남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앵커]
바이칼호수, 저도 기억이 나는데, 그 화면 본 것이. 바이칼호수 하니까 저는 아주 차가운 동토의 그런 것을 연상했는데 사람들이 거기서 수영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기자]
맞습니다. 저희가 하다가 이건 한번 따로 기사로 해 봐도 좋겠다 싶어서 시베리아의 여름이라는 기사를 따로 다룬 적이 있는데요. 6월부터 8월까지가 시베리아의 여름입니다. 이때는 햇볕이 굉장히 강하고 기온도 한 30도까지 올라가요. 습하지는 않아도 거의 우리처럼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데 이때는 바이칼호수 주변에서 사람들이 해수욕도 하고 여름을 즐기는 모습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습니다.

[앵커]
시베리아의 여름을 직접 체험한 것만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일 것 같은데요.

[기자]
쉽지 않은 경험이죠.

[앵커]
이 기자는 거기서 뭐했습니까?

[기자]
저는 조 기자가 물에 발을 담근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죠.

[앵커]
교수님은 거기 바이칼 호수에서 뭐하셨습니까?

[인터뷰]
물론 발을 담궜죠. 바이칼호수에 발을 담그면 평생의 소원이 이뤄진다고 그래서 열심히 발을 담갔습니다.

[앵커]
무슨 소원을 비셨나요?

[인터뷰]
유라시아철도가 반드시 연결되기 바랍니다.

[앵커]
교수님은 국토교통부 장관에 그런 곳에 중용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가셔도 항상 그런 생각만 하시고. 임 대원은요?

[인터뷰]
저는 영상을 찰영해야 해서 카메라를 열심히 물 속에 집어넣어서 깨끗한 물을 촬영을 했습니다.

[앵커]
임재영 대원께서는 SNS에 홍보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직접 영상도 찍고 사진도 많이 찍도 했다는데임 대원이 찍은 영상과 사진을 저희가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걸 많이 찍으셨나요?

[인터뷰]
주로 국민참여자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많이 촬영을 했고 그리고 주요 포인트들, 바이칼 호수라든지 피의 사원이나 붉은 광장 건물, 이런 모습들을 많이 촬영을 했습니다.

[앵커]
지금 이 화면이 직접 찍으신 건가요?

[인터뷰]
제가 직접 들고 다니면서 촬영을 했고. 모든 여정을 시작부터 끝까지 가는 여정들을 촬영을 했었습니다.

[앵커]
그러니까 전 일정이 여기 다 담겨있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저건 뭐죠?

[인터뷰]
저기 나오는 글자 같은, 캘리그라피는 국민 참가자 중에 백지은 씨라고 있는데 그분이 직접 글씨를 다 도시별로 쓰고 제가 찰흙을 이용해서 기차를 만들어서 중간에 애니메이션 형식으로 넣어서 제작을 했습니다.

[앵커]
SNS에 올려서 많은 분들이 봤습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영상 같은 경우도 조회수가 1000회가 넘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봐주고 계십니다.

[앵커]
댓글이나 올라온 것 중에 기억에 남는 반응이?

[인터뷰]
반응은 일단은 정말 잘 만들었다고 해 주실 때마다 저는 영광스럽기도 하고.

[앵커]
지금 저것도 직접 찍으신 건가요?

[인터뷰]
저것 같은 경우는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을 한 건데.

[앵커]
위험하겠는데요, 밖에 고개 내밀고 찍나요?

[인터뷰]
양손으로 부들부들 떨면서 손만 살짝 빼서 찍는데. 바람이 너무 거세서 떨어뜨릴까 봐, 걱정이 많이 돼서.

[앵커]
이동형 기자도 여러 장비들을 이용했다면서요?

[기자]
아까 말씀드렸던 드론 장비 이외에 고프로라고 어디에 부착할 수 있는 조그마한 카메라가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요새 버라이어티쇼나 이런 데서 많이 보실 수 있는 그런 건데.

[앵커]
이건가요?

[기자]
네, 이 장면은 우리가 열차 앞 부분에 고프로를 달고 러시아 모스카바에 인접해서 가고 있었던 그 부분인 것 같습니다. 원래 열차 앞에 아무것도 달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 취재팀이 끈질긴 노력을 통해서, 심지어는 기관사한테 형님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형님이라고 해도 알아듣더라고요.

[앵커]
형님이라고 하니까 알아듣던가요?

[인터뷰]
그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잘 달아서 취재했습니다.

[앵커]
역시 의지의 한국인들의 집념이 러시아에서도 빛을 발했군요? 조 기자는 전체적으로 취재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자]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를 특정하기는 좀 어렵고 러시아인들이 기억에 많이 납니다. 러시아 사람들, 저희가 러시아의 역사나 문화도 조금씩 다루기 위해서 일부는 키릴문자도 배우기도 했는데. 박 교수님처럼 잘하지는 못하지만 이런 걸 하면서 사람들과 많이 얘기를 하게 됐는데 러시아인하면 생각나는 게 보드카, 술 마시고 이런 것들인데 실제로는 사람들이 굉장히 신뢰를 중시하고 그러면서 일도 열심히 하고 여성들은 유명한 것처럼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가정을 잘 챙겨나가는 그런 모습들을 보니까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우리가 선입견만 가지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어서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러시아 사람들을 통틀어서 기억난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앵커]
승무원들이 굉장히 친절했다, 그 리포트도 조 기자가 했나요?

[기자]
최아영 기자가 했는데 실제로 객실을 담당하는 승무원들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웃으면서 잘 받아주고 잘 보살펴서 20일 동안 잘 갈 수 있었습니다.

[앵커]
임재영 대원도 친구 많이 사귀었나요, 그곳에서?

[인터뷰]
제가 홍보다 보니까 다양한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분들의 일상을 담아내려면 아무래도 조금 가까이 다가가서 그분들의 진심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더욱더 친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앵커]
이번 행사가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우리가 통일의 꿈을 더 가슴에 안고 그래서 베를린까지 간 상징적인 의미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 이번에 북한이 연결이 안 된 채 저희가 간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 부분이 핵심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그러니까 모든 행사의 열쇠는 북한과 연결이 통해야 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번에는 반드시 북한이 연계가 돼서 통과해서 갈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교수님은 특히 철도전문가이시니까 남북을 이어서 유럽까지 달리자는 그 얘기가 나온 지가 사실 20년 가까이 됐는데요. 감회가 깊으셨겠는데요?

[인터뷰]
맞습니다. 그리고 철도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기차를 타고 베를린까지 가면서 정말 철도의 역할이 중요하구나라고 깨달은 부분이 저희들 입장에서는 굉장히 큰 수확이고요. 그리고 정말 베를린에서 소프라노 조수미 선생님의 그리운금강산을 들으면서 많은 분들이 가슴이 뭉클했을 거라고 느낍니다.

[앵커]
눈물이 나오시던가요?

[인터뷰]
가슴이 정말 뭉클했어요. 그리고 그 자리 이후에 오늘 행사가 마지막이구나 싶어서 그런지 서로 부둥켜 안고 또 태극기 휘날리면서 서로 사진을 찍고 소리를 질러대면서 환호를 했는데. 젊은 친구들하고 같이 환호하면서 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돌아와서 제자들 만나시면 일성을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인터뷰]
너희들 브레스트에서 대차교환하는 게 뭔지 알아하면서 그게 이거다라고 쭉 설명을 하고요. 그리고 참여했던 젊은 친구들을 제가 눈여겨 봤었는데요. 그런 친구들이 이 행사를 통해서 어떻게 꿈을 갖고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서 전달하고 싶습니다.

[앵커]
조태현 기자도 취재하고 나니까 보람이 많았죠?

[기자]
저희가 취재팀이 11명이었습니다. 미리 만나서 사전준비하고 할 때는 대체 20일을 어떻게 버텨야 되나, 이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마지막 돌아올 때쯤 되니까 다들 열차 안 생활도 그리울 것 같다, 그리고 참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그런 얘기들을 많이 나누면서 왔습니다.

[앵커]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통일의 꿈을 안고 그런 큰 꿈을 그리는 생각을 하게 되던가요?

[기자]
아무래도 마지막에 조금 전에 화면에 나왔지만 대형 태극기가 나왔습니다. 그게 열차 안에서 재능기부자들이 스스로 바느질을 해서 만든 태극기거든요. 원정대원들의 염원을 담은 쪽지들을 이어서 만든 겁니다. 그래서 그게 마지막 공연에서 펼쳐지고 이런 것들을 보면 언젠가는 우리가 가야 될 길이 보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앵커]
이동형 기자는 우리 방송인들이 그림이라고 부르는, 그러니까 영상이 좋은 곳들마다 다 가서 촬영을 하셨는데. 여기는 정말 추천하고 싶다, 여기는 한번 가보시라라고 추천하는 한 군데 꼽으시면 어디를 꼽으시겠습니까?

[기자]
바이칼인 것 같습니다. 저희가 미처몰랐지만 실제로 멀지 않은 곳이더라고요. 이르쿠츠크를 통해서 가면 되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서 아까 조태현 기자가 얘기한 대로 여름에 발을 담궈도 영상 10도 이하로 굉장히 얼음장 같은 물이라고 하고 실제로 그 주변에 있는 러시아 사람들이나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찾는 모양이더라고요.

[앵커]
박 교수님은 어디가 제일 기억에 남으시던가요?

[인터뷰]
저는 장소라고 하면 몽골초원입니다. 저는 남선을 탔는데요. 달려도 달려도 초원이었고 그 초원에서 몽골 사람들하고 함께 했을 때 자연과 함께 하는 기분이었어요.

[앵커]
몽골인들과 같이 뭘 좀 하셨군요?

[인터뷰]
네, 저희들을 반겨준 사람들이 의외로 한국유학생 출신들의 협회에서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와 외모가 똑같은 사람들이 우리랑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저희 일행들을 반겨주셨는데 너무나 뜻밖이었고 그리고 우리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였나 싶었던 것이 우리들도 몽골어를 빨리 배워야겠다, 그러니까 서로의 언어로 소통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얼굴이 많이 닮았던가요?

[인터뷰]
많이 닮았습니다. 오히려 저보다도 더 한국스러운 얼굴을 하고 사진은 제가 찍지를 못했는데 그렇게 외모도 비슷하고 저희들과 옷 입는 분위기, 그다음에 저희들과의 헤어스타일 이런 것들도 비슷할 정도로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앵커]
임 대원은?

[인터뷰]
저 같은 경우는 바르샤바가 굉장히 인상이 깊었는데 정말 짧은 기간만 들렀지만 바르샤바가 인상깊었던 것은 특히 케이팝 관련해서 거기에 있는 현지인들이 정말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반기고 엄청 좋아해 주는 모습이 색달랐고 바르샤바 야경이 정말 예쁘고 무엇보다도 역사가 아픈 게 우리 대한민국하고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보여드린 화면이 교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차교환 하는 거죠? 저게? 바퀴의 궤가 다르기 때문에 열차 바퀴를 갈아끼우고 하는 대차교환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통일의 꿈을 안고 그리고 광복 70주년을 맞아서 대장정을 달려가셨던 여러 분들을 대표해서 오늘 두 분 저희가 초대했고요.

취재진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좀 쉬시고 그동안 가족들한테도 못 하신 것 있으니까 잘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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