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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기약없는 이별..."남북, 상봉 한번 더 공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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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 2018-08-26 14:33
■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21번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모두 마무리됐습니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은 올해 안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번 더 개최하는 방안에 남북이 공감대를 이루었다고 밝혔습니다.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나와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이렇게 해서 2차 상봉 행사, 모두 마무리가 된 거죠?

기자

1시 15분쯤에 차량에 탑승해서 속초로 되돌아오니까 한 3시간 40분 내지 4시간 정도 걸리는데 5시간 전후로 해서 속초에 도착하면 한화콘도에서 각자 집으로 헤어지게 되죠. 지금 장면이 보입니다. 마지막 작별 상봉을 위해서 오늘 오전에 있었던, 아마 10시부터, 1시간 늘려서 10시부터 행사가 있었죠. 발길이 안 떨어질 텐데 남과 북 가족들은 북측의 사촌이 손목시계를 벗어서 남측의 사촌동생한테 전해 주기도 하고 그리고 제일 언니 같이 가니까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내 고향이 서울이지만, 서울이 더 가깝지만. 파주인가 그랬다고 하죠. 가깝지만 갈 수 없다. 오히려 더 먼 청진은 가기 쉽다, 이런 말을 해서 참 안타까움을 계속 비췄고. 그런데 이번에는 좀 남과 북의 가족 중에 시인이 있어서 이산의 아픔을 시로 표현하는 그런 정을 나누기도 했죠.

앵커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기약 없는 이별을 맞는 이산가족들, 오늘 마지막 작별상봉을 하고 상봉장이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작별상봉이 원래는 11시 정도 예정이었는데 남북이 합의를 해서 조금 일찍 시작한 거죠?

기자

1차 때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저 작별상봉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굉장히 슬픈 이야기죠. 작별을 하기 위해서 만난다는 얘기인데 사실 저것은 과거 1960년대 중반에 서울과 평양을 오갈 때까지 저 용어가 없었습니다. 2000년 8월 15일날 1차 이산가족 상봉 때부터 세 번째 하다 보니까 북측이 부담을 느꼈다고 해요.

부담을 느껴서 오가는 것만큼은 그 이후부터 금강산에서 했는데 북측이 저런 용어를 만들어냈고 프로그램상에 들어 있고 그것이 계속 지켜져왔는데 21번째인 이번 행사에는 다행히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1시간씩 늘려서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있게끔 그런 시간을 만들어줬죠.

앵커

손을 흔들면서 배웅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는데 저 장면은 지금 저희가 보여드리고 있는 장면은 작별상봉 뒤에 가족끼리 서로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는 장면인 것 같아요.

기자

버스에 탑승하게 되죠. 버스에 탑승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북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해서 미처 안 들어온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금강산호텔 내부에서 헤어지는 건지 추가로 버스에서 손을 흔드는 건지 그 장면은 아직 들어오지 않고 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건 오후 1시까지 행사가 끝난 화면이 지금 들어오는 겁니다.

앵커

이번 이산 상봉에서 눈여겨 봐야 될 일정 중의 하나가 호텔방에서 가족들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거잖아요.

기자

그렇죠.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합니다. 단체상봉 아무래도 시끄럽고 속내 깊은 얘기를 못 하는데 그동안 못했는데 이번에 개별상봉이라는 건 있었는데 용어가 정해졌죠. 개별중식. 그래서 남과 북의 가족들이 한 방에 모여서 외부 감시원도 없고 외부 관계자도 없고 기자들도 접근을 못하고 그래서 굉장히 그동안 헤어져서 어떻게 살았느냐 이런 얘기들을 많이 나눴다라고 했는데 저희 현장에 가 있는 기자들이 인터뷰를 해본 결과 굉장히 이런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런 반응들을 보였다고 그러죠.

앵커

이번에는 뒤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상당히 개방적이고 좀 더 친절하고 분위기가 과거 이산가족 상봉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이런 얘기들이 많이 들렸습니다.

기자

저도 이산가족 상봉 취재를 많이 해본 편인데 과거와 달라진 것이 과거에는 북측 관계자들이 훈포장을 굉장히 많이 달고 나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고요.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마는 물론 과거에 비해서 체제선전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한 빈도가 극히 잦았고 또 하나는 북측 관계자들, 이른바 보장성원이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이 감시를 하거나 이런 것인데 북측 보장성원의 한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원수님께서 남측이 요구하는 편의를 모두 보장해 줘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북측 체제 특성상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는 반드시 지켜야 되는 이행사항이기 때문에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이번에는 자유로웠다, 이런 관측이 보입니다. 역시 버스에서 헤어지기 싫어서 저런 장면이 보이죠.

앵커

조금 전에 창문 사이를 두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을 꼭 붙잡고 있던 상황이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집니다.

기자

이번에는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타게 되는 겁니다.

앵커

5시 20분쯤 강원도 속초에 도착을 하게 되고요. 지금 저희가 보여드리는 화면에서도 볼 수 있지만 상봉자분들이 너무 고령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 마음이 아픈 것 같습니다. 빨리 상봉을 정례화해야 된다, 이런 얘기들이 많죠?

기자

정례화뿐만 아니라 폭이 커져야 된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화상상봉장 같은 걸 곳곳에 만들어놨습니다, 북측과 그동안 합의 하에.그런데 남북관계가 굉장히 출렁거릴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실상 활용을 못하고 있고 그나마 이번에는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금강산에 있는 면회소를 활용을 했다라는 데 다만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가 당초 취지가 좋고 좋은 장소로 마련이 됐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문이 닫혀져 있던 거잖아요.

기자

그렇죠. 사실상 금강산 관광이 5.24 조치 이후로 재개가 안 되고 있고 그다음에 여러 가지 형태의 이유 때문에 대북제재라든가 그 틀 내에서 움직여야 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활용이 안 되고 있고 그나마 저 정도의 남과 북의 숨통이 터졌다, 저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은데 숨통이 터진 부분에 대해서는 그나마 다행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앵커

지금 작별을 앞두고 오병삼 씨 가족입니다.

기자

남측의 누나한테.

앵커

오병임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자

고향이 청주라고 하죠. 또 역시 전쟁이 남과 북을 갈라놓고. 사실 분단이라는 것은 한민족의 의식도 반쪽으로 만들어냈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사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현장에 가 있는 기자들이 음식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낯설게 여겨졌다는 건 사실 분단의 폐해거든요. 그래서 분단이라는 것은 한민족의 동맥을 끊어놨다라고까지 표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앵커

해방 직전에 누나가 시집을 갔고 부모님이 남동생 데리고 공장 취직하려고 흥남으로 가면서 전쟁이 났고 이렇게 해서 헤어지게 된 건데 남동생과 누나의 작별 장면, 하고 싶은 얘기가 밤을 새워도 부족할 텐데 저 짧은 시간 안에 전해야 된다는 마음이 참 너무나 가슴이 아릴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기자

그렇죠. 이번에 어머님이 북으로 간 전쟁 전에 돈을 벌러 갔다는 14살짜리 딸을 위해서 딸이 남겨놓은 꽃자수, 엄마한테 남겨놓은 꽃자수가 주인 손에 68년 만에 되돌아갔고요. 그다음에 68년 전에 한국전쟁 이전에 국민학교 졸업장이 본인 손에 전달되는 이런 거의 70여 년을 가보로 가지고 있는. 사실 실향민들이 300만 명이 한국전쟁 과정에서 남쪽으로 내려왔어요.

이번에 상봉을 못 하신 분들도 저거보다 더하면 더한 사연을 갖고 있지 덜한 사연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앵커

조금 전에 꽃자수 전한 분 얘기를 해 주셨는데 어머니가 그러니까 그 자수를 몇십 년 동안 품안에 안고 있으니까 꼭 전해 줘야겠다, 그런 희망으로 살아오신 거잖아요.

기자

그렇죠. 그런 희망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본인 손에 전달이 됐죠.

앵커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서 전달이 됐고 또 어머니가 생존해 있지 않다는 점이. 직접 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기자

그런 장면이 많았고 색이 좀 바랬다라는 것 외에는 문제가 없었죠.

앵커

이번에 최고령이 강정옥 할머니였는데 여동생을 만난 거죠?

기자

그 여동생 역시 육지로 돈을 벌러 가기 위해서 갔는데 전쟁이 나는 바람에 다시 못 만났는데 살아있다라는 얘기고 또 하나는 유복자 신분의 태중에 있던 아이가 아버지를 처음 만난, 조정남 씨라고, 그런 사연도 있었죠.

앵커

많은 이산가족 상봉자 분들이 손 붙잡고 언제 또 만나 이런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하는데 올해 안에 상봉행사가 다시 한 번 열릴 가능성도 지금 높아지고 있는 거죠?

기자

사실 박경서 대한적십자사 회장이 어제 사실은 기자회견을 현지에서 했습니다. 박용일이라고 조평통 부위원장이 북측 단장인데 이런 얘기들을 많이 했고 적십자사는 실무회담을 했는데 기대감이 높아집니다마는 북측은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명확하게 답을 안 했습니다.

그 배경 중의 하나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북한 정권이 솔직히 달가워하는 행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체제 유지를 위해서 한국전쟁 때나 북을 떠났던 사람들을 이른바 체제이탈자, 과거 용어로 하면 반동군자라고 해서 굉장히 북한의 체제가 5단계 신분으로 분류를 하는데 제일 하위 계급으로 두고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에 일회성 행사, 이벤트성으로 그치는 이유가 바로 그건데 이번에도 21차인데 북한 매체들이 보도는 했어요. 그런데 차이점은 대외매체에만 보도를 했지, 조선중앙TV라든가 노동신문. 제가 오늘자 노동신문도 봤는데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관해서는 단 한줄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북한 내부의 딜레마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이 박경서 회장이 요구한 대로 선뜻 받아들일 수 있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이렇게 예상할 수 있죠.

앵커

사실 몇십 년 그리고 있는 것도 가슴에 한이 맺히겠지만 이렇게 얼굴을 직접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화상상봉이라도 정례화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기자

그렇죠. 거듭 말씀드리면 사실 화상상봉장이 20군데 CCTV에서, 요즘은 웹카메라 워낙 잘 돼 있으니까 돼 있는데 결국은 이것은 정상 간에 해결돼야 될 문제인데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있어서지만 가능해지는 부분입니다.

앵커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마무리되고 남북 이산 상봉 가족들이 가슴에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작별을 하게 됐습니다. 연내에 다시 한 번 이 행사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 모든 분들이 갖고 있을 텐데요. 상봉 행사가 순조롭게 잘 치러졌다는 거, 다시 한 번 짚어보면 판문점 선언 이행의 의미로써도 크다고 볼 수 있죠?

기자

그렇죠. 이번에 4.27 판문점 선언에서 저 항목이 들어가 있죠. 그리고 박용일 북한 조평통 부위원장도 판문점 선언의 이행이라는 것을 분명히 언급을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내달 언제쯤으로 추정되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라든가 이른바 3차 정상회담이나 이런 부분에서 이야기를 하고 어제 박경서 적십자사 회장이 언급을 안 했습니다마는 박경서 회장이 NGO 관련 일을 굉장히 많이 했던 분이고 평양을 한 29번, 30번을 이미 방문을 해본 경험이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박 회장 언급에 따르면 내달 중으로 평양을 한 번 다시 방문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를 해 보고 북측에서 호의적으로 한다면 아마 10월 중이라든가 혹은 늦가을이라도 면회소가 있으니까 상봉 행사가 다시 열리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 봅니다.

앵커

오열하는 가족들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품에 안아보고요.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인데 이번에 오세영 시인도 북측에 있는 사촌을 만났잖아요.

기자

그래서 사실은 서울대 명예교수를 지낸 분인데 시를 남겼고요. 그다음에 남측의 여동생이 오빠하고 헤어지기 싫어서. 조카죠. 조카인데 저런 눈물 나는 장면인데. 서울에 거주하다 북으로 갔다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와서 북한에서 기자를 한 40여 년 했다는 분도 역시 시를 남겼죠.

그리고 또 하나는 8살짜리 아이가 이번에 북에 큰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고 무릎에 앉아서 이런 8살짜리가... 요즘 사실 8살짜리가 이산의 아픔을 잘 모르는데 아주 산교육을 했다,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자기 할아버지, 조상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다라는 것들을 8살짜리 눈으로 가슴 깊이, 그 친구는 굉장히 남다른 경험을 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이죠.

앵커

이번에 이산 상봉을 한 오세영 시인. 사촌에게 시를 남겼는데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서 다시 만나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 시 구절처럼 다시 만날 날이 꼭 올 수 있기를 저희가 기대해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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