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개별상봉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개별상봉

2018.08.25. 오후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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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앵커]
오늘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2차 행사가 지금 열리고 있는데요. 둘째날입니다.

오전에는 개별 상봉,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개별 상봉이 있었고요.

지금은 오후 3시부터 이제 단체 상봉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요.

관련 내용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함께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기자]
안녕하세요.

[앵커]
지금 단체 상봉이 금강산 면회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거죠?

[기자]
이틀째 단체 상봉이 이어지는데 지금이 오후 4시 40분에 다가가고 있죠. 그런데 5시면 사실 오늘 이틀째 행사는 사실상 끝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상봉 행사는 모두 끝나고저녁 5시 반부터 개별적으로 남과 북 가족들이 따로따로 식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일이면,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내일 다시 헤어져야 하는. 그래서 내일 쓰는 말이 작별상봉이라는 말을 쓰는데 사실은 저는 굉장히 잔인한 말이다.

어떻게 작별을 하는데 상봉을 하냐. 사실 북한이 세 번째 만남부터 저 용어를 쓰자고 했답니다.

그래서 지금 남과 북이 공식적으로 쓰고 있는데 이틀째 날에는 사실 저렇게 화기애애하고 주소 교환도 하고요.

남과 북 언젠가 통일이 돼서 다시 만나면 그 고향집이나 현재 살고 있는 가족들이 주소를 교환하는 모습이죠.

함경남도 단천시 이렇게 쓰고 단천은 원산 영흥만 이후로 해서 신포까지 올라가는 쪽에 있는 도시죠.

[앵커]
지금 도시를 이렇게 써주고 있는데 그런데 이렇게 뭔가를 서신을 보내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은?

[기자]
사실은 공식적으로는 아직 안 되고 있는데 우리가 그동안 사실 1990년대 중반부터 제3국을 통해서 서신 교환이나 제3국을 통해서 민간교류 차원에서 상봉 행사가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 도가 지나치면 처벌받거나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제3국을 통한 서신 교환을 한 게 1만 4000건이 있었다고 해요.

1만 1400여 통의 편지가 오고 갔고, 민간 채널을 통한 상봉 건이 3400여 건이 있었고 그런데 역설적으로 당국을 통한 남과 북의 상봉, 2000년부터 올해까지 18년째하는데 2000명이 채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민간 영역을 많이...

[앵커]
지금 상봉장에서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기자]
남동생....

[앵커]
조금 전에 상봉 모습이 보였고요.

[기자]
18번 테이블에 관심이 가는데 언니 리근숙 씨가 북으로 갔는데 엄마가 북으로 가기 전에 꽃자수를 놔줬는데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걸 68년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하죠. 이번에 전해주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꽃자수가 굉장히 시선을 끌었는데 68년 전에 쓴 자수를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 이거는 북측의 언니한테 전해주는 어제 화면이 비춰졌죠. 이번에는 부자상봉이 한 분이 있었죠.

태중에 있던 아기가 아버지를 난생 처음으로 만나는 화면도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개별상봉은 오전에 시작했었고요. 이제 단체상봉, 앞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이제 한 20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일정은 사실 이걸로 거의 상봉 일정은 마무리가 되는 건데 지금 저희가 그림이 들어오는 대로 오후 3시부터 진행된 단체상봉 그림을 들어오는 대로...

[기자]
부자지간입니다.

[앵커]
2차 상봉의 유일한 부자상봉이었죠.

[기자]
아버지 손을 꼭 잡고, 어제 첫 상봉에서 그랬답니다. 아버지 나한테 미안하지 않느냐 했더니 아버지가 아무 말도 안 하고 50일 전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요.

[앵커]
조금만 더 빨리 이렇게 만났더라면 좋았을 텐데, 오늘은 이렇게 아버지를 부축해서...

[기자]
아버지를 위해서, 저게 북한에서 판매하는 꿀물입니다. 아마 브랜드가 개성 무슨 꿀물 이렇게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따주는 모습도 있고.

[앵커]
부자상봉 관련해서 어떤 사연이 있는지도 같이 소개해 주시죠.

[기자]
지금 사실은 태중에 있었는데 그 사실을 모르고 아버지가 북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어떤 일 때문에 북으로 갔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리고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어머님은 68년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두 달 전이라고 했는데 한 오십며칠 되나 봐요.

저희가 첫날에 아들인 조정기 씨를 저희 YTN이 인터뷰도 하고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회한의 눈물만 이렇게 흘리고 사실은 오른쪽에 있는 분이 조덕용 씨, 그러니까 이복형제가 될 겁니다. 북측의.

[앵커]
지금도 여러 다른 테이블의 모습도 비춰지고 있는데요.

[기자]
이 화면 역시.

[앵커]
장운봉 씨, 북측의 장운봉 씨가 이번에 남측의 누나 그리고 남동생을 만나게 됐습니다.

[기자]
고향이 속초라고 하죠. 사실 속초는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지역으로 분류되죠. 그래서 이른바 양양 38도선 있는 데서부터, 강원도 양양에 현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지금의 고성군 현내면까지가 수복지구라고 해서 그이전에는 북한 땅이었죠. 우리가 한국전쟁 과정에서 우리가 수복지구라고 해서 그 지역의 북측 사람인데 그때 그 당시에는 그쪽 지역에서 상당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서 남쪽으로만 온다고 생각했는데 저때는 북으로 간 사람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앵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가족들은 한석구 씨의 가족들입니다. 북측의 한석구 씨가.

[기자]
17살 때 인민군에 끌려갔죠. 80번이 피순애 씨인데요. 아마 지금 경기도 고양 지역에서, 당시 역시 고향 지역 역시 일부는 북한 지역인데 여맹위원장, 여성동맹위원장이라고 그래서 북한은 건국해서 이른바 당조직을 많이 창건했죠.

그때 아마 여맹위원장을 하다 북으로 간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남쪽의 사촌동생을 만나는 그런 것이 되겠습니다.

[앵커]
화면이 들어오고 있는데 이렇게 짧게짧게 각 테이블별로 비춰지다 보니까 저희가 사연을 전해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자]
지금 화면에 안 드러났지만 어려서부터 글쓰기를 잘해서 너는 기자했으면 좋겠다고 어머님이 그랬대요.

그런데 그 할머니가 북으로 갔는데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다음에 실제로 40여 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라는 사연도 전해지고 있죠.

[앵커]
지금 계속 74번 테이블, 최성순 씨 가족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습니다. 이분 같은 경우는...

[기자]
개명했죠. 북에서 안길자라고 개명을 했는데 사실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혹시 피해를 당할까 봐 이렇게 개명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월남, 피란 내려온 사람 중에 실향민들 중에 그런 분들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권위주의 시절 때 남북한이 한창 체제 대결을 할 때 그런 선의의 피해자도 나왔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개명해서 사는 경우도 있고.

또 하나는 북한 지역 같은 경우에는 북한은 양부모의 성을 다 따르도록 호적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아버지만 따르는데 아버지가 만약 돌아가시면 여러 가지 경우 때문에 본인이 엄마 성을 따르도록 되어 있는 호적제도가 우리하고 다소 차이점이 있죠.

[앵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이런 사례처럼 이름을 바꾸다 보니까 또 이산가족 상봉이 더 빨리 이뤄지지 않고 그런 경우가 많이 있더라고요.

[기자]
1차 때 내 조카가 아니라고 해서 이번에 북한이 관심을 기울였던 것 중 하나가 화면에 잘 등장 안 하고 있습니다마는 직접 이산가족의 가계도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북측에서 가계도를 준비해서 확인하기에 용이하게 하는 그런 절차도 있었고요. 지금 주소를 교환하는... 사실은 가슴 아픈 사연입니다마는 형제 상봉은 있었습니다.

있었는데 형은 인민군이었고 동생은 국군이었던, 우리가 과거에 몇 년 전에 영화 있었죠. 태극기 휘날리며 그런 슬픈 사연도 오늘 이산가족 상봉단 중에 그런 사연을 가지신 분들도 있습니다.

[앵커]
지금 거의 상봉 시간이 끝나갑니다. 조금 있다가 5시쯤 되면 오늘 상봉 일정은 마무리되고 내일 오전부터, 오전 11시부터 마지막 작별상봉만 남겨두고 있는데요.

올해 몇십 년 만에 가족들과 다시 헤어져야 하는 이산가족들의 마음이 무거울 것 같습니다.

[기자]
작별상봉은 당초 마지막 날 11시부터 우리가 남과 북이 약속을 했는데 1차 때 같은 경우 1시간으로 좀 늘려서 10시부터, 조금이라도 시간을, 석별의 정을 나누게 하자는 공감대가 있어서 그렇게 했고요.

이번에도 아마 추정컨대 그에 준해서 내일 역시 10시부터 작별상봉이 이어지지 않을까, 오찬과 같이. 그리고 오늘 다행히 금강산 지역에 무지개가 떴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산가족들이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그런 무지개가 떴다라는 현장에 가 있는 기자들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앵커]
아무쪼록 아쉽겠지만 내일 마지막 상봉 일정까지 잘 마무리가 되고 마지막까지 가족간의 정을 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산가족 상봉 소식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함께 짚어봤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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