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마지막날 '작별상봉'...기약없는 헤어짐

이산가족 마지막날 '작별상봉'...기약없는 헤어짐

2018.08.22. 오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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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석향 /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앵커]
65년의 기다림 치고는 만남의 순간이 너무 짧습니다. 1차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된 남북의 이산가족들, 자세한 이야기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김주환 YTN 정치외교 전문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세 분 어서 오십시오.

오늘이 1차 상봉 마지막 날인데요. 지금 12시 13분. 아마 점심을 단체로 같이 먹는 이런 시간이겠죠?

[인터뷰]
그렇습니다. 단체상봉 마지막 작별을 한다면 점심과 함께한다면 아마 금강산호텔에 잡혀 있죠. 그래서 지금 65년, 70년 긴 기다림 그리고 12시간 짧은 만남. 또 그리고 기약 없는 이런 작별. 이런 부분에 있어서 오늘 마지막 날 상당 부분 어찌 보면 긴장이 풀리면서도 또 기다림을 약속하는 이러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원래 오늘 마지막 만남이 11시에서 1시까지 2시간이었는데 지금 10시에서 1시까지로 1시간이 늘었습니다. 이게 우리 측에서 요청을 했고 북측에서 전격적으로 수용을 했다면서요?

[기자]
그랬죠. 어제도 1시간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당초 계획에서는 6번 만나면 11시간이었는데 실제적으로 13시간. 그런데 계산을 해봤어요. 70년의 이별의 시간을 계산해 보니까 61만 3000여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고작 13시간이죠.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작별상봉이라는 단어가 사실은 굉장히 잔인한 단어죠. 작별하기 위해서 만난다. 어쨌든 우리가 남과 북의 현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시간이 1시 15분부터 버스에 탑승해서 순차적으로 다시 남쪽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지금은 가족들 심정이 누구보다 애잔할 겁니다.

[앵커]
저희가 잠시 뒤면 화면이 다 들어오겠습니다마는 헤어질 때 또 버스 창문 사이로 애절하게 헤어지는 이런 장면을 가슴 아픈 장면들을 저희가 봐야 되는 이런 상황인데 그런데 어제 개별상봉도 그렇고요. 오늘 만남 시간이 좀 는 것도 그렇고 북한 측 태도는 조금 예전보다 유연해진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
그렇기도 하고 저는 이걸 보면서 요청을 해 볼 수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그전에 우리가 남북 간에 협상을 하려면 북한이 아마 이거를 안 들을 거다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거든요.

[앵커]
미리 우려를 해서.

[인터뷰]
그래서 아예 시도도 안 해 보는 일들이 많았었는데 어쨌든 우리가 이런 아주 작은 시간, 지금 61만, 그걸 계산을 하셨네요. 그 시간 중에서 겨우 2시간 늘었다고 우리가 좋아해야 되느냐 하는 생각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안 해 본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래도 1시간을 더 늘려서 아침에 11시에 만나는 것하고 10시에 만나는 거하고 1시간을 더 늘릴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식의 시도는 계속해서 끊임없이 해 봐야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1시간,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마는 가족들 개별적으로 만남이 1시간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귀한 시간일 수도 있잖아요. 이렇게 미리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도 앞으로 조금씩 이런 걸 늘려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 얘기를 해 주셨어요.

[인터뷰]
그렇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산가족 만남, 가족들이 상당히 고령화잖아요. 고령화가 연달아 3시간, 4시간 이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과거 중간에 2시간 정도 쉬는 거, 이런 게 있었거든요. 어떻든 간에 일반 우리들이 보기에는 상봉에 있어서 날짜도 2박 3일 이렇게 할 게 아니라 한 3박 4일 이렇게 하고 또 개별상봉, 어제처럼 자유상봉의 시간을 확대하고. 그러면 여기서 같이 도시락으로 객실에서 밥을 먹는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해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발전한다 하면 함께 같은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이것도 상상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것은 결국 자유상봉 시간의 확대라고 볼 수 있겠죠. 자유상봉 확대라는 것은 결국 주위에 감시 이런 것도 없이 아주 가족끼리 오붓하게 자유로운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마 이러한 시간은 좀 더 확대돼야 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이산가족들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에 이번에 사실 상봉장에 가서도 만남을 다 채우지 못한 이산가족분들도 계시다, 이런 안타까운 소식도 들리던데 이런 걸 감안해서 만남의 질을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지적을 해 주셨습니다. 사실 어제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요. 첫째 날보다는 조금 화기애애한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얘기 들어보겠습니다.

[김혜자 (75세) / 이산가족 상봉자 : 꿈같아 지금도 꿈꾸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정말 감격스럽고. 애기 때 만나가지고. 애기 때 헤어져가지고. 73년 만에 만났어요. 아휴 같이 있고 싶죠 뭐. 안 보내고 싶어. 같이. 우리 집에 데려가고 싶어.]

[김병오 / 이산가족 상봉자 (88살) : 이 할머니 얼마나 미인이니. 예쁘지? 예쁘대""우리 여동생. 70년 됐어. 만난 지. 자 이거 먹어.]

[이금섬 씨 딸 / 이산가족 상봉자 가족 : 그러니까 오붓하게 만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어. 여럿이 넓은 자리에서 만나면 시끄럽고 정신없으니 물어보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물어보고 서로 막 흥분기가 있어서 차분하지 않은데 집 안에서 조용하게 만나니까 차분하게 물어볼거 물어보고 서로 차분하게 소통이 되더라고요.]

[앵커]
오붓하게 만나는 시간이 제일 좋았다 이런 얘기 많이 하시는데 앞에 보면 동생 보고 내 동생 예쁘지 이런 얘기도 하고 먹을 것도 먹여주고요. 보기가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첫째 날은 많이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많았다면 한 번 만남으로도 굉장히 분위기가 뭐라 그럴까요, 풀어졌다 그럴까요, 조금 화기애애한 이런 모습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일단은 확인하는 거하고 감정이 솟구치는 게 아마 첫 번째 만남이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얼굴을 바로 알아보시는 분들은 그냥 울음부터 터져나올 거고 그다음에 못 본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잖아요. 이게 사촌이거나 삼촌으로 가거나 그러면 한 번도 안 만났던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사진 보고 정말 당신 맞아요? 나하고 관계가 어떻게 돼요, 이런 거 하느라고 첫날은 어색함도 있고 흥분하기도 하고 그런데 1차 확인이 끝났잖아요.

그러면 2차, 그다음 날 만날 때는 그동안 궁금했던 것, 정말 알고 싶었던 거. 내 어머니, 내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어요?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어디에 모셨어요? 이런 걸 물어보느라고 조금 더 차분해지고 정말 물어보고 싶은 얘기를 물어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런데 아까 저희 취재기자 보도 내용에 보면 아까 첫날은 확인하는 작업이 진행이 됐다고 했잖아요. 너무 정말 시간의 격차를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까 핏줄 맞냐, 옥신각신하는 이런 안타까운 장면도 연출이 됐다고 합니다.

[기자]
전시납북자 가족인데 상봉 신청을 한 분은 이재일이라는 할아버지인데 형이 전시납북자인데 3형제였는데 동생하고 같이 97년도에 형이 사망했다는 건 제3국을 통해서 확인을 했었는데 조카들이 나왔는데 아니다, 내 핏줄이 아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 그러니까 어떻게 자기 아버지 사망 날짜하고 생년월일도 모르느냐 그래서 북측 관계자들이 북한 호적까지 들이대고 그랬는데 끝끝내 자리는 했지만 굉장히 냉랭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변 관계자들이 옆에 조카인데 같이 앉으라고 했는데도 끝끝내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합니다.

[앵커]
모든 장면이 참 안타까운 시간의 벽을 실감할 수 있는 이런 자리인데. 어쨌든 이번 만남의 하이라이트라고 한다면 어제 있었던 객실 도시락 상봉, 이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직 내 가족들과 함께 밥 먹으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는데요. 이 소감 들어보시겠습니다.

[이영부 할아버지 : 맛있게 먹었고 서로 간에 참, 71년 만에 만났는데 이번에 객실에서 두 시간 만난 것이 71년 동안에 서로 뭐랄까 한이랄까 하고 싶은 말을 다해서 아주 그 이상 더 기쁜말이 없지.""아무래도 개별로 만난 게 자유가 있고, 서로 마음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으니까 개별 만나는 게 백배 낫지요.]

[임현재 할아버지의 딸 임봉순 어머니 : 저는 언니를 만났거든요. 사촌언니하고. 고모의 아들을 만났는데. 선물 받고 나니 너무너무 좋고 그냥 마음이 따뜻했어요. 마음이 그냥 그렇죠 뭐. 아쉽고 고맙고 건강하게 잘 있어달라고 그런말 하고 싶었어요.]

[앵커]
앞서 이영부 할아버님 말씀 들어봤는데 개별상봉이 백배 낫지, 한마디로 정리를 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앞서 계속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이산가족들도 개별상봉을 더 간절히 원하고 있고 그렇다 보면 남북관계가 좀 유연해지면 앞으로는 아까 양 교수님 얘기해 주신 것처럼 하룻밤 같이 지내면서 잠 자면서 속 깊은 얘기를 하는 거, 다음 이산가족에서는 그려볼 수 있을까요?

[인터뷰]
이번 이산가족 상봉에 있어서 과거 20차례와 차이점이 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 통관절차 간소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차에서 내리고 타고 이런 데서 숙소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동, 거리가 멀잖아요. 이런 데서 이동거리를 줄이는 일종의 동선의 최소화랄까요, 이랬고 방금 이영부 할아버지처럼 71년 만에 만난 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같이 객실에서 개별상봉을 하고 또 거기에서 도시락으로 밥 먹는데 여기에서 71년 동안에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다. 이게 이번에 가장 하이라이트라면 하이라이트죠.

그렇다면 제가 방금 이야기한 대로 첫 번째는 뭐냐하면 같이 잠을 자면서 이야기하고 그러면 또 다른 측면이 있겠죠. 또 금강산 관광이 재개된다면 손 잡고 가족끼리만 손잡고 가면서 걸으면서 또 할 얘기가 있을 수 있죠. 이게 또 발전되면 과거 85년도에 우리 한 번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서울과 평양, 고향 방문. 여기에서 성묘도 하고. 그렇다면 거기에서 자연스럽게 사촌, 팔촌 이렇게 볼 수 있겠죠. 아마 이러한 부분이 결국은 우리가 이산가족 상봉,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결을 하는 데 있어서 출발점이 아니겠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번 기회에 지금 이영부 할아버지처럼 당국자들이 좀 더 개별상봉, 자유롭게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런 시간, 이것을 늘려주는 그런 지혜를 모을 때다, 이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앵커] 앞으로 이런 만남의 질이 높아지는 이런 부분을 북한과 남한 동시에 연구도 하고 반영이 되겠습니다마는 문제는 이산가족분들이 워낙 고령이 많으시다 보니까 시간이 없다는, 이 부분 아닐까요.

[인터뷰]
그래서 양 교수님 말씀하실 때 저게 참 좋은 방법이기는 한데 답답하다. 어느 세월에 하는 생각을 옆에서 하고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저는 이산가족 2세대라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닌 거예요. 그리고 만약에 아버지가 생존해 계시는데 90세예요. 아버지 돌아가시면 우리 순위는 확 밀리겠구나, 안 오겠구나, 순서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니까 차근차근 가는 건 굉장히 좋은 일이고 현실적일 것 같은데 어느 부분에서 이걸 확 치고 나가서 한 번에 단번에 생사확인이라도 하는 그런 기회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또 들기도 합니다.

[앵커]
많이 나오는 방법으로 화상상봉이라든가 생사확인할 수 있는 부분, 한숨을 쉬셨는데.

[기자]
지금 착시현상이 뭐냐하면 제가 왜 착시현상이라는 표현을 하냐면 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이 13만여 명인데 마치 요즘 세대들은 이산가족이 13만 명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게 착시라는 부분이 사실 한국전쟁 기간에 북을 버리고 피난해 온 실향민이 한 300만 명 됩니다, 300만 명. 그런데 자발적으로 , 적극적으로 등록 신청하신 분이 13만여 명 중에서 그중에 7만여 분이 이미 돌아가셨죠. 그중에 5만여 명 중에 90세 이상이 21%, 80세 이상이 사십몇 프로, 그래서 김 교수님 말씀대로 이분들이 만일에 세월이 지나서 작고하면 저도 실향민 2세인데 기회가 없어지는 거예요. 남과 북이 자꾸 기록작업들을 해야 되는데 기록이 없어지는 거예요.

[앵커]
그렇죠. 어쨌든 간에 이런 상황이다 보니까 이번 만남이 굉장히 귀한, 또 그리고 어려운 이런 만남인 것은 맞는데 이런 어려운 만남 앞두고 북측에 있는 가족들 만나기 위해서 우리 측 이산가족 상봉자들, 가방 한가득 선물 바리바리 싸서 가는 모습 시청자 여러분도 보셨을 텐데 북한 역시 남측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선물을 준비했는지 보시죠.

[이영부 할아버지 : 선물은 내가 많이 줬지. 받은 것은 이 술 받았어요. 여기 뭐 이 무슨 술이야, 평양술 백두산술 또 하나는 모르겠어요. 3개 받았어요.]

[임현재 할아버지 동반가족 : 기분 좋죠. 뭐. 받았으니까. 색깔도 괜찮네. 그렇죠, 써야죠. 준 걸 안쓰면 안되죠.]

[앵커]
식탁보 남한에서는 지금은 많이 안 씁니다마는 굉장히 예쁘네요, 화려하게 저렇게 수를 놓으니까요. 그런데 북측에서 준비한 선물들은 술, 식탁보 이런 것들을 봤는데 일괄적으로 준비가 되는 겁니까?

[인터뷰]
네, 아마 똑같은 거를 다 한꺼번에 준비를 해서 가족마다 다 나눠줬을 거고요. 기본적으로 남북한이 만나면 북한에서 술하고 담배 주는 게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번에 손으로 수를 놓은 식탁보 저건 굉장히 눈에 띄는 건데요. 북한 여성들이 굉장히 손으로 수를 잘 놓습니다.

[앵커]
저게 일일이 수작업으로 수를 놓은 거군요.

[인터뷰]
손으로. 그래서 저게 기계수가 아니라 굉장히 곱고요. 사람 얼굴을 표현할 때 윤곽까지도 수로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올라가고 내려가는 부분까지도. 굉장히 섬세한 수를 놓은 거라서 저게 아주 귀하게 가질 수 있을 만한 물건입니다.

[앵커]
그렇죠. 받으신 할아버지, 준 걸 안 쓰면 안 되죠 이렇게 얘기하는 걸 우리가 들었는데 설명을 듣고 나니까 더 귀한 선물일 수밖에 없는 그런 식탁보 화면까지 저희가 봤습니다. 이번 1차 상봉의 모든 음식, 북측에서 준비를 한 건데요. 남북관계 훈풍에 따라서 올여름에 남한에서 평양냉면굉장히 대유행하기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평양냉면은 없었습니다. 다양한 음식들이 준비가 됐는데요. 상봉장에 등장한 북한의 이색 음식들 장민정 앵커가 정리해 봤습니다.

[앵커]
최근 남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북한의 '평양냉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요.

65년이 지나 다시 만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어떤 음식들을 맛보고 왔는지도 궁금합니다.

상봉 행사 첫날, 환영 만찬장엔 한 상 가득 진수성찬이 차려졌습니다.

팥소빵? 떡 합성? 닭튀기?

이름은 조금 낯설어도 자세히 보면 대부분 익숙한 음식들인데요.

팥앙금이든 빵에 찰진 떡 색색의 나물이 곁들여진 청포묵 냉채로 시작해 가리비 무침에 닭튀김이 식탁 위에 올랐습니다.

어느새 일흔이 된 딸이 한 젓가락 집어 아버지 입으로 넣어드립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처음 만나는 며느리도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시아버님 드실 것부터 챙기고요.

이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고개를 떨군 채 눈물만 삼킨 가족도 있었습니다

가족끼리 객실에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던 어제는 정성스런 도시락이 준비됐습니다.

닭고기 편에 완자 튀김, 송이버섯 볶음, 소고기 볶음밥, 후식으로는 사이다가 나왔습니다.

그 맛은 어땠을까요?

[이영부 / 이산가족 상봉자 : 볶음밥 식이었고, 야채니 닭고기 튀김이니 그런 거 정도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어요.]

'한 집안에서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우리는 가족을 '식구'라고도 부르죠.

65년여 만에 같은 밥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함께한 남북의 가족들 이제야 진정한 식구가 된 것 같습니다.

[앵커]
정말 북한에서 여러 가지 음식들 준비한 걸 봤는데 팥소빵, 청포종합랭채, 닭튀기. 저희가 이름은 조금 생소하긴 한데 다 먹어본 음식들이에요.

[기자]
단팥빵을 팥소빵이라고, 팥이 속 안에 있다는 뜻이죠.

[앵커]
이름만 다를 뿐인 거죠. 이런 음식들, 북한에서도 남한하고 시간의 격차는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같은 땅에서 나는 재료들이고요. 또 예전에 먹어본 기억들도 있고요.

[인터뷰]
그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거의 우리 평생에 분단된 상태를 계속 봤잖아요. 그러니까 분단이 굉장히 오래됐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 이전에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우리가 분단이 안 된 상태로 살았는지를 잊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게 굉장히 새로운 거구나. 새로운 거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리고 언어의 차이가 많다고 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저걸 팥소빵이라고 하거나 단팥빵이라고 하거나 보면 똑같이 생긴 거여서 그렇게 거리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한 일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그래서 저기 나온 음식들을 모를 만하거나 낯설거나 처음 봤다거나 이런 거 별로 없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면에서 오히려 동질감을 확인해 주셔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앵커]
65년, 어떻게 보면 긴 세월이지만 그 이전에 함께했던 시간들을 보면 어떻게 보면 또 짧은 시간일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얘기를 해 주셨는데 앞서 개별상봉 때 먹었던 도시락, 이 도시락 상봉장에 등장할 정도면 좋은 음식들 북한에서 골라서 대접을, 고기, 채소, 골고루 해서 대접을 하는데 도시락 가격이 우리 돈으로 2만 원 정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인터뷰]
이것이 남북한 제도적 차이지만 이산가족 인도적 문제에서 김영란법이 적용되는가 모르겠어요. 어떻든 간에 2만 원, 2만 5000원, 우리 돈으로. 하여튼 어쨌든 간에 정성이 담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맛있게 먹는 것이 아니냐 보여지고. 그다음에 하나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이 우리가 보통 삶에 있어서 낙관주의, 패배주의 이런 게 있지 않습니까? 지나친 낙관주의는 경계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예를 들어서 희망마저 잃는다, 벌써부터. 이렇게 하면 패배주의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고령화, 사실은 우리 김석향 교수님께서 지금 생각하셨는데 지금 생사확인, 주소확인이 안 될 상태에서 같이 잔다. 고향을 방문한다. 꿈 같은 이야기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저도 그 부분에 대해서 공감합니다. 그러나 꿈같은 이야기들이라 하더라도 남북이 당국자가 이마를 맞대면 점진적, 단계적으로. 물론 시간을 최소화시켜야 되겠죠. 그걸 좀 말씀드리고 싶고 그다음에 식단 이런 것과 관련해서 보통 남북한 주관 측이 다릅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89명의 우리 방문단이 북측 가족 상봉하는 거 아닙니까?

[앵커]
우리 측에서 요청한 북측의 이산가족들을 만나는.

[인터뷰]
그렇죠. 그렇다면 북측 가족들이 우리 측의 상봉단을 만나기 때문에 이 주관은 뭐냐하면 북측이 주관하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의 음식 이런 여러 가지. 그렇다는 71년, 73년, 68년 이렇게 만난 사람들이 옛날에 자신들이 다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회상을 하는 것이죠. 그다음에 24일부터 북측에 있는 83명의 방문단이 우리 측 가족 337명 만나잖아요.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우리 측이 주관하는 것이죠. 그때는 음식이 우리 측 음식.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아마 이번 기회에 또 우리 시청자분들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과거, 현재 북한의 음식, 우리 측의 음식 이런 것도 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아마 그때 우리가 준비해가도 북측에서 그렇게 이질적으로 느끼지 않고 맛있게 먹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기자]
지금 2차 상봉이 저는 보이지 않는 동선을 굉장히 중요시봐야 되는 것이 왜냐하면 폭염이지 않습니까? 북측도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지고 못 올라갑니다. 그러면 식재료를 어디서 공급하겠어요? 속초나 고성에서 그즈음해서 과거 금강산관광 다닐 때 그런 차들이 식재료차가 이동을 해서 음식을 현장에서 만들어서 북측 가족들한테 대접을 하고 이런 작은 부분인 것 같지만 이것이 갖는 의미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지금 그리고 또 다른 측면에서 봤을 때 앞으로 1시간 정도 지나면 버스를 타고 헤어질 텐데 20차까지 저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모든 면이 이전보다 자유롭고 좀 유연해졌다라고 하는데 그 전에 북측 가족이, 남측 가족들이 버스 안에 타야 되지 않습니까? 손 흔들 때 보이지 않는 통제선을 만들었어요. 그 선을 못 넘어서 했는데 버스 창문 유리에 대고 맞댈 수 있는 장면이 연출될지 안 될지, 그게 실제 나타날지. 1시간 후면 나타날 수 있겠죠.

[앵커]
1시 15분에 버스가 출발을 하는데 그 장면을 눈여겨서 봐야 된다 이런 얘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산가족 상봉이 열리고 있는 곳이 금강산호텔인데 이 호텔 주변에서 북한 물건들도 많이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매번 이렇게 파는 물건은 아닌 것 같고요.

그런데 보면 제가 가격을 유심히 봤더니 가격이 상당히 비쌉니다. 금강산 구기자차가 40달러고요. 맥주 한 잔이 5달러, 5000원이 넘는 거고요. 7.27담배. 어떤 담배인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한 보루에 70달러라고 합니다. 7만 원이 넘는데 우리나라보다 비싼 거 아닌가요?

[인터뷰]
비싸죠. 7.27 담배가 나온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7.27이 뭔가 하실 텐데 저게 북한 쪽에서 보면 전승절입니다.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에 서명을 했거든요. 그걸 북한 쪽에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로 해서 그날을 기념하는 담배인데 저게 최근에 생산한 지 얼마 안 됐고 아마 북한에서 생산하고 있는 담배 중에 가장 비싼 담배고요.저 담배 한 갑 가지고 뇌물로 쓰는 사람들 굉장히 많을 겁니다. 북한에서 남자가 담배를 딱 꺼낼 때 어느 갑에서 꺼내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기 때문에.

[앵커]
7.27 담배를 딱 꺼내면 사회적 지위가 북한에서 높은 거다.

[인터뷰]
높은 거죠. 그래서 담배 갑을 비우고 그 안에 다른 담배를 넣더라도 담배갑은 저걸 들고 다니는 경우도 많은 사연 많은 담배입니다.

[앵커]
사연 많은 담배. 그런데 북한 사람들이 이 정도 가격 가지고 북한 사람들은...

[인터뷰]
저게 일상적으로 북한에서 저 정도... 그러니까 7.27 담배가 굉장히 비싸기는 한데 북한 주민들이 저 담배를 구입할 때는 아마 저 가격으로 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맥주도 그렇죠. 그리고 금강산 구기자도 40달러를 주고 저만큼을 사는 북한 주민은 아마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매대를 만들어놨잖아요. 이 매대에서 파는 가격은 서울에서 오신 손님들이 살 가격이에요.

[앵커]
이번에 올라간 이산가족이나 가족들, 취재기자들 이런 사람들 선물용이기 때문에.

[인터뷰]
그런데 그 사람들 기꺼이 사거든요.

[앵커]
기념품이니까요.

[인터뷰]
70달러보다 2배쯤 돼도 살 거예요, 아마. 그래서 기꺼이 사려는, 지불하려는 의지가 아주 충만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기 때문에 저 정도 가격으로 한 거지 저게 북한 주민들의 일상적 가격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앵커]
그런 특수성이 있거든요.

[인터뷰]
과거 경험적 사례로 보면 남북한 모두 장사, 상인들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처음에 할 때는 방금 구기자가 40달러, 7.27 담배가 70달러 이렇게 돼 있지만 첫 시작할 때는 그렇게 합니다. 마지막 떠날 때는 이것이 가격이 반으로 뚝 떨어져 있어요. 그러니까 어찌 보면 처음 사신 분들이 이것이 북한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샀겠습니까? 북한에 왔기 때문에 기념품으로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단 말입니다. 그런 분들도 처음에 살 때 비싸게 샀지만 나중에 내려가기 때문에 아마 이것이 참고자료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앵커]
그러면 선물을 사려고 하면 조금 기다렸다 마지막에 사는 것도 방법이네요.

[기자]
지금 매대라고 했는데 과거에 묘향산 취재를 간 경험이 있는데 묘향산에 뭐냐하면 북한의 성지가 있습니다. 국제친선박람관이라고 해서 김일성, 김정일 당시 외국 정상으로부터 받은 선물을 절벽에다 굴을 뚫어서 전시를 해 놨어요.

그런데 거기는 성지입니다. 엄숙해야 되고 덧신도 신어야 됩니다. 그런데 성지인데 쭉 내려오다 보니까 주차선이 하나 있습니다. 이 선 안에서는 담배도 피우면 절대 안 되는데 이 선만 벗어나는 지금 말씀하신 묘향산 주변 상인들이 와서 물건을 팝니다. 똑같이 가격은 세게 불렀다면 낮춥니다. 그래서 저도 몇 개 산 적이 있는데. 지금 비싸다는 걸 그렇게 단순비교해서는 곤란할 것 같고요. 왜냐하면 우리도 예를 들면 똑같은 맥주가 편의점에서 파는 것과 호텔에서 파는 것과 가격차가 나지 않습니까? 그 관광지 물가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어쨌든 흥정도 가능한. 남한이나 북한이나 인간 사는 세상은 똑같구나 이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는데. 아마 취재기자들도 지금 있고요. 남측에서 올라간 이산가족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아마 이 물건 많이 사오실 것 같아요. 적목송 주걱이요. 천식하고 광견병에 특효가 있다. 주걱인데 어떻게 특효가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기자]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말해서 여름철에 옻닭, 과거에 옻나무 써서 그게 몸에 어디에 좋다 이런 형태인데 지금 우리는 광견병을 예방주사를 맞죠. 그런데 과거에는 아마 저런 민간요법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 나무로 주걱을 만들어서 아마 밥을 푸면 그런 성분이 몸에 좋다 이렇게 민간요법이겠죠.

[앵커]
적목송 나무, 주걱의 재료로 쓰이는 나무의 성분이 밥 뜰 때 들어가거나.

[기자]
찾아봤는데 우리 자료에는 없고 아마 북측 지역에서 오랜 민간요법으로 나오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인터뷰]
딱히 믿으실 건 없는데 마음의 위안은 될 것 같은 그런 민간요법이 북한에 굉장히 많이 있고요. 저희가 보기에는 원목나무로 깎아서 뭘 만들면 굉장히 비쌀 것 같은데 그거보다는 가격이 쌉니다. 그러니까 나무가 있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한 것 같고 금강산 지역에 가면 다른 지역은 산에 나무가 없어도 그 지역은 보호구역이거든요. 그래서 못 건드리지 돼 있는 적송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 있어요. 그래서 그쪽에서 나오는 나무, 묘향산 이런 곳에서 나오는 나무 같은 것으로 여러 가지 생활도구들을 많이 만들어서 팝니다. 발마사지할 수 있는 안마기도 하고 손에 쥘 수 있는 운동기구 같은 것도 만들고 그러니까 그런 것의 하나로 적송나무 주걱으로 그것도 판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앵커]
그렇군요. 마음의 위안을 얻는 이색적인 물건. 제가 만약에 갔으면 이거 신기해서 하나 사올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해서 여쭤봤습니다. 어쨌든 저희 이산가족들 개개의 사연부터 해서 음식은 뭘 먹었는지 또 어떤 선물들을 파는지. 우리 측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한번 하면 굉장히 대대적으로 섬세하게 보도를 하고 있는 이런 상황인데요.

북한의 사정은 어떨지 이것도 궁금합니다. 탈북자 윤지우 씨의 인터뷰 내용 들어보시겠습니다.

[윤지우 / 탈북민 : 친척이 이산가족 상봉을 했는데, 2001년도인지 그때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몰래 전화번호도 주고 돈도 몰래 줬는데 진짜 못 가지신 분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남한 쪽에서는 주면 아무래도 북한 가서 다 빼앗긴다더라, 하면서 안 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잘하면 줄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전화번호도 받아서 몰래 국경 쪽에 와서 전화 연결도 하고. 다른 해보다 대상자들에 대한 건강 관리라든가 그리고 다른 때는 "궁상스럽게 만나지 말라." "못 산다는 얘기 하지 말라." 엄청나게 했는데.올해는 그런 당부가 별로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모든 참석자들이 건강검진을 다 마쳤고 의료진의 일부가 참여를 해서 금강산까지 같이 오고 있어서 아마도 올해는 특별히 좀 새로운 그런 게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앵커]
예전에는 만남 전에 굉장히 사전 교육을 강하게 했다, 못 산다는 얘기 하지 마라 이런 걸 했는데 올해는 많이 줄었다 이런 얘기를 하네요.

[인터뷰]
이런 것이 앞으로 확대되겠죠. 과거 경험적 사례로는 항상 이렇게 만남에 있어서는 체제경쟁 이런 게 많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TV를 통해서 보든 어쨌든 간에 옷차림이라든지 키 같은 신장, 혈색 이걸 통해서 비교를 많이 한단 말입니다. 그렇다면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어찌 보면 이산가족 만나고 왔던 북측 사람들이 남측을 동경하는. 그렇다면 결국 사회주의체제 비교에 있어서 남측이 위에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걸 경계하기 위해서 사상교육을 상당히 많이 시켰죠.

그런데 가기 전보다도 다녀와서 교육을 더 많이 시키고 이런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인터뷰를 보니까 상당히 완화됐다고 할까요. 그런 부분은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젊다는 점도 있지만 이미 북한 주민들은 남측의 생활상을 다 알고 있다. 그것은 뭐냐하면 장마당이다. 각종 비디오 자료나 이런 걸 통해서 특히 한류 이런 것도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일전에 지난 봄이죠. 우리 측의 예술단이 가서 그것을 북측에서 방송을 다 했잖아요. 아마 이러한 영향이 있었던 것이 아니겠냐. 이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북한에서도 통제하기가 힘든 것이 이미 휴대폰 쓰시는 분들도 북한에도 있고 이렇기 때문에 예전하고는 상황, 환경 자체가 달라진 이런 상황인데. 이번에도 보면 전화번호 받고 이런 얘기도 조금 전에 들어봤습니다마는 이번에도 통일 되면 다시 보자, 주소, 전화번호를 교환한 가족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일되기 전에 이런 전화번호나 주소를 받으면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암암리에 있습니까?

[인터뷰]
있죠. 아주 많이 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다 알아서 더 이상 비밀도 아닌 건데요.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쓰면 북한 내부에만 쓸 수 있죠, 당연히. 그렇기는 하지만 아무튼 문자도 주고받고 이러다 보니 소문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제가 안 되죠. 왜냐하면 북한 내에서 지금 쓰는 휴대전화가 한 500만 대 정도는 넘어섰다고 하니까 가정마다 하나씩은 있는 거거든요.

왜냐하면 2500만을 계산하면 4인 가족에 한 대는 있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니까 원래는 그 휴대전화의 목적이 달러나 위안화 시세 같은 것 확인하고 물건값 정하고 이러려고 하는 거지만 하다 보니 누가 어디에 있다 이런 얘기도 하게 되고요. 국경지역을 가보면 중국 휴대전화가 들어가거나 북한 휴대전화가 중국으로 나가거나 하면 우리가 중국하고 휴대전화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자]
지금 두 가지 경우가 이번 상봉에서 나타났는데요. 뭐냐하면 우리 적십자사 직원들이 가서 상봉해서 단체사진, 사진을 인화해야 되니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갖고 가서 일일이 다 찍어줬는데 북측에서... 그리고 남측 동반 가족들의 하나가 요즘 우리가 필름형 카메라가 없지 않습니까? 디지털 카메라인데 다 찍어서 디지털 카메라 채로 줬답니다, 북측 가족한테. 그러면 북측 가족도 제재를 안 했고 이걸 받았다는 건 충분히 보고 배터리 충전할 수 있는 그런 충전기가 집에 다 있다는 걸 전제하에 얘기했다는 거거든요.

그리고 앞서 장마당을 거듭 말씀하셨는데 북한의 장마당 500개의 장마당은 정보 교환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시골에 5일장 가면 시골에서 물건도 사지만 누구네 집 어떻게 했다, 그런 정보 교환의 장소입니다. 굉장히 의미가 굉장히 크죠.

[앵커]
그렇군요.

[인터뷰]
북한 전화로 김석향 교수님처럼 국경지대, 특히 중국 전화 이런 것을 통해서 충분히 할 수 있죠. 그러나 북한 주민 개인이 우리 측으로 전화하려면 국제전화, 예를 들어서 베이징 북경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 아닙니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혹시나 문자 같은 경우는 김정은 위원장의 욕을 한다. 그러면 이런 것을 감시, 도청 이런 부분에 다 걸려듭니다.

[인터뷰]
그럴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인터뷰]
물론 없겠지만 예를 들어서. 그다음에 또 이것이 통제가 어렵다는 것이 아니고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정확할 겁니다.

[앵커]
그렇군요. 어쨌든 북한이 예전보다 통제가 어려운 측면이 있어서 그런지 유연해진 이런 측면이 있어 보이기도 하는데요. 어제 이산가족 상봉장에서만 해도 북측에서는 진행요원을 보장성원, 이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날씨 얘기도 자유롭게 물어보고 예전에는 많이 경계를 했는데 굉장히 말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날씨도 묻고 문 대통령 지지율 왜 떨어졌냐, 어떻게 하면 지지율이 오르겠냐. 굉장히 꼬치꼬치 물었다고 합니다.

[기자]
사실은 그게 최근의 현상은 아닙니다. 두 분 교수님들 다 북에 많이 가보셨지만 남북관계에 임했던 사람들이 농업관계 협상을 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정치 얘기를 툭툭 던지고 북한의 스타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그러면서 정보에 관한 작은 단초라도 얻기 위한 거지 이것이 마치 이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늘 남북 간에 어떤 형태의 접촉을 하면 꼭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인터뷰]
급여 같은 것도 굉장히 궁금해하고요. 제가 한 달에 월급이 얼마냐고 저한테 물어봐서 얼마쯤 되는데 그랬더니 거의 동시에 달러로 몇 달러냐 그래서 글쎄요, 그 정도 될 것 같은데 그러니까 그렇게 많이 받냐 이런 거하고 그 돈 다 어디다 쓰느냐 이런 것도 물어보고요.

[기자]
최근에 북한 여명거리에 우리로 말하면 40평짜리 아파트가 우리 돈으로 6억 합니다. 그러니까 평양 물가가 사회주의로 해서 통제물가라고 생각한다는 건 굉장히 곤란한 시각이고요. 6억 정도 합니다.

[인터뷰]
이중가격시장으로 보시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 사람들이 부담하면서 사는 것과 그다음에 우리 식으로 말하면 공시가격. 공시가격과 국정가격과의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데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잘 돌아가는 사회인 거죠.

[앵커]
그렇군요. 오늘 참 놀라운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요. 어쨌든 잠시 후 1시 15분쯤이면 상봉단 버스 타고 육로를 통해서 귀환을 하지 되고요. 5시 좀 넘어서 속초에 도착하게 되는 장면들 화면이 들어오는 대로 저희가 오후 시간대에 계속 보여드릴 텐데 한 번도 안 봤다면 모를까 본 다음의 그리움은 또 다른 그리움 아닐까요?

[인터뷰]
실제로 이게 편찮으신 분들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2박 3일을 만났잖아요, 어쨌든. 65년, 68년, 71년 만에 2박 3일을 만나고 돌아오셨어요. 돌아오시면 이분들이 연세가 많으시잖아요. 상봉 현장에서는지치지도 않고 잠도 안 주무시고. 그러니까 굉장히 하이퍼 상태인 거죠. 그 상태에서 돌아오시면 기운이 확 떨어질 수도 있고요. 잠재돼 있던 병들이 발현하는 경우들도 있고 .

[앵커]
또다시 보고 싶어서 마음이 아프신 분들도 있고.

[인터뷰]
이게 마지막 만남이라고 생각하시면 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인터뷰]
그 문제 관련해서 대부분 상봉자들이 한상봉한 한 달 동안은 가족들 사진, 같이 찍기도 하고 또 거기에서 받아온 것 이런 것을 가지고 굉장히 마음을 위로를 한다는 것이죠. 한 달이 지나고 나면 우울증이 온다는 거 아닙니까?

[앵커]
또다시 볼 수가 없으니까.

[인터뷰]
그래서 이것이 상당히 오히려 더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 김석향 교수가 계속 강조하는 게 뭐냐하면 이런 이미 상봉하신 분들 이분들에 한해서만이라도 서신교환 있잖아요. 이런 걸 한다면 우울증이라든지 기타 병 같은 것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아니겠느냐 이런 부분도 당국자들이 상기했으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앵커]
아까 김주환 기자가 작별상봉이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잔인한 말이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계속 더 드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런 이산가족들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사실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북미관계가 지금 더 나아져야 되고 비핵화 협상이 잘 돼야 되는데 그런 의미에서 9월이 굉장히 중요한 달입니다. 얼마 안 남았는데. 여러 가지 일정들이 있는데요. 지금 일단 북한 내부적으로 보면 9.9절 행사가 굉장히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행사 규모가 굉장히 커졌다 이런 보도들이 나오더라고요.

[기자]
그렇죠. 북한도 폭염이었죠. 우리도 더웠는데 요즘은 용어가 바뀌었습니다. 아리랑축전에서 빛나는 조국으로 바뀌었는데 그거 준비해야죠. 퍼레이드 준비해야죠. 그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죠. 그다음에 북한군 열병식 미림비행장에서 열병식 준비하죠. 이것이 하루이틀에 그리고 오늘 풀 기사 들어온 것 보는 북측 보장성원 하나가 남측 기자가 9.9절 평양 바쁘냐 그러니까 평양이 바쁜 게 아니라 평양뿐만 아니라 온 조국이 다 바쁘다. 그러니까 북한이 갖는 9.9절의 의미는 평양에서 제가 세 가지 사례를 얘기했습니다마는 거기에 가는 게 아니라 이른바 충성편지대회, 우리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구호 글짓기 이런 것을 하듯이 그런 릴레이를 굉장히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 전역이 떠들썩하게 준비를 하는 것이죠.

[앵커]
올해 70주년이라서 더 대대적으로 준비한다 이렇게 볼 수 있을까요?

[기자]
그렇게 해야 될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까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1945년 9월 9일날 국가를 만든 것이죠.

[인터뷰]
그게 뭐냐하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이번 9.9절, 건국 창건일을 민족대경사 이렇게 성격 규정을 했잖아요. 거기에 걸맞게 웅대하게 치르기 위해서 첫 번째로는 상당한 규모의 열병식 그다음에 지금 김주환 기자께서 잘 말씀을 하셨는데 집단체조에 대해서 빛나는 조국. 이것이 과거에 아리랑축전의 집단체제와는 다를 겁니다. 과거에는 성은정치의 표상이라고 해서 핵과 미사일 이것을 동영상, 뒤에 영상을 배경으로 해서 보여줬잖아요.
그런데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오히려 새로운 노선으로서 사회주의 경제건설 이렇게 얘기했단 말입니다. 이런 부분에서 과연 어떠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인가.

[앵커]
그런데 지금 특히 비핵화 현상이 한창이기 때문에 이번에 어떤 무기들을 선보일까, 열병식에서.

[인터뷰]
그래서 지금 우리가 뭐냐하면 과거 경험적 사례를 보면 미림비행장, 준비하는 장소, 무기들. 거기가 집결하는 장소 아닙니까? 여기에 가림막을 설치하고 있단 말입니다. 과거에 열병식을 앞두고 가리막을 쳤다면 대다수가 아주 큰 화성-14, 15형 같은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이란 말입니다. 지금 비핵화된 상태에서 이런 미사일을 과연 가지고 올 것인가, 상당히 궁금하죠.

[앵커]
어떻게 예상을 하십니까?

[인터뷰]
글쎄요. 제일 예상하기 편한 것은 50:50이다.

[앵커]
그 얘기 저도 할 수 있죠.

[인터뷰]
중요한 부분이 뭐냐하면 예를 들어서 화성-14, 15형 같은 장거리 미사일을 보여준다 하면 이것이 그냥 일반 거기에 있는 참석자들만 보여주고 중계상으로 안 보여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중계상으로 안 보여준다는 것은 미국을 의식해서 이것을 어찌 보면 비핵화 협상에 대해서 상당히 장애물 아닙니까? 그러나 또 내부적으로 보여줌으로 인해서 우리의 안보 튼튼하다 이걸 보여주고 있겠죠.

그래서 이것은 중계상으로 편집할 것인가, 그냥 보여줄 것인가. 또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것이 나올 것인가 안 나올 것인가 이게 궁금한 부분이죠. 마지막 하나 추가하는 것이 뭐냐하면 이미 김정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해서 쿠바, 중국, 러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이런 우호국, 여기에 대해서 대규모의 고위급 축하사절단을 요청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과연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갈 것인가, 이것이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가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9.9절 앞두고 여러 가지 전망도 나오는데 실제 9.9절에 어떻게 북한이 행사를 준비해서 어떤 모습으로 누구를 초대해서 어떤 사람까지 나올지 굉장히 궁금해지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게 북한의 국내 행사라는 점은 저희가 생각을 해서 봐야 될 것 같고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어제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그냥 장기적인 전망에서 그냥 이렇게 던진 얘기인지, 아니면 어떤 낌새가 있거나 아니면 물밑에서 협상이 있기 때문에 얘기가 나온 건지 굉장히 궁금해지는 상황인데 북한이 핵시설 가동을 축소했다. 그리고 이 전력을 생활시설로 돌렸다 이런 보도가 오늘 한 언론에 나왔는데 이건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역시 양 박사님 말씀대로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사례가 있었는데 그 메시지는 두 가지 측면에서 봐야 됩니다. 실제 했으니까 2차 정상회담을 해서 다시 구체적인 걸 논의해보자. 그런데 그 반대의 개념은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공을 김정은 위원장한테 넘긴 것이죠. 이렇게까지 했는데 김정은 위원장이 어떤 형태로 답변을 안 한다? 그러면 모든 정치적 책임은 김정은 위원장한테 넘어가겠죠. 그래서 제가 그게 반반이다라는 현재의 예측 단계에서는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포인트가 9월달에 UN총회가 열립니다. 9월 말경에 북한이 총회 연설을 하겠다고 신청을 했는데 공란으로 남겨놓고 장관급 이상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혹시나 혹여나 김정은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워싱턴을 거쳐서 뉴욕에 가지 않을까라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예측을 해 보는 겁니다, 예측. 아직 이거는 발표된 건 아니고요. 그런 전망들을 해 봅니다.

[앵커]
그러면 거기까지 가려고 하면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이 들어갔을 때 비핵화 첫 단추로 뭘 내놓을지, 이 첫 단추를 어떻게 꿸지 이걸 지켜봐야 되는 거죠. 알겠습니다. 여러모로 9월이 굉장히 바쁜 한 달이 될 것 같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그리고 김석향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김주환 YTN 정치외교 전문기자와 얘기 나눠봤습니다. 세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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