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 마지막 날...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

이산상봉 마지막 날...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

2018.08.22. 오전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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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찬일 /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임을출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앵커]
2박 3일의 상봉 마지막 날 일정 계속해서 전문가와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그리고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몇몇 가족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봉 이틀째였던 어제 가족들 보다 편안한 심정으로 개별상봉도 하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70년 만에 북한에 있던 여동생을 만난 오빠. 이 여동생을 만나니까 아직도 어린애 같은가 봅니다. 함께 보시죠.

[앵커]
미인 맞으세요. 미인 맞으신데 예쁘지,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 보니까 다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인터뷰]
그렇죠. 저는 저 화면을 딱 보는 순간 북쪽이 누나이고 남쪽이 오빠인 줄 알았습니다. 그마만큼 북한이 아무래도 우리보다 수명도 짧고 그러니까. 어쨌든 예쁜 건 확실하게 맞습니다. 남남북녀라는 말도 있습니다마는 얼마나 사랑스럽고 또 예쁘고 귀엽겠습니까, 자기 핏줄을 만났으니까. 아마 이번에는 그렇게 또 도시락을 해서 식구끼리 두 분도 아마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앵커]
먹여주네요.

[인터뷰]
먹여주면서 정말 혈육의 정을 느끼는데 앞으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 한 끼를 같이했으니까 앞으로 좀 하룻밤을 같이 자는 그런 상봉이 진행됐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앵커]
그런가 하면 네 살 때 헤어진 아들을 한눈에 알아봤던 할머니, 이금섬 할머니 계셨죠. 어제도 이 아들을 만나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장면도 함께 보시죠.

[앵커]
일흔한 살 먹어도 아들은 아들이에요. 걱정이 되시나 봅니다, 잘 잤는지.

[인터뷰]
제가 저런 장면을 보면서 안타까운 게 아마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전하고는 좀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일단 하게 됩니다. 남북관계가 과거에는 이산가족 상봉이 있어도 추가적인 서신 교환이라든지 연락이라든지 왕래할 수 있는 그런 길이 지난 정부에서는 거의 막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처럼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발전이 된다면 이번 이산가족분들은 마지막이 아니라 최소한 연락한다든지, 연락을 다시 한다든지 서신교환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는 갖게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또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앵커]
사실은 저 두 분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드리려고 했는데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90대 노인 두 분은 거기까지 가셔서 너무 몸이 안 좋으셔서 아예 만나는 걸 포기했다고 합니다. 이런 일, 정말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거기까지 갔다가 긴장도 풀리고 그런 가족들도 많았던 것 같아요.

[인터뷰]
우리가 의료진도 많이 준비해서 갔는데 결국 못 만났다는 것은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일 아니겠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아마 정신적인 충격도 받고 또 뭔가 혈육을 만나면 뭔가 하고 싶은 말씀이 많았는데 그게 이제 어떻게 보면 좀 쇼크로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그 모습 하나에서도 우리가 이번에 100여 명이 가셨지만 거기서 벌써 몇 분이 못 만나는 걸 보면 정말 다음을 또 기약할 수 있겠는가, 이런 안타까움이 드는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빨리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느 때나 만나는 이런 이산가족 상봉 제도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앵커]
빨리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얘기는 잠시 뒤에 다시 하도록 하죠. 도시락 얘기 좀 나눠볼까요? 어제 점심식사를 개별상봉 하실 때 도시락을 드셨는데 도시락을 보니까 좀 특징이 있더라고요. 맵고 짜게 먹는 사람들한테는 좀 입맛에 안 맞을 정도로 좀 싱거워 보였어요.

[인터뷰]
제가 5.24 제재 조치 이전에 평양을 여러 차례 저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대체로 북한의 음식들이 담백하고 싱겁죠. 그런데 얼마 전에 김정은 위원장이 젓갈공장을 시찰한 모습을 제가 본 적이 있는데 앞으로 이 젓갈이 대규모로 생산이 된다면 음식들이 조금 짠맛이 나지 않을까, 이렇게 예상을 하고요.

북한 측에서는 나름대로 이전에 비해서 상당히 정성을 기울였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그런 도시락으로 저는 느껴졌고요. 특히 금강산의 송이, 닭고기 구이, 이런 음식들은 사실 북한 주민들도 잘 먹지 못하는 메뉴들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우리 남측 이산가족, 물론 북측 가족도 같이 먹는 거긴 하지만 상당히 배려해서 상당히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인 것 같습니다.

[앵커]
실제로 덜 짜게 먹습니까, 북측 사람들이?

[인터뷰]
아무래도 그게 꼭 몸에 좋고 안 좋고를 따져서가 아니라 반찬이 부족하고. 이번 준비한 거 보니까 참 깔끔하게 준비는 했지만 고춧가루가 좀 적게 들어갔다든지 임 교수님 말씀대로 젓갈이라든지 고추장이라든지이런 게 사실 도시락에 꼭 필요한 거 아닙니까?

반찬이 안 맞을 때는 젓갈이나 고추장만 있어도 밥을 먹게 우리는 도시락을 준비하는데 북한 도시락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송어튀기라든지 떡이라든지 다양하게 정성껏 준비한 건 사실이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좀 싱겁고 이렇게 보이기 때문에 혹시 가족분들의 입맛에 맞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앞으로 이게 자주 교류가 진행되다 보면 우리 남쪽 가족의 입맛에 맞는, 수준에 맞는, 퀄리티가 높아진 도시락도 아마 북한에서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보여집니다.

[앵커]
조금 전에 송어튀기라고 하셨잖아요. 저도 오늘 신문기사 보면서 오자가 아닌가. 송어튀김이 아니라 튀기라고 합니까?

[인터뷰]
네, 거기서는 덴뿌라를 꼭 튀기. 송어튀기, 생선튀기, 닭튀기. 김 자를 안 붙이고 튀기라고 붙이기 때문에 그게 우리하고 말이 다른 게 여러 가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소고기를 쇠고기라 그러는데 거기서는 절대로 쇠고기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용어 차이들이 어떻게 보면 작은 이질감이지만 음식에서도 그게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송어튀기. 북한 당국에서도 우리한테 선물, 가족들한테 선물을 주는데 백두산 들쭉술 등을 줬다고 하는데 백두산 들쭉술이 어떤 술입니까?

[인터뷰]
이게 백두산 지역, 고산지대에서 나는 들쭉을 가지고 술을 담근 건데 북한 술은 전반적으로 소주나 다른 술은 도수가 보통 25도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40도, 50도 올라가고 들쭉술은 도수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달짝지근한 이런 맛이 있습니다.

[앵커]
좀 단 술이군요?

[인터뷰]
그래서 북한이 개성 인삼술과 함께 들쭉술을 거의 이제 양대 수출품으로 많이 하는데 이게 외국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입에 안 맞을 수 있지만 우리 한국인들한테는 들쭉술이 상당히 입맛에도 맞고 또 몸에도 좋은 그런 열매로 만들었기 때문에 아주 좋은 선물을 준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비단 보자기도 준비를 해 줬다고 하고요.

[인터뷰]
그렇죠. 치마저고릿감, 이런 걸 북한에서는 아직 귀한 선물로 생각하니까 우리가 준비한 선물과는 차원이 다릅니다마는 북한에서야 이산가족들이 자기가 직접 준비했다기보다는 당국에서 좀 준비를 해 주죠. 그렇기 때문에 선물이 좀 단조롭지만 그걸 우리 이산가족들이 사용하기는 좀 그럴 겁니다. 술은 마시면 되지만 비단이나 치마저고릿감이나 이건 그냥 하나의 기념품으로 잘 보관하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상봉인데 원래는 2시간을 갖게 했었는데 이걸 1시간 좀 연장을 해 줬습니다. 북한 측에서도 조금씩은 이산가족에 대해서 처음에 시작할 때는 경계, 북한 체제 선전, 이런 것들 위주로 많이 교육을 시켰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부분은 조금 덜해지고 아무래도 인간적인 이런 쪽을 더 강조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사실 이제 회담 문화도 좀 이전하고 많이 달라지고 있고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문화도 조금 변화하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건데요. 이 부분이 결국은 남북 간의 신뢰관계가 조금씩 쌓여가면서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된 보다 실질적인 상봉행사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그런 우리 정부의 요청에 대해서 북한이 이제 부분적으로 응해 주고 있는 그런 과정인데요.

그래서 이산가족 분들이 어제 인터뷰한 걸 보니까 가장 좋았던 게 오붓하게 식사하는 자리, 어제 중식이죠. 점심 자리, 이게 가장 좋았다고 공통적으로 얘기를 하고 있고. 오늘도 원래 2시간 작별상봉인데 1시간 늘렸다는 것은 과거의 사례를 봤을 때 이게 2시간도 너무 짧았다. 그래서 1시간 더 늘리는 것도 크게 많이 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나마 작별의 아쉬움을 덜어주는 그런 인도적 조치라고 볼 수가 있는 거거든요.

이번이 21회 이산가족상봉인데 22회, 23회 이렇게 횟수가 늘어날수록 보다 이산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더 풀어줄 수 있는 방향으로 상봉 문화가 바뀌어가지 않을까, 그런 전망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앵커]
1시간 더 만나는 것도 중요합니다마는 결국은 헤어져야 되고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이 없는이별을 해야 됩니다. 늘 이산가족 상봉 뉴스를 전할 때마다 상봉 정례화해야 된다,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된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벌써 10년 지났어요. 아무것도 된 게 없습니다. 10년이 뭡니까? 지금 20년 가까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 얘기한 지도 처음 이산가족 만났을 때부터. 왜 안 되는 걸까요? 왜 안 된다고 보십니까, 상설화가?

[인터뷰]
기본적으로 남북 간의 불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사실 지난 9년, 10년 동안에는 남북 관계가 굉장히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몇 차례 열리기는 했는데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할 때 늘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해라. 그리고 금강산관광을 재개해라. 최고 존엄에 대한 비방 중상을 하지 말아라. 이게 늘 지난 9년 동안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의 어떤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내놓은 조건들이었거든요.

그런데 다행히 이런 조건들이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조금씩 충족되는 그런 모습들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이전보다는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에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보는 편인데 가장 근본적으로 저희들이 고민할 부분은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게 인도적인 성격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또 정치적 성격, 그러니까 체제 유지와 관련된 성격도 있다고 지금 보는 것이고. 그런데 체제 유지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실리가 더 크다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통해서 경제적 실리도 확보할 수 있다면 분명히 북한은 상봉 정례화 이런 부분에서 보다 협조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런데 경제적 실리라는 부분이 과거처럼 많은 비료를 주고 쌀을 주고 이런 것들이 아니라 관광이 다시 열려서 그걸 통해서 외화가 더 많이 유입되는 이런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북한은 아마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라든지 또는 최소한 생사 확인이라든지 이런 부분에서 적극 협력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거든요.

특히 이산가족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기가 직접 만나고자 하는 부모, 형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더라도 고향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그런 희망이 굉장히 강합니다. 그러면 이제 자기가 살아있는 분들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관광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앵커]
부모님 산소에 가서 인사라도 드리게.

[인터뷰]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고향 방문을 해서 성묘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만들 수가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으로 저는 접근해야 된다고 보고 사실 저분들이 고령 이산가족들이 앞으로 생존 기간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저분들의 마지막 소원을 출어주는 차원이라면 우리 정부나 또 북한 당국, 특히 북한 당국도 저는 마찬가지라고 보는데요. 이전보다는 보다 좀 인도적 자세로나올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앵커]
다음에는 좀 상설화된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북한 내부 상황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이 오는 9월 9일 정권수립일 행사를 합니다. 이번에는 상당히 시진핑도 올 것 같고요. 여러 가지 규모도 커질 것 같은데. 일단 북한에게 9.9절, 9월 9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 날입니까?

[인터뷰]
9.9절은 1948년 9월 9일 북한이 정권수립을 선포했기 때문에 올해가 70주년이 되는 겁니다. 워낙 북한이 정주년, 꺾어지는 해를 좋아하는데 70주년은 특히 한 사람으로 보면 진갑 이런 정도 되지 않겠습니까?

70주년이라는 뭔가 계기를 맞아서 과거 김일성 시대, 김정일 시대가 있었지만 오늘날 김정은 위원장이 정말 국제사회로 나가는 남북 정상회담도 벌써 두 번이나 했고 또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유의 김일성, 김정일이 못했던 걸 김정은 위원장은 한 거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9.9절을 계기로 뭔가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가는 정상국가 또 개혁개방의 메시지 또 지금 말씀하신 대로 시진핑 주석이 여기에 참석한다.

근래 보면 2015년에 류윈산 정치부 상무위원이 북한 노동당 창립 70주년에 참가한 게 최고위층이 왔는데 이 시 주석이 온다면 이게 정말 한반도, 특히 북한을 둘러싸고 미중 간에 여러 가지 각축전이 벌어지는데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이 와서 9.9절 퍼레이드에 김일성광장의 연단에 시 주석이 한번 손을 흔들어준다, 이러면 김정은 위원장은 먼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나갈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면에서 상당히 국제 정치적이고 또 국내적인 행사로 가장 큰 정치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앵커]
같은 질문 드리죠. 북한 정권은 이번 9.9절을 어떤 목적으로 활용을 하려고 할까요?

[인터뷰]
일단 김정은 위원장이 3대째 권력을 세습한 인물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주민들에게 권력의 어떤 정당성, 정통성을 보여주는 게 가장 중요한 거고 그걸 위해서는 정치군사적인 업적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업적이 가장 중요한 거거든요.

그래서 올해 신년사에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그렇게 얘기를 했죠. 올해는 정말 주민들이 주민생활이 체감적으로 향상되는 그런 효과를 보여주겠다고 선언을 했는데 그 선언을 이행해기 위해서 사실은 북미관계 개선에도 나섰고 또 남북관계에도 새로 변화시키려고 계속 노력을 해 왔는데 아마 물론 외교적으로 시진핑 주석을 초청해서 보여주는 것도 정통성이나 정당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경제적 성과들을 북한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되는데 그 부분과 관련해서 가장 미흡하게 느낄 가능성이 가장 높고요.

결국 경제적 성과라는 게 북미관계 개선을 통해서 주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거든요. 당장 북한 주민들이 체감적으로 뭔가 달라졌다, 이런 거는 못 느끼더라도 적어도 희망은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앞으로 우리가 경제가 좀 북미관계 개선을 해서 제재가 완화되고 나아질 수 있겠구나,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과제입니다.

[앵커]
게다가 외신을 통해서 지금 보여질 것은 열병식도 하지 않겠습니까? ICBM이라든가 이런 민감한 무기가 등장을 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저는 개인적으로 등장 안 할 걸로 보는데. 그리고 더군다나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빠르면 이번 주나 다음 주에도 방북한다고 또 나와 있고 결국은 북미 간의 어떤 불신의 고리를 풀고 비핵화라든지 체제보장의 맞교환이 잘 진행이 돼야 되는데 그런 맥락에서 굳이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수 있는 그런 신무기를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지금 가림막들이 이전보다 더 많이 등장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가림막을 하는 이유가 결국 ICBM 같은 첨단 신무기를 감춰놓고 당일날 보여주는 용도였다는 게 기존의 관행이고 평가인데 사실 ICBM 이걸 제외하고도 새로운 신무기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무인항공기라든지여러 가지 새로운 것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어떻든 특히 미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무기가 ICBM이기 때문에 최소한 ICBM은 등장은 안 시키는데 그래도 자신들의 어떤 과학기술력을 과시할 수 있는 새로운 신무기를 보여줄 가능성은 있다. 저는 그렇게 일단 봅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어제 북한 매체가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영결식에 참석을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공개를 했습니다. 그 모습 화면으로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사망한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인데요. 일단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인터뷰]
김영춘 인민무력부장은 현존하던 원수, 물론 북한에는 공화국 원수, 김정은 원수가 있고 인민군 원수, 김영춘과 현철해. 원수 세 명 중의 한 명이었는데 사망을 했습니다. 82세 사망했으니까 꼭 과거에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연령과 똑같은데. 이분은 아마 북한 총참모장을 15년간이나 지낸 가장 최장수 총참모장이었고 지휘관 군인으로서는 비교적 장수했고 숙청도 다 혁명화도 거치지 않은 그런 군인이었는데 빨치산 출신은 아니고 단지 보천보 그쪽에 뭔가 빨치산에 협력한 그런 혈통이 있었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좋다 보니까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도 잘 나가다가 영구차, 김정일 위원장 영구차 8인방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핵심 인물이었는데 저렇게 장갑차가 나가는 거 보면 과거 저렇게 장갑차를 타고 나간 영구는 오진우 원수하고 리열수 원수하고 이번에 아마 김영춘 원수가 세 번째일 겁니다. 그마만큼 빨치산이 아니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뭔가 저렇게 군인 출신에게 잘해 주는 건 또 군부 강경파들과 약간 대립도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네요. 지금 화면 보니까 거의 국장 수준이네요.

[인터뷰]
저게 북한으로서는 국장입니다. 김정은이 장의위원회 위원장이니까 강경한 군부도 좀 달랠 겸 어쨌든 저런 모습을 성대한 장례식을 해 줌으로써 군인들에게 뭔가 안정감을 주는 그런 목적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앵커]
그리고 지금 사진이 공개가 됐는데요. 그 사진을 보니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을 하잖아요. 거기에 보니까 비 맞아가면서 영결식에 참석을 하고 안경이 흠뻑 젖고 이런 모습이 있었더라고요.

[인터뷰]
그러니까 이게 고도의 상징정치라고 저는 해석을 하고 싶은데요. 어떻든 자기 아버지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측근으로서 진심으로 충성하는 인물에 대해서는 자신도 그런 예우를 최대한 표시한다, 그런 걸 보여주는 것이고 그걸 표시함으로 인해서 군 장성들의 충성을 유도하는 측면도 있고.

[앵커]
지금 영결식 때 모습인데요. 비가 오고 있거든요. 인민복 입고 그대로. 사실 어찌 됐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비를 맞고 있다. 이것 자체도 상당히 상징적인데 그것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어떤 정치적 이미지, 메시지 이거는 뭐라고 해석을 하십니까?

[인터뷰]
지금 이런 장면뿐만 아니라 현지 지도할 때 비를 맞는다든지 웃옷을 벗는다든지 그런 모습은 몇 차례 보여줘왔습니다. 그런데 어떻든 충성하는 기존에 충성하는 인물에 대해서 최대한 예우도 표시하고 또 그러면서 새로운 세대교체 된 많은 측근들로 하여금 충성을 견인할 수 있는 그런 상징적인 행동이 아닐까, 이렇게 저는 해석을 합니다.

[앵커]
지금 화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비 맞고 가는 모습. 그리고 손으로 흙을 직접 퍼서 잠시 뒤에 나올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고인의 관 위에다 덮어주잖아요. 맨손으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사실 저런 모습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저렇게 아마 정말 자기 손으로 흙을 퍼서 던지는 건 과거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위원장도 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저렇게 상당히 애석하다, 이런 뜻을 표시하는 건 결국은 제가 볼 때는 김영춘 개인보다도 군부를 좀 다독이는. 그래서 지금 보면 리명수 차석라든지 현직에서 물러난 군인들도 저기 등장하고 있습니다마는 이상하게도 현철해 원수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저기 우측에 최부일 위원장도 보이고 최휘 부위원장도 보이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뭔가 군부가 최근에 좀 강경세력으로서 김정은의 리더십에 약간의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는데 그걸 좀 잘 다스리기 위한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보여집니다.

[앵커]
알겠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김정은 위원장이 화를 냈다고 합니다. 공장을 갔는데요. 아까 그 얘기하셨잖아요. 지금 중요한 거는 북핵 비핵화 협상도 있지만 결국 그를 통해서 얻으려고 하는 게 경제적 성과인데 막상 공장에 가 보니 이게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답답한 게 많은가 봅니다. 이게 무슨 마구간이지 공장입니까 이러면서 화를 냈다고 하던데요. 왜 그랬을까요?

[인터뷰]
특히 남북 정상회담 또 북미 정상회담 이후 현지시찰을 부쩍 더 많이 하고 있고 그럴 때마다 현장을 방문할 때 사실 엉망인 모습을 볼 때는 강한 질책도 하고 또 비교적 공장이 잘 운영되고 있으면 칭찬도 주고 선물도 하고. 이른바 신상필벌식 현장지도를 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북한 경제가 그동안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관심을 가지고 현지 지도한 공장 기업소는 그 이후에도 많이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관심에서 벗어난 지역은 사실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현지지도가 경제 발전을 겨냥한 효과가 상당한 겁니다.

북한 사회에서 특히 일사불란한 체계고 또 더군다나 최고지도자가 가서 질책을 하면 그 이후에 개선을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경제 개선의 효과를 최대화 하려고 하는 그런 지도자의 행보가 아닌가 이렇게 분석이 됩니다.

[앵커]
짧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가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랬대요. 자세가 틀려먹었다. 그 공장 담당자, 어떻게 됩니까?

[인터뷰]
상당히 후과가 안 좋을 수 있고 이번에 특히 조직지도부를 타깃으로 비판을 했습니다. 조직지도부를 이끄는 사람이 최룡해 부위원장 아닙니까? 조영원, 황병서 부부장들을 대동하고 저기 총리가 한 번도 같이 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조직지도부 최룡해가 조금 위태롭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앵커]
역시 전문가 입장에서는 주변도 살펴볼 수 있으셨군요.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임을출 경남대 교수였습니다. 두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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