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가족끼리 객실서 식사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가족끼리 객실서 식사

2018.08.21. 오전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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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열수 /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실장, 김주환 /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송지영 / 前 북한 방송원

[앵커]
이산가족 상봉 이틀째. 오늘도 못다한 혈육의 정을 이어갑니다. 오전 개별상봉에 이어서 지금 이 시간이면 객실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점심을 함께 먹으면서 상봉을 하고 있을 텐데요. 남북 가족이 별도의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식사하는 것은 이번 상봉에서 처음 진행되는 식순입니다. 자세한 이야기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그리고 송지영 전 북한 방송원 그리고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와 나눠보겠습니다. 세 분 어서 오십시오.

도시락 먹으면서 개별상봉하는 것. 식사를 가족끼리만 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 도입된 일정인 것 같아요.

[인터뷰]
이번에 21번째 상봉행사 하는 거잖아요. 그 전에는 바깥에 나가서 같이 개별상봉하고 같이 해변에서 앉아서 밥도 먹고 그랬죠. 그러다가 지난번 2015년 상봉할 때는 개별상봉이 없었고 단체상봉만 있었는데요. 이번에는 어떻게 됐든지 간에 2박 3일 동안 총 6번 만나는데 11시간인데 그중에 오늘 오전이 개별상봉이죠. 그래서 10시부터 12시까지 개별상봉 각 방에서 하고 그리고 지금 현재 12시부터 1시까지는 같이 오찬을 하는 건데 어찌 됐든 3시간 동안 다른 상봉자들하고 관계없이 개별상봉을 할 수 있으니까 그나마 참 다행이라고 봐야죠.

[앵커]
개별상봉 시간이 이번에 조금 늘기는 했는데 오늘 총 5시간 정도 만납니다. 아무리 상봉 시간을 늘려도 모자란 게 어쩔 수 없는 건데 이게 2박 3일 짧은 일정, 어떻게 보면 2박 3일 동안 가족끼리 오붓하게 2박 3일 동안 같이 있으면서 했으면 좋겠는데 이게 그렇게 안 되고 있거든요. 송지영 씨 보기에는 왜 그렇습니까?

[인터뷰]
북한하고 우리 쪽하고 서로 그렇게 짰겠죠. 3일 동안 호텔 같은 데 줘서 3일 동안 자기네끼리 나가서 마음에 드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서 가족끼리 왔다 갔다 하다가, 자유롭게 하다가 2박 3일, 1박 2일 동안 그렇게 해야 되는데 그 시간을 식사할 때 만나고 자유롭게 만나고 2시간 만나고 이런 시간과 참 안타깝고 저분들은 계속 이야기하고 싶고 계속 만나는 시간만이라도 얼굴을 정말 계속 보고 싶을 텐데 서로 그런 안 좋은. 북한 당국도 그 시간을 그만큼 조절한다는 건 그만큼 다른 안 좋은 얘기가 흘러나가는 걸 걱정한다는 겁니다. 자기네 정치적인. 아무래도 너무 가까이 있으면 공식적인 얘기를 하다가 또 구체적인 디테일한 얘기까지 들어가지 않습니까? 너희 어디서 살았니 하면 산간 어디에서 살았다. 어떻게 살았냐. 우리 월남자 가족 돼서 이렇게 이렇게 살았다, 이런 얘기들이 나가는 게 보기에 안 좋았겠죠. 그러니까 시간을 차단하지 않았을까. [앵커] 그래서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

[인터뷰]
그렇죠. 제한해서 그렇게 스케줄을 짠 것 같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미 북측에서는 정보를 예전처럼 통제할 수는 없잖아요.

[기자]
그러니까 지금 말씀하신 연장선상인데 지금 김열수 박사님 말씀하신 대로 과거에는 개별상봉이 날씨가 좋으면 금강산 해변이나 야외에서 했는데 이번에는 개별상봉임에도 불구하고 객실 안에서. 취재진도 사실은 이번에는 제한이 있습니다. 사전 약속을 해서 개별상봉했을 때는 취재진이 접근을 못하고 나오는 것만 촬영하게끔 돼 있습니다. 그 화면이 아마 2시 반 넘으면 송출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부분이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과거의 경험으로 보면 과거에 이산가족 상봉할 때 기자들이 접근하면 체제선전 이야기를 하고. 어제도 사실은 논쟁이 좀 있었다라고 그러죠. 이런 부분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아마 개별상봉을 그런 형식으로. 장단점이 다 있다고 봅니다.

[앵커]
장단점이 있다. 오늘 오후에 단체상봉이 한 번 더 있고 그러면 오늘 일정은 끝나는 거고 내일 한 번 더 만나고. 이렇게 총 작게 나누면 6번 정도 만남을 가지고 돌아가야 되는 이런 일정이 되는 거죠?

[기자]
하루 지나니까 벌써 헤어질 걱정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은 눈물바다가 내일이죠, 내일 헤어질 때 굉장히 눈물바다를 이룰 거고 그다음에 24일은 북측 가족들이 이산가족, 남측 이산가족,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남측이 고향인데 한국전쟁 시기에 북으로 간 여러 가지 자의 반 타의 반 해서 북으로 간 사람들이 만나는 거고요. 이번 1차는 내일까지 일정은 북측이 고향인 사람들이 한국전쟁 시기에 남측으로 와서 북에 있는 가족을 찾는 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데 또 태풍이 올라온다 그러니까 좀 걱정도 있죠.

[앵커]
그러니까요. 목요일날부터 금요일까지 그 사이가 고비라고 하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차질은 없겠습니다마는 약간의 불편이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그런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못 만난 분들도 굉장히 안타까운데 이렇게 한 번 짧게 만난 다음에 그리움은 또 다른 형태의 그리움일 것 같아요.

[인터뷰]
안 만났으면 차라리 모르니까 그냥 그리움만 가지고 있는데 사실상 만나고 나면 현재 상황을 알잖아요. 그리고 지난 65년, 70년 헤어져 있을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개별상봉 시간에 얘기를 듣지 않겠어요? 왜 그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떠나겠어요? 계속해서 남아 있는 거거든요.

제가 볼 때는 오히려 이것이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도 아마 주지 않겠느냐, 크게 주지 않겠느냐 생각을 하는데 남아있는 분들이 얼마 없잖아요.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대범하게 남아있는 사람 돌아가실 날이 며칠 안 남았으니까 이런 분들한테는 아주 적극적으로 개방을 해 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상봉도 하게 하고 편지도 오고 가게 하고 또 필요하면 북한도 가게 하고 또 북한분들도 오게 하고 그런 날이 좀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지만 만나고 나서 그 뒤로는 다시 죽을 때까지 못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볼 때는 더 큰 고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어떻게 보면 형벌과 비슷한 그런 느낌일 것 같은데.

[인터뷰]
그렇죠. 형벌하고 비슷한 거죠.

[앵커]
어떤 사람들에게보다도 시간이 중요한 이산가족들인데요. 그동안 그리움과 눈물로 지냈을 남북의 이산가족들, 만남의 장은 그야말로 눈물바다였습니다. 각각의 사연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애틋한 사연들이 넘쳐났는데요. 장민정 앵커가 이 사연들 모아봤습니다.

[앵커]
잠깐의 이별이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은65년여 만에 아들과 딸을, 또 누이와 동생을 만났습니다. 그 기나긴 세월의 틈은 눈물로 메웠습니다.

[이금섬 할머니 (92세) : 상철아!상철이 맞아?상철이 맞니?]

백발의 노모는 긴 세월 그렇게 부르고 싶었던 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외쳤습니다.

피난길에 길이 갈리며 헤어졌던 아들은어느새 일흔이 넘었는데요.

엄마는 주름진 아들 얼굴을네 살배기 대하듯 비비고 쓰다듬습니다.

'어떻게 살았니''애들은 몇이나 뒀니'긴 세월 켜켜이 쌓아둔 질문들을 하나씩 풀어 놓아봅니다.

[유연옥 / 유관식 할아버지 딸 : 아버지, 나 엄마 닮았어요?]

아내 뱃속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떠났던 피난길.

1주일만 잠시 몸을 피하려 했는데, 6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존재 자체도 몰랐던 딸이 유관식 할아버지 앞에 앉아있습니다.

딸이 가져온 사진 한 장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흑백 사진 속 그리운 어머니 얼굴, 고왔던 아내 얼굴.

캄캄했던 할아버지의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김혜자 할머니 (75세) : 이게 나고, 네가 여기 뱃속에 있을 때! 아유~ 진짜~ 정말로~ 아이고 아버지!]

세상의 모든 감탄사를 다 가져와도어떻게 이 기분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김혜자 할머니는네 살 때 헤어진 동생을 만나러 왔습니다.

혹여나 동생이 아니면 어쩌지, 마음 졸이셨다는데요.

동생이 준비해온 사진을 보자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해방 때 헤어져 73년 만에 만난 동생 손을 좀처럼 놓지 못하는 할머니의 얼굴엔 감동과 회한의 눈물이 반반 뒤섞였습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사흘,벌써 절반이나 흘렀습니다.

65년의 그리움을 달래기에는너무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앵커]
아침에 저희 팀에서 가장 젊은 PD가 이 영상들을 쭉 돌려보면서 정말 못 보겠다고, 눈물이 나서. 이 얘기를 하던데 장민정 앵커가 전해준 절절한 사연들 하나하나가 가슴을 너무 울리는데요. 송지영 씨 보기에는 가장 가슴에 남는 사연은 어떤 사연입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부모, 자식간의 만남이겠죠. 어머니가 딸 두 명을 만나는 그 장면이 있었잖아요. 노인이 돼서 어머님이 구십몇 세인 것 같은데 이제 만나면 언제 또 자기 딸을 보겠습니까? 그 장면에서 저도 눈물이 많이 나왔습니다.

[앵커]
그러니까요. 정말 여러 가지 사연들이 지금 나왔습니다마는 이금섬 할머니. 피난길에 4살 난 아들의 손을 놓쳐서 지금 구순이 돼서 칠순의 아들을 만난 이런 상황이 된 거예요.

[인터뷰]
아까 우리 앵커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제가 볼 때는 이건 형벌이거든요. 왜 이런 형벌을 주죠? 그렇잖아요. 서로 만나게 하고.

[앵커]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는데요.

[인터뷰]
그래서 이번에 보면 부부 만남이라고 하는 건 없어졌거든요. 그만큼 다 돌아가셨다는 얘기예요. 그리고 지금 보셨다시피 어머니와 아들 또는 아버지와 딸, 이렇게 해서 만날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들의 연령들이 다 고령화돼서 오히려 이제 사촌끼리 만난다든지 또는 조카들하고 만난다든지 이런 형태로 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 친족 같은 경우에 촌수가 아주 짧은 촌수들, 그러니까 형제든 그렇지 않으면 부부는 이제 없으니까 그런 데라도 시작을 해서 점점 넓혀나갔으면 좋겠다. 저런 장면들을 보고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말은 제가 볼 때는 한마디밖에 없었다고 생각을 해요. 살아줘서 고맙다. 그러니까 이건 2015년도에도 똑같이 나온 말이거든요. 그때도 만났을 때 살아줘서 고맙다. 그 말 말고는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저도 가슴이 좀 메었는데.

[앵커]
저 두 분을 보면 굉장히 많이 닮았다 이런 생각도 들어요.

[기자]
추가로 해야 될 것이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을 하는 관계당국이 앞으로 급히 착수해야 될 일이 뭐냐하면 지금 우리 적십자사 기준으로 13만 2000여 명이 등록이 됐는데 7만여 명이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가 뭐냐하면 저희도 사실 부모님이 다 실향민 2세인데 제가 5번을 신청을 했어요. 했는데 안 됐는데 뭐가 문제냐 하면 당사자가 돌아가시면 신청이 안 됩니다. 그러면 저도 북한에 저희 사촌들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앵커]
신청이 아예 안 되는 거예요?

[기자]
아예 못합니다. 양 부모가 다 돌아가시면 자격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5만여 분이 지금 살아계신데 세월이 흘러서 이런 형식으로 해서 5만여 명이 만약에 다 돌아가신다고 하면 자연적으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이산가족 상봉이 절대 연결이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그 연결고리, 실향민 2세의 고향이 어디냐 이런 데이터를 확보해야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나중에 통일에 대비해서 북한지역에 가족, 친인척이 누구냐, 사촌이 누구냐. 저도 이야기는 들었죠. 저희 고모, 고모부라든가 외삼촌이 북측 지역에 있다는 말만 들었지만 그 후손들이 누구인지, 그러니까 이런 작업들을 남과 북이 하루빨리 상봉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확대도 중요하고 이런 후순위적인 것도 동시 병행해서 해야 된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앵커]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되는데 문제는 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만큼 천천히 할 수 없다는 것. 시간이 정말 얼마 없다는 이런 문제가 있죠. 65년의 만남이다 보니까 모든 것이 다 처음 아니었겠습니까? 함께하는 첫 식사, 처음 부딪혀보는 술잔까지 그 모습 화면으로 보고 이야기 더 나눠보겠습니다.

[앵커]
저렇게 가족끼리 처음 사진도 찍어보고 처음 술잔도 기울여보고 이런 모습들 보셨는데 어제 식사 메뉴를 보니까 대동강 맥주도 나오고요. 그리고 북한에서는 튀김을 튀기라고 하나 보더라고요.

[인터뷰]
네, 닭튀기. 김 자를 붙이지 않고 그냥 기차 할 때 기자를 붙입니다. 닭튀기, 대동강 맥주, 이게 북한의 유명한 치맥을 홍보하는 효과도 이 기회를 이용해서 많은 기자들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서 홍보하는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간접 홍보를 하는 것 같은데 대동강 맥주는 맛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가족들이 모여서 밥을 먹을 때 그때 정말 눈물이 많이 나고 가슴이 정말 찡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옆에서 막 떠드니까 따로따로 각 방에서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이 부분이 굉장히 보시는 분들, 국민들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에요. 왜 이렇게 가족끼리 오붓하게 조금 더 조용히 만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는데.

[인터뷰]
조용히 만나도 북한분들은 교육을 다 받았기 때문에 나쁜 말을 안 합니다. 당의 배려에 의해서 잘 살았다, 잘 살았다. 다른 방에 옮겨놔도 북한분들은 그냥 죽어도 공산당인 겁니다. 우리 그냥 잘 살았어, 당의 은덕에 의해서 잘 살았어.

[앵커]
상대적으로 남한 사람들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으니까.

[인터뷰]
같은 방에 놔도 북한 사람들은 도청이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쁜 말을 이만큼도 안 합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앵커]
개별적으로 만나는 시간 더 늘려도 된다?

[인터뷰]
그렇죠.

[인터뷰]
필담하지 않을까요?

[인터뷰]
화장실에 들어가서 물 틀어놓고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말을 북한분들이 양처럼 그냥 거기 길들여져서 그런 나쁜 말을 전혀 안 합니다.

[앵커]
그렇군요. 오늘 아침 메뉴를 봐도 이산가족이 고령이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얼레지 된장국, 오곡밥, 된장국, 감자볶음, 생선구이 이런 메뉴들이 있어요.

[기자]
지금 우리가 이른바 북한 음식이라고 해서 많이 하는데 자극적이지 않고 고령, 연세가 많다는 걸 북측이 많이 배려를 했다 그러죠. 그런데 24일부터는 우리 음식을 북측 가족들한테 대접하는 메뉴 방식이 달라지는 거죠. 그래서 참고로 우리가 말씀드리면 족발, 한국전쟁 이전에는 지금의 남측 지역에 거의 소개가 안 됐다 그러죠. 그리고 물김치, 백김치 이런 것들이 사실 북한 음식이죠. 왜냐하면 마늘, 파 이런 것들이 귀했으니까. 그런 담백하다라는 게 북측 음식, 북쪽 지역이고요. 그런데 그런 지금 말씀하신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들을 많이 이번에 메뉴로 나왔다고 하죠.

[앵커]
68년 만의 만남인데요. 뭘 먹는지 메뉴가 중요하겠습니까? 함께 먹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이번에 남측의 가족들이 북측의 이산가족을 만나러 간 거잖아요. 가면서 정말 얼마나 많은 걸 주고 싶었겠습니까? 여러 가지 선물들을 사가지고 갔는데 신발, 옷가지, 영양제. 굉장히 많이 가방 한가득 싸가지고 가는 걸 국민들이 화면으로 봤거든요. 북한에서 좀 유용합니까?

[인터뷰]
당연히 유용하죠. 그런데 북한이 95년도 이후부터는 국가가 허락하지 않아도 시장에 의존해서 살다 보니까 시장이라는 게 돈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면 또 사려는 물건 같은 것도 모여들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그런 게 발전해서 북한도 시장에 나가면 돈만 있으면 이제는 뭐든지 구입하고.

[앵커]
현실적으로는 이미 자본주의가 됐네요.

[인터뷰]
그렇죠. 2002년도부터는 북한이 모든 시장 경제관리 체계라고 해서 그걸 북한 당국이 허락을 했기 때문에 시장에 의존해서 다 살거든요. 그래서 시장에 가면 정말 우리보다 더 좋은 파카를 개인들이 만들어서 그걸 대대적으로 팝니다.

[앵커]
파카 싸가지고 가신 분들 굉장히 많던데.

[인터뷰]
그래서 50만 원짜리 파카까지는 저건 돈으로 가져가면 어떨까, 이런 생각 개인적으로 해 봤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번에 현금은 철저하게 걸러지지 않습니까, 대북제재 때문에?

[인터뷰]
현금을 어떻게 걸러요, 개인이 가지고 가는데. 숨겨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거죠. 그냥 자기가 떳떳하게 가져가면 되는 거죠. 형편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1000불, 2000불 정도는 갖고 가지 않겠어요?

[앵커]
자제해 달라는 수준인 건가요?

[인터뷰]
그 정도지 그걸 국민들한테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들한테 돈 얼마 가져가느냐, 물어볼 수가 있습니까, 그걸 검사할 수가 있습니까. 아무도 못하거든요. 제가 볼 때는 지금 우리 기자님께서 잘 말씀을 하셨지만 북한에서도 초기 시장이라고 할까요, 초기 자본주의는 지금 상당히 진행돼 있는 상태고 또 장마당이 500개 정도 되잖아요. 또 2012년도에 6.28 경제개선관리조치를 통해서 상당히 장마당에서 필요한 거는 거의 다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돈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돈이 필요한데 그 돈이 개인한테 다 돌아가면 좋은데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면 개인이 여기서 한국 친척분들한테 좀 받았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은 아무래도 좀 제한이 되겠죠. 그런데 물건을 받으면 그 물건을 어디다가, 당에다가 갖다내고 하지는 못하니까 그러면 아마 주변 분들과 나눠쓸 수 있는.

[앵커]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쪽에서 선물을 하면 예전에는 거두어간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어제 저희 안찬일 소장님한테 물어보니까 그렇지는 않다.

[인터뷰]
저희도 이산가족 상봉 친척 중 한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어버이인데요. 북한당국이 이산가족 상봉을 하면 돈이든 금가락지든 물건이든 하나도 그거 뺏지는 않습니다. 다 그대로 가져가라 합니다.

[앵커]
친척 중에 이산가족 상봉하신 분이 있는데.

[인터뷰]
있습니다. 그래서 그때도 외국에서 북한에 푸시를 해서 저희 이모부를 직접, 남쪽 국적은 아닙니다. 호주 국적이다 보니까 가서 만났는데 다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거 다 가져가라 하고 대신에 당에 더 충성하고 이번에 당의 은덕에 의해서 흩어진 가족을 상봉 시켜줬으니까 더 당에 충성하세요 이렇게 하는 것뿐이지 거기서 물건 뭘 받았냐 하면서 뺏거나 이러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알아서 정말 마음이 계속 감사한 거죠. 그래서 자기가 자기 현장에 가서 자기가 알아서 당에 헌납을 자기가 스스로 해요. 스스로 하게끔 한마디 툭 찌르죠, 당에 더 충성하라. 이렇게 하는데 그냥 내가 알아서 스스로 하는 거예요. 내가 알아서 100달러도 헌금하고. 내가 알아서 인민반 잔치도 차려주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앵커]
자발적인 상납이라고 해야 될까요?

[기자]
지금 화면에 나왔습니다마는 사실은 어제 방송을 하면서 가장 그랬던 게 북에 있는 증손자가 인민학교 3학년 증손자가 남측에 있는 증조할아버지한테 그림을 하나 그려줬습니다. 데생을. 오래오래 사시라고. 그 화면을 지금 보고 있죠. 소개를 했습니다. 저 선물이 증손자가 현장에는 안 나왔습니다마는 남측에 있는 증조할아버지한테 저 그림을 그려서 꼭 전해 달라고 했답니다. 어제 개인적으로는 저 장면이 가장 뭉클했습니다. 얼마나 증손주가 보고 싶겠어요. 그림도 굉장히 잘 들었죠.

[앵커]
저 그림을 받아든 할아버지의 심정은 정말 어떨까. 무엇하고 저 선물을 바꾸겠습니까? 아까 현금이 좋다고 하셨는데 현금하고 바꿀 수 없는 이런 선물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저건 진짜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의 그림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우리 기자님께서 말씀을 하셨지만 사실은 중앙당에서는 안 가져가죠. 남북 이산가족 상봉하고 있는데 거기에 관련된 분들이 직접 돈을 거둬서 가고 그러지는 않죠. 대신에 저분들이 각 고향으로 가면 그 고향에도, 지방에도 다 노동당 행정책임자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자발적 충성이라고 하는 건데 그건 우리가 더 확대하면 북한의 노동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가 있잖아요. 그들의 90%는 자발적 충성으로 바친다고 얘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10% 정도만 자기가 가지고. 그런 차원이죠.

[인터뷰]
왜냐하면 월남자라고 하면 북한에서 이산가족 상봉, 흩어진 가족. 여기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입니다. 월남자, 국군포로, 납북자 이렇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서 이산가족 상봉하시는 분들은 정말 복받은 분들이죠. 월남자 가족 중에서도 국군포로 한 명 있었다고 하는데 월남자 가족 중에서도 북한에다 원자탄 떨군다고 하니까 자동적으로 남쪽에 피난 좀 오고 싶다 해서 왔다든지 전쟁 난리통에 어떻게 돼서 흩어졌다든지 이런 분이시지 사실은 북한에서 지목하는 149 지주자본가 치안대, 그 흩어진 가족들 이런 분들은 제가 이산가족 상봉에서 만나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분들도 사실은 있죠. 그렇지만 북한 당국은 우리처럼 적십자사에 가서 나 이산가족 상봉 신청하겠습니까, 이렇게 신청할 수가 없거든요.

[앵커]
그러니까 북측에서 나오는 분들만 해도 굉장히 복 받은 분들이다. 선택된 사람이다.

[인터뷰]
여기에서 찾겠다고 해도 치안대 지주자본가 계급이다 이러면 북한 당국에서 패스할 수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의 자녀분들은 북한에서 신청할 수가 없어요.

[앵커]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에 지금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거나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그런 이유가 있을 텐데 어제 가슴 뭉클한 장면들이 많았습니다마는 우리 과거에 보면 사실 훈장들 많이 달고 나오잖아요, 북측에서 오실 때. 어제는 많이 안 보였던 것 같아요.

[기자]
사실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눠 봐야 됩니다. 내일까지 상봉하는 사람이 북측이 고향인 사람들이 했는데 과거에 비해서 자연스러워졌는데 일부 김일성 훈포장이라고 해서 양측에 관계자들끼리 실랑이가 있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테이블에 올려놓으니까 내려놔라. 이런 거는 사전에 남북이 이산가족 사전협상을 할 때 정치적인 발언을 하지 말자, 체제 우위 이야기하지 말라, 사전에 약속을 하는 겁니다. 약속을 했는데 왜 그걸 위반을 했느냐고 해서 자연스럽게 넘어졌는데 관건은 남측이 고향인데 북측 관계자들이 있죠. 24일부터 하는데 그런 패턴으로 보면 그분들은 굉장히 북한에서 나름대로 북한 체제에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눕니다. 훈포장을 많이 달고 나올 가능성이 있고요, 과거의 패턴을 보면. 또 하나, 이런 분들은 북한에서 남측 가족을 지정을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왜 우리는 한 번도 못 만나는데 저 사람은 왜 두세 번씩 만나느냐. 지정이 되니까 과거에 여기서 전쟁 과정에서 실제 자진 월북한 사람도 있고 간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두세 번 만난 경우가 유명인사들 중에 북측 가족을 두세 번,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두세 번 만난 경우가 있어요. 반드시 내일모레도 반드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우가 나올 겁니다.

그건 달리 말하면 이념적으로는 남측이 고향인 사람들이 북측에 가서 우리가 이만큼 성공했다. 지금 송지영 씨가 말한 연장선상에서 북측은 선발돼서 나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지정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한해서는 두세 번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앵커]
그러면 금요일날은 북측에서 선별된 분들이 내려오기 때문에 훈장을 달고 내려올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보시는 거고요. 지금 저희가 화면을 계속 보여드리고 있습니다마는 이 화면이 보통 남북 정상회담이나 이럴 때는 생중계로도 많이 보고 했었는데 시차가 있게 들어오고 있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서 보는 건가요?

[기자]
설명을 드려야 될 부분인데 이번에 2015년 10월에 하고 하다 보니까 어떤 과정인지 모르지만 위성장비는 못 갖고 들어오게 하고 TVU라고 요즘에 간단한 포터블 위성장비도 있거든요. 각 방송사마다 못 갖고 들어가게 하고 아쉬운 건 팩스 장비도 송신이 안 됐고 그래서 거기에서 찍으면 촬영기자들이 찍으면 요즘은 IC카드라고 있습니다. 영상을 담은 카드를 관계자들, 통일부 직원이라든가 차량에 이동을 해서 CIQ를 이용해서 제진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금강산 관광하는 데 교육받고 주차장인데 거기에 우리 중계차가 서 있으면 거기에 갖고 가서 각 언론사에 송출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과정이 한 1시간 걸립니다. 그래서 당초 오늘 화면은 아직도 지금 시청자분들께서 보시는 화면은 어제 화면입니다. 오늘 화면은 1시 반에 출발하기로 돼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청자 여러분이 2시 반에서 3시에나 오늘 화면을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차가 있다는 걸 말씀을 드립니다.

[앵커]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는 송출 받은 그림을 마음껏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그렇잖아요. 북한에서는 이렇게 이산가족 상봉을 하게 되면 어느 선에서 보도가 됩니까?

[인터뷰]
노동신문 같은 것은 마지막 지에 간단하게 실리고요. 조선중앙 아나운서가 멘트로 흩어진 가족 상봉을 하였다 이렇게 읽는 것으로 그칩니다. 굉장히 간단하게 합니다.

[기자]
오늘자 노동신문을 봤어요. 사실 이산가족 보도가 있는 줄 알았는데 1면부터 6면까지 다 봤는데 하나도 없어요. 이산가족 관련 뉴스는. 아마 내일이나 모레쯤에.

[앵커]
이게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 마무리 보도 정도 북한은 그렇게 보도를 한다고 보면 되겠군요.

[인터뷰]
왜냐하면 이산가족 상봉자들은 북한에서 성분이 나쁜 분들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홍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배려 차원에서 남쪽하고 어쩔 수 없이 이산가족 상봉을 시키되 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거나 선전선동 체계이다 보니까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뷰]
제가 보니까 지난번에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이 우리 조명균 통일부 장관한테 우리 이렇게 고위급회담 하는 거 생중계하자라고, 공개하자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다음 날 노동신문을 봤거든요. 그런데 노동신문에 아마 글자 다 펴봤자 30자, 40자 정도 될 거예요. 그 정도 고위급 회담이.

[앵커]
그렇기 때문에 공개하자 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거군요.

[인터뷰]
그래서 제가 그때 얘기하고 싶었던 게 우리 다 공개할 테니까 똑같은 비율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에서도 공개해라. 실제적으로 그냥 실황 중계해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 그러지는 못하는 거거든요. 이것도 마찬가지라는 거죠.

[앵커]
어쨌든 이산가족 상봉, 아까 김열수 교수님이 얘기해 주셨지만 이번에 부부는 한 명도 없고요. 그리고 자녀랑 부모 상봉하는 것도 7건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고령화가 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래서 만남을 정례화해야 된다,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해야 된다 이런 필요성을 또다시 언급했는데요. 이 발언 들어보시겠습니다.

[문재인 / 대통령 : 남과 북은 더 담대하게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정기적인 상봉행사는 물론 전면적 생사확인, 화상상봉, 상시상봉, 서신교환, 고향방문 등 상봉 확대방안을 실행해야 합니다. 특히 오래전에 남북 합의로 건설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를 건설취지대로 상시 운영하고 상시상봉의 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앵커]
상설면회소. 이미 만들어져는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지금 활용이 안 되고 있는 이런 상황인데 이거를 좀 활용할 방안을 빨리 찾는 것도 방법인 것 같습니다.

[기자]
그렇죠. 그러니까 결국은 우리는 의사가 굉장히 강하죠. 강한데 북측이 북측 당국자들이나 결국은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최종 결정이 있어야 되는데 이런 문제, 내부 문제 때문에 응하지 않는 거죠. 사실은 동서독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동서독은 통일되기 전 우리보다 훨씬 행복했다, 이 표현을 쓰고 싶습니다. 거기는 내독부라는 곳이 관여를 해서 72년부터 독일 통일이 될 때까지 100만 명이 상봉을 했고요. 서독 거주자들이 동독 고향에 가서 한 달간 체류할 수 있는 그 정도까지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이 있었습니다마는 그들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통일까지 이어졌죠.

[앵커]
다음 달이면 평양에서 3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여기서 정례화 문제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의가 될지 이걸 우리가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더 좋아지려고 하면 북미관계도 지금보다 더 진전이 있어야 될 텐데요.

오늘 트럼프 대통령 발언이 주목이 되는 게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로이터통신하고 인터뷰를 했거든요. 어떻습니까? 2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죠?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한 것은 2차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한 거고 그래서 2차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그런 의지 표명을 한 거고 그것을 김정은 위원장도 수용해서 같이 하자고 하는 것을 일부러 이런 로이터통신을 통해서 일부러 얘기했다고 봐야죠. 그래서 2차 정상회담 얘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얘기하긴 했지만 사실상 한 2, 3주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는 얘기잖아요.

그래서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방북을 하고 그리고 나서 거기서 종전 문제하고 그리고 비핵화의 진전 문제가 서로 교환이 된다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9월달에 9월 셋째 주부터 UN총회가 열리니까요. UN총회에서 정전 65주년을 기념한다라고 할까요, 종식시키는 그런 차원에서 종전선언도 할 수 있는 거거든요. 종전선언도 하면서 2차 두 번째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정상회담도 있을 수 있단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앵커]
예상하는 대로 조치들을 잘 이루어지면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인데 시진핑 주석 방북설이 돌았잖아요.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걸 견제하기 위한 차원에서 한 발언이다, 이런 분석도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시진핑 주석의 방북 얘기도 한 일주일째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있는데요. 싱가포르스트레이트 뉴스인가요, 거기에서 방송에서 나왔죠. 그래서 어찌됐든지 간에 일부 관련된 사람들이 북한에 방북을 해서 지금 이 문제를 조율하고 있다고까지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시진핑 주석의 방북 가능성은 저는 있더라고 봅니다.

그런데 그 날짜가 9월 9일이냐 하는 것은 저는 좀 의문을 가져요. 왜 그러냐면 9월 9일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으로 봐서는 굉장히 중요한 날짜죠. 그 중요한 날짜이기 때문에. [앵커] 정권 수립 70주년. [인터뷰]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올해 신년사를 할 때도 이 부분을 특별히 강조해서 김정은 위원장이 얘기를 한 거거든요.

그리고 지난번에 리용호 외무상이 지난번 ARF 회의 가서도 많은 나라들의 외무부 장관들하고 얘기도 하고 또 따로 쿠바도 가고 베트남도 가고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했잖아요. 그것이 바로 9월 9일날 정상들이 참석했으면 좋겠다, 그런 얘기를 하러 다녔을 텐데 제가 볼 때는 지금 뚜렷하게 어떤 국가가 9월 9일날 북한의 9.9절에 참석할지 여기에 대해서 나가겠다라고 얘기한 나라는 제가 볼 때는 한 나라도 없어요. 그런데 만일에 시진핑 주석이 그날 그 단상에 서면 주인공은 김정은 위원장이 되고 시진핑 주석은 옆에 곁다리가 되는 거거든요.

[앵커]
그래서 9.9절에는 안 갈 것이다?

[인터뷰]
그래서 방북을 하더라도 9.9절은 좀 곤란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하더라도 그 전에 갈 수는 있다고 봅니다. 6, 7일 정도, 또는 7, 8일 정도에는 가지만 9월 9일은 좀 곤란할 거다라는 거고요. 그래서 그 날짜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차원에서 말씀을 드렸고 지금 질문하신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이 부분에 대해서 불편하게 생각을 하거든요.

김정은 위원장이 세 번에 걸쳐서 중국을 방문을 하고 난 뒤에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와 말이 조금씩 달라져왔기 때문에 그래서 비핵화 하는 데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얘기를 한 거고 이번에도 만일 그런 과정을 거치게 되면 중국이 우리한테 비핵화에 대해서 협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협조하는 게 아닌가. 그런 사전에 그러지 말라라고 하는 것을 지금 말을 했다고 봐야죠.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 주석도 아마 방북을 한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조심스런 행보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앵커]
시점을 정할 때 신중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해 주셨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도 했거든요. 그렇다면 실제로 지금 물밑에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겠죠. 그러면 폼페이오 장관이 아마 다음 주쯤 방북할 거다,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들어가서 나올 때 뭔가를 가지고 나와야 되잖아요.

[기자]
사실 네 번째 만나는 걸 역으로 계산해 보면 해법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만약에 이번에도 빈손으로 왔다고 하면 북미관계가 굉장히 싸늘해지겠죠. 그러니까 북한도 그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파악을 하고 있고 오라고 신호를 보냈을 거고 선물을 줬을 것이다. 추가 선물을 줄 것이다. 지금 예상하는 건데 다는 아니지만 핵물질 리스트. 지금 사실은 북한이 비핵화 선제조치라고 하는 것은 미래 핵 관련인데 우리로서는 이미 만들어놓은 것, 과거 핵이라는 것을 해야 되는데 북한은 아마 현재와 관련해서 일부나마 목록을 주겠죠. 그게 뭔지는 누구도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조치를 했다는 것은 38노스나 이런 데 보도했던 거 보면 동창리 발사대를 해체를 하고 있고 풍계리 핵실험장을 일부 했고 그다음에 어제 일본 언론을 통해서 나온 보도입니다마는 이카오, 국제민간항공기구 전문가들이 내년에 방북을 해서 점검한다, 만약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른바 가장 핵사찰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 검증 단계를 한다든지 이런 것을 아울러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2차 정상회담이 중요한 고비일 수도 있는데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런 시그널을 보낸다라고 봅니다.

[인터뷰]
국제민간항공기구 이카오의 방북은 우리가 지금 김주환 기자께서 말씀하신 데 동의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요. 그 말의 의미는 장거리미사일 실험 안 한다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것은 앞으로 이카오하고 협력을 해서 내가 장거리 미사일 발사할 때 너한테 통보해 줄게라고 하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좀 달리 해석할 필요가 있다라고 보고요.

두 번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폼페이오의 방북하고 그다음에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 어떤 패턴이 정해져 있어요. 그 말씀을 아주 간단하게 드리면 세 번에 걸쳐서 만났잖아요. 그래서 맨 처음에 만났을 때 3월 말에, 그러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북경을 기차 타고 가서 만났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서 부활절, 3월 31일, 한국 시각으로는 4월 1일 되는데 그때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방북을 했거든요. 두 번째도 똑같은 패턴을 합니다.

[앵커]
그러니까 북미 만남 전에 북중 만남이 있는 거예요?

[인터뷰]
그렇죠.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북한에 가기 전에 항상 중국하고 김정은 위원장하고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패턴이 그대로 가는지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될지, 이건 아직까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어찌됐든 제가 볼 때는 북미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굉장히 북한하고 중국 간에 최고위급끼리 이런 조율을 충분히 한다고 하는 거죠. 이번 같은 경우도 제가 볼 때는 예를 들면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이달 말에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시진핑 주석이 가고 난 뒤에 그 뒤에 갈 수도 있는데. 그 뒤에 갈 수도 있죠. 그 뒤에 갈 수도 있는데 타이밍상으로는 조금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빨리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항상 이 부분들에 대해서 논의가 북한과 중국 사이에 긴밀하게 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이 부분에 대해서 지금 경고성 발언을 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 있죠.

[앵커]
그런데 비핵화 진전이 되려고 하면 지금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굉장히 주목되는 이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아까 핵물질 리스트, 이것을 북한이 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이 정도 북한에서 하면 지금 미국에서 지지부진한 종전선언요, 이 부분을 등가관계로 미국에서 판단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그렇죠. 지금 북한에서는 자기네들이 한 게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계 미국인 3명도 돌려보내고 동창리...

[앵커]
사실 선제조치로 한 건 굉장히 많습니다.

[인터뷰]
그렇죠. 선제조치로 한 것은 몇 가지가 있는데 사실상 이게 비핵화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비핵화하고 직접적으로 연관되려고 하면 핵 목록 제출하고 동결하고 그리고 폐기 수순으로 넘어가야 된다는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볼 때는 핵무기, 핵물질 관련되는 모든 시설과 그리고 관련되는 정보, 얼마만큼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 어느 시설에 이것을 저장하고 있는지 그게 아마 핵심 내용일 겁니다.

그 목록을 제출을 한다면 제가 볼 때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것을 비핵화의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서 종전선언하고 맞바꿀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렇게 되면 아마 제가 볼 때는 9월달에 UN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두 번째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정상회담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보죠.

[앵커]
그렇군요. 비핵화 시간표가 물꼬를 트기 시작하면 의외로 북미회담까지 순조롭게 갈 수도 있다 이런 전망을 해 주셨는데 미국이 생각하는 그렇다면 비핵화의 대략적인 완성 시점은 언제일까 이것도 항상 궁금한 부분인데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한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시간표를 1년 내로 한정, 또 한 번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존 볼턴 /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ABC 인터뷰) : 이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이전에 한국과도 한 약속을 이행하는 일입니다.]

[존 볼턴 /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BC 방송 인터뷰) : 우리가 얘기해온, 북한이 비핵화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시점으로부터 1년이라는 기간은 남북한이 이미 합의한 사항입니다.]

[앵커]
전략적인 결정을 내린 시점부터 1년이라 그랬거든요. 그러면 그 1년은 어디를 얘기하는 걸까요?

[기자]
사실은 비핵화라는 게 말하면 우리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북한이 핵이 하나도 없는 상태. 이거는 사실은 전문가그룹하고 인식의 괴리가 굉장히 큰 것이죠. 그런데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는 미 본토에 대한 위협만 제거되면 된다라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이야기를 안 합니다마는 그 반증이 뭐냐하면 1960년대, 75년도에 중국이 미국 서부와 동부에 도달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했어요. 그때 미중 협상이 굉장히 본격화돼서 1979년도에 전격적으로 수교를 하게 됩니다. 이런 부분이 역설적으로 북한이 원하는 거고요.

그런데 미국은 그 정도 위협, 그런데 그게 역설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위협은 사실은 우리 내부적으로 보면 물론 군사적 위험만 얘기합니다마는 우리는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제정세의 역학관계라는 게 있기 때문에 북미 간에 저 정도 톤에서 저 정도 수준에서 비핵화 협상이 되면 북한도 한반도에서 함부로 과거처럼 그렇게 불장난 행동을 못할 것이라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고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고 주변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인식이거든요. 그래서 평화가 군사 무력 도발을 덮는 그런 한반도 조성을 만들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아마 그 기간은 정치적으로 1년이면 충분하다라는 것이 볼턴 보좌관의 인식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
제가 조금 말씀을 덧붙이면 1년이라고 얘기한 것은 사실상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세 번째 북한에 방북했을 때 그때 이미 나왔던 얘기예요. 그래서 이때 1년이 어떻게 나왔느냐 했을 때는 그때는 미국의 핵 관련 과학자들 모여가지고 도대체 이것을 비핵화할 때 얼마나 시간이 걸릴 건가. 그래서 그때는 그 과학자들의 결론이 1년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해서 볼턴이 얘기하고 있는 것은 그게 아니고 남북한 정상들 간의 회담 사이에서 1년 안에 하겠다고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얘기했다라고 지금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4차 방북하기 전에 얘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앵커]
북미 정상회담.

[인터뷰]
아니죠. 남북 정상회담할 때. 남북 정상회담할 때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 대통령한테 약속한 시간이 1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 다시 4차 방북하기 전에 이 얘기를 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당신이 약속한 것만큼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켜내라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1년은 언제부터냐면 제가 볼 때는 목록 제출하고 검증 들어갈 때부터 저는 1년으로 봅니다.

[앵커]
그렇군요. 이게 1년 안에 다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이거는 의문이기는 한데요. 어쨌든 저희가 남북관계 또 북미관계 전망을 계속해보고 있습니다마는 앞서 이산가족 상봉장에서 북측에서 진행요원을 보장성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고 하는데 최근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굉장히 관심이 많고요. 심지어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도 관심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습니까? 예전이랑 비교했을 때 북한에서 남한에 대한 정보를 이 정도로 많이 접하고 있습니까?

[인터뷰]
아무래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만남이 있었고 그 만남을 북한에서 보도를 크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또 우리 남쪽에 대한 훈훈한 열풍을 가지고 있어서 보장성원들도 그렇고 또 거기서 봉사하는 아가씨들도 그렇고 좀 더 유하게, 좀 더 딱딱하지 않게 북한 말로는 뻣뻣하지 않게 대처하면서 좀 더 그렇게 잘... 보장성원이라고 표현하죠. 남성분들은 보장성원, 여성분들은 봉사원 처녀동무들.

[앵커]
어쨌든 지금 북한에 대한 제재가 계속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물꼬를 터야 되는 이런 어려움이 있는 이런 상황인데요. 지금 개성공단 내 남북 연락사무소 개소를 추진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과 미국 간에 아주 살짝 미묘한 온도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기자]
사실은 일부 언론이 그렇게 보는데 저는 그 반대로 보는데 왜냐하면 작년 7월에 UN안보리 결의안 2375호 항목이 영문으로 된 게 있어요. 영문으로 된 게 있는데 27항에 보면 외교 관련 시설물은 예외로 한다고 돼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한 인식을 우리 정부는 그 부분을 준용을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일부 언론 보도나 미국 관계자들은 이 부분에 대한 것을 마치 대북제재의 틈새가 생기는 것처럼 이렇게 보도를 하고 있거든요.

[앵커]
예외로 봐서 제재의 위반이 아닐 수 있다?

[기자]
그렇게 우리 정부는 인식을 하는 거고요. 그래서 차이가 있는 거고 그래서 사실은 이 부분에 남북연락사무소에 대해서 아직까지 미국 관계당국의 공식 언급이 나온 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께서 8.15 경축사에서 상호 연락부로 발전하게 될이라는 표현을 했어요.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니셔티브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미국이 쿠바, 베트남 이런 전쟁을 같이 했던 국가들과 적대관계를 해소하는 초기 단계가 이 모델이었거든요. 우리도 역시 이런 모델로 해서 나중에 이익대표부라든가 결국은 종국적으로는 수교관계까지 가서 결국은 남과 북이 통일로 가는 디딤돌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앵커]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 질문 하나만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사진이 너무 예뻐서 준비를 했는데 북한에서 지금 백두산 야영이 처음으로 외국인에게 허용이 된 것 같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데요. 트래킹하면서 텐트도 치고 캠핑을 하는 이런 상품이 나오고 외국인이 할 수 있게 이렇게 허용이 된 거예요.

[인터뷰]
이번에 허용이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저기에서 텐트 치고 저기서 야영하는 걸 혁명의 성산이기 때문에 허용을 안 해 줬습니다, 관람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런데 이번에 아마 우리 문재인 대통령님도 아마 백두대간을 트래킹하면서 가고 싶다, 훈풍이 좀 부니까. 또 북한에서도 백두산을 기점으로 해서 원산이라든지 많은 관광지에 외국인들을 끌어들이려는 그런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 먼저 시발로 저걸 허용해 주지 않았을까.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앵커]
김열수 교수님, 그런데 북한이 이렇게 관광산업 육성에 요즘에 굉장히 공을 들이고는 있는데 이게 대북제재가 완화되지 않으면 앞으로 활성화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한계는 분명히 있죠. 그것은 제가 볼 때는 김정은 위원장도 충분히 이 부분에 대해서 인식을 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께서는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의 관계 진전이라고 하는 것이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데요. 비핵화 문제는 비핵화 다음에 그다음에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말이 그 속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이 돼야 모든 것이 풀린다라고 하는 것을 아마 북한도 충분히 인식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앵커]
북한이 이번에 폼페이오 방문할 때 어떤 비핵화 조치를 내놓을지 이거 굉장히 주목해서 봐야겠군요.

[인터뷰]
맞습니다.

[앵커]
세 분 얘기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송지영 전 북한 방송원 그리고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세 분과 함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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