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걸 “50년 지기 노회찬, 자기검열 칼날 같던 사람... 정치가 생명 앗아갔다”

이종걸 “50년 지기 노회찬, 자기검열 칼날 같던 사람... 정치가 생명 앗아갔다”

2018.07.23. 오후 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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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50년 지기 노회찬, 자기검열 칼날 같던 사람... 정치가 생명 앗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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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걸 “50년 지기 노회찬, 자기검열 칼날 같던 사람... 정치가 생명 앗아갔다”

-정치가 노회찬 의원 생명을 앗아갔다
-50년 지기 친구, 유신 시대 그가 만든 것에 따라갔던 행복한 시간
-자기에게는 칼날 같은 검열, 타인에게는 한없이 넓은 폭의 사랑
-권력 놀이 정치가 본인 괴롭혀
-당 대표 되면 공천권의 권력에 멀리하겠다, 대통령 평화 프로세스 문 활짝 여는 뒷받침
-이해찬 출마하지 않을 줄 알았다
-이해찬 나섰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 많이 떨어져... 반전 상황 국민들에게 연출할 수 있기를
-문재인 당 대표 시절 당무 거부? 부인하지 않아... 당을 위한 진정성이었다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8년 7월 23일 (월요일)
■ 대담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더불어민주당 당권 경쟁이 본격화됐습니다. 총 8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는데요. 오는 26일 치러질 컷오프 경선이 치열한 경쟁으로 펼쳐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차기 당권 경쟁에 나선 8명 중에 한 분 ‘비문 대표주자’ 이종걸 의원 연결해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하 이종걸)> 네, 안녕하세요.

◇ 이동형> 우선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오늘 아침 노회찬 의원의 비보, 의원님도 많이 놀라셨겠습니다.

◆ 이종걸> 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치가 우리 노회찬 의원의 생명을 앗아간 결과가 됐습니다.

◇ 이동형> 의원님은 또 경기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하시죠.

◆ 이종걸> 네, 그렇습니다. 화동 경기 고등학교에서 교정에서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 한 50년 지기로 지내왔습니다.

◇ 이동형>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어렸던 시절, 함께 꾸었던 꿈은 내 몫으로 남겨졌다 부디 평안하기를, 이렇게 SNS에 글을 올리기도 하셨는데요. SNS 글 보면, 노회찬 의원이랑 고등학교 때 같이 시위도 나서서 함석현 선생 만나러 가는 얘기도 썼더라고요. 다른 분들보다 더 슬프실 것 같은데, 학창시절 노 의원 어땠는지 말씀 좀 해주십시오.

◆ 이종걸> 엄격히 얘기하면 같이 한 것이 아니라, 노회찬 친구가 주도하고, 만든 것에 제가 따라갔던 친구였기 때문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유신 시대였죠. 본인이 다 기획하고 한 것에 대해 함께 했던 기억에서 당당하고, 어린 소년 시절에도 지금 보이는 모습들이 남아있었습니다.

◇ 이동형> 노회찬 의원은 저희 방송에서도 인터뷰했습니다만, 특활비 3,000만 원도 반납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분인데, 그러니까 의원이 아닌 시절에 4,000만 원 정도 유서에 보면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의원이 아닌 경우에는 이렇게 원외의 인사인 경우에 합법적으로 돈을 정치자금으로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어렵나요? 어떻게 됩니까?

◆ 이종걸> 그때 당시는 16년 3월이었으니까요. 창원에 내려가서 아마 선거를 할 때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선거의 위원장 경우에는 선거 후원금만 받도록 되어 있는데요. 그게 아마 일반 의원들보다 훨씬 엄격한 요건이고, 빡빡한 절차가 진행됩니다. 정말 노 의원이 이 일에 대해서 저는 더 풀어 달라, 이런 얘기를 하시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 엄격한 자기 성찰과 자기 검열에서 자라온 50년의 생이었습니다. 본인은 정말로 자기에게는 칼날 같은 검열을 했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습니다.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든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폭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볼 때는 본인은 권력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그런 정치적 속서에 대해서 미숙했고, 하지 않으려고 했고요. 또 미숙한 것에 대해서 그렇게 스스로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정의의 중심에 서려고 했던 노회찬 친구였기 때문에, 어찌 보면 권력 놀이라고도 볼 수 있는 정치가 본인을 괴롭혔다고도 볼 수 있고, 힘들었다고 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정의의 중심으로 서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겨내려고 했던 본인의 마음을 저는 이해합니다.

◇ 이동형> 네, 의원님도 친구분의 비보에 힘들 테니까 노 의원 얘기는 여기까지만 질문하고요. 다른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6일이 예비경선인데요. 공식적으로 출마 선언 하신 겁니까?

◆ 이종걸> 네, 그렇게 했습니다.

◇ 이동형> 그러면 출마의 변을 한번 들어볼까요?

◆ 이종걸> 항간에는 2년 남짓 시간이 지나면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대표다, 라고 해서 몰린다고 하지만, 공천권은 완전히 객관적인 위원회, 국민 공천 시스템으로 해서 공천을 하나의 권력으로 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합니다. 이번에 지방선거에서 성공했던 것도 저는 공천이 그런 공정성 속에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많은 교훈을 얻어서 공천의 권력,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멀리하겠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 당이 유례없는 대통령 지지와 대통령의 평화의 문을 연 평화 프로세스를 주관하는 여당으로 돼서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당의 입장에서 위기도 있을 것이고, 또 힘든 과정이 있을 것인데요. 그것을 정치적으로 풀어나가는, 그동안 남북문제에 대해서 종북이니, 또는 적대관계니, 냉전 체제 속에서 있었던 여러 어려운 요소들을 정치적으로 당이 유능하게 풀어나감으로써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의 문을 더 활짝 열어젖힐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뒷받침하고 이겨내는 일을 대표로서 하고 싶은 생각이고요. 다만, 이 지지도나 이런 것들이 5년 내내 가겠습니까? 당의 흐름은 우리 정치의 영향을 받습니다. 정치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변화의 속성 속에 위기도 올 것입니다. 그때 한쪽에 몰리지 않은 균형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적임자로서 제가 평가를 국민들로부터, 당원으로부터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일을 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를 통해서 당 대표라는 과정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이동형> 의원님, 그런데 다른 분들보다 출마 선언이 조금 늦었는데, 고민의 시간이 깊었던 것 같습니다. 고민의 시간이 길었던 이유가 있습니까?

◆ 이종걸> 네, 짐작은 했습니다만, 17, 18, 19일이 주로 의원들께서 출마 선언을 할 때였는데요. 그런데 제가 지방을 돌고 있어서 일정을 빼기가 어려워서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해찬 선배께서 부정적으로 평가하다가 상당한 격변이 있지 않았습니까? 예도 있고, 이해찬 대표의 출마 선언 이후에 하는 것으로 시기를 정했습니다.

◇ 이동형> 이해찬 의원 얘기를 방금 하셨는데, 충격적이다, 이렇게 표현하시고, 나의 당선 가능성이 반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이해찬 의원, 나올지 예상 못 하신 거였습니까?

◆ 이종걸> 저는 만약에 출마를 할 것이었으면, 선거 기법 상으로도 그렇고, 전당대회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먼저 출마 선언을 하셔서 대세로 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했죠. 시간이 가면서 머뭇거리는 시간을 둔 것은 국민에게 고민하는 시간을 두고 출마를 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제가 생각을 했는데요. 예상외의 판단을 하셨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해찬 대표 때 제가 최고위원 당선돼서 한 두 달 간 최고위원으로 같이 지도부를 구성해서 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문재인 지금 대통령께서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가 되셔 가지고,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취지로 당 대표를 사퇴하고, 최고위원도 두 달 만에 사퇴했죠. 그래서 두 달짜리 지도부를 구성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하고자 했던 당 대표로서의 역할이나 이런 것이 지금 필생의 최종적인 신념, 당에 대한 공헌, 필생의 정치적 결정판을 이해찬 선배께서 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항간에 왜 가냐, 너무 오래되지 않았냐는 말씀도 있습니다만, 저는 이해찬 선배는 그런 비판에는 그렇게 많이 노출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나섰기 때문에 상당히 가능성이 많이 떨어졌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컷오프를 잘 통과해서 예외적인 상황, 또 반전된 상황을 당원들이 좋아하고, 국민들에게 연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저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잘 화합하면서 또 모시고 경쟁하면서 당의 축제 같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당 대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이동형> 그런데 의원님, 언론 보도나 이런 것을 보면, 이종걸 의원은 친문에게 선택을 못 받는다,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이종걸> 네, 저는 원내대표 할 때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에 당무 거부했다, 이런 이야기를 제가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때 저는 통합을 해서 당에 있는 이인자들을 다 모으고, 또 오히려 외부에 있는 것까지 확장을, 마치 DJ 대통령 때, JP까지 DJP 연합을 하던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외연을 확장해서 3자 싸움이 아니라, 2자 싸움으로 가야지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고요. 말하자면, 거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로서의 적격을 의심하는 사람도 없었고 저도 그랬습니다만, 그때 가장 당선 가능성이 있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고, 빼기, 뺄셈의 정치를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달리 했던 것인데요. 그것이 어떤 때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당무를 거부한 것으로 비치는데, 그런 진정성은 당을 위한 것이었고, 또 이번에 우리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셔서 여권이 됐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당은 그 이전의 야당으로서의 속성, 문제제기하고, 그것들을 비판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신선한 뜻을 전달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사리는 데 주목적을 보여주려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여당이 되어서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서 우리가 냉전을 극복하고, 만들어야 하는 우리의 역사적인 순간에 뭘 만들어야 하는지 여당으로서의 포지티브한 본 모습을 정의해서 우리 당이 조금 더 확대되고, 또 확대된 상태에서 더 적합성이 있는 개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국민들 앞에 저의 모습을 선보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 이동형> 의원님, 방금 이야기하신 진정성, 이 부분은 당원이나 대의원이 판단해줄 것 같고요. 어쨌든 26일에 있는 컷오프에서 살아남아야 본선으로 가는데,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 이종걸>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이종걸> 네, 고맙습니다.

◇ 이동형>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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