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총리 별세...'3김 시대' 역사속으로

김종필 전 총리 별세...'3김 시대' 역사속으로

2018.06.23. 오전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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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덕 / 前 한국일보 정치부장

[앵커]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우리 정치사에 남긴 의미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광덕 전 한국일보 정치부장과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김광덕 부장님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 취재를 가장 많이 한 기자로 들었는데요. 최근에도 만나보셨습니까?

[인터뷰]
네, 저는 옛날 90년대 중, 후반에 자민련을 만들었을 때 그리고 자민련 만들기 직전에 민자당에서 공화계를 이끌어가실 때 그때 4~5년 취재를 했고요. 그다음에 가끔 1년에 한 번씩 제가 찾아뵙고 그래서 작년까지 뵌 것 같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굉장히 4~5년 정도 취재하셨으면 옆에서 굉장히 많이 지켜보셨잖아요. 어떤 기억이 가장 많이 남으십니까?

[인터뷰]
일단 김종필 전 총리라고 해야죠. 전 총리는 영원한 2인자로서 많은 사람을 대통령을 만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2인자로 남았던... 그러면서도 굉장히 저는 산업화 세력과 우리 사회에서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일종의 브릿지 역할이라고 할까요, 가교 역할을 했고.

그러면서도 정작 본인은 대권을 못 잡았는데 쉽게 말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 5.16 쿠데타를 같이 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그다음에 김영삼 3당 합당을 통해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손을 잡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들었고.

그다음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DJP 연합을 통해서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수평적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 기여를 했는데 어쨌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굉장히 낭만적이고 로맨티스트였고 그다음에 한국 정치사에서 말을 가장 잘 만들어냈던, 정치사 고비고비하다 말을 만들어서 저도 그걸 보면서 인생과 정치에서 중요하다라는 그런 측면에서는 굉장히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앵커]
3명의 대통령을 만든 이른바 킹메이커 역할을 했는데 인간적으로 보면 굉장히 낭만적인 그런 부분이 있다 이런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어쨌든 이렇게 말씀을 하셨듯이 2인자 또 킹메이커 역할로는 많은 족적을 남겼는데 본인이 대권 도전을 하기는 했었잖아요. 그런데 대통령에 당선되지는 못했습니다.

[인터뷰]
네. 일단 본인은 당선이 안 됐는데 일단 1987년에도 대권에 도전했고. 그때는 1노3김이라고 해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당시 양김 또는 3김 분열로 인해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고 1997년에도 처음에는 도전을 했습니다만.

DJP단일화라는 걸 통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는데. 그때는 국민들이 볼 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죠. 민주화 세력의 최고봉에 있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종의 산업화 세력으로, 근대화 세력으로 했던 군부, 군인 출신의 김종필 전 총리와 손을 잡고 대권을 창출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습니다. 본인은 정작 대통령에 당선은 안 됐는데 그러면 왜 안 됐느냐. 그건 제가 보기에 때를 놓친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에 공화당의 일종의 지도자로 떠올라서 상당히 유력한 차기 대권으로 부상이 되었는데 당시 서울의 봄에서 신군부가 들어서지 않습니까? 신군부가 들어서면서 그런 것도 있고.

[앵커]
그때 부정축재로 지목이 되기도 했었고요. 정치적 굴곡이 있었죠.

[인터뷰]
그때 연금이 되고 나중에 여러 가지 왜 그럼 3김 중에서 양김은 됐는데 김종필 전 총리만 대통령이 안 됐느냐는 것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말하면 카리스마가 다른 양김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했기 때문에 자기 세력을 결집하는 데는 조금 약했던 것 같고요.

그다음에 그런 권력에 대한 의지 이런 측면에서도 조금 약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평소에 로맨티스트라고 할 정도로 약간의 책도 많이 읽고 이렇게 낭만적으로 그림도 그리고 했는데 또 하나 이런 얘기도 하는 사람도 일부 있습니다.

그것은 좀 인구 규모가 작은 영남이나 호남이 아니고 충청도 출신이기 때문에 2인자로 머무른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말한 정치적 세력도 있지만 그게 본질적 요인은 아니라고 봅니다.

[앵커]
어쨌든 충청권의 표심을 움직여서 2명의 대통령을 만들 때 기여를 한 그런 부분이 있기 때문에요.

[인터뷰]
결정적으로 기여를 한 거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될 때는 DJP 연합을 통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종의 외연확장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라고 했는데 어쨌든 당시 충청권의 표를 결집시켜서 모아주는 역할을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될 때도 어떻든 3당 합당을 통해서 나중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입니다만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을 당선시켰는데 나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하고 민자당에서 분리돼 가지고 나와서 자민련을 새로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때 제가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그때 김종필 전 총리가 떠난 걸 붙잡지 못한 걸 굉장히 후회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어쨌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이 되고 그다음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 진보 세력이 집권하게 된 토대를 마련해 준 거 아니겠습니까?

그후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됐고 또 오늘날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는 어떤 일종의 중간 디딤돌이 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인이 직접 붙잡고 않고 최형우, 자기의 측근, 요원을 보내서 설득을 하는데 그게 실패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내가 전면에 나서서 설득했어야 하는 아쉬움을 한 적이 있다는 걸 들었습니다.

[앵커]
그만큼 중요한 정치인이었던 거고요. 말씀해 주셨지만 3당 합당을 통해서 민자당을 만드는 주역이 되기도 했었고요. 그리고 또 DJP 연합을 이뤄서 대통령을 또 한 명 배출하는 일도 했고요.

나중에 역사에서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결단이 필요한 시기마다 뭔가 타협의 정치를 이뤄왔다, 이런 평가를 많이 받는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저는 김종필 전 총리를 평가할 때 공과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치인이라는 게 100% 다 좋지는 않고. 그런데 가장 한국 정치에 기여한 건 뭐냐 하면 비록 군인 출신이었지만 누구보다도 타협의 정치를 강조했던 사람이다.

특히 2인자이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사람들과 손을 잡고 저런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이렇게 하면서 마지막에 여야가 정면으로 부딪힐 때도 막판에는 타협을 이끌어내려고 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 그게 의회민주주의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에 상당히 기여를 했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앵커]
오늘 한국당에서도 논평이 나왔는데 보수가 이렇게 지금 무너진 상황에서 돌아가셔서 더 마음이 아프다, 논평이 나왔습니다. 지금 타협의 정치에 대한 평가를 해 주셨는데 보수권에서 새겨들어야 될 만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어떤 정치적 일정 이런 부분을 짚어주신다면요?

[인터뷰]
보수 정당에서 배워야 될 점은 뭐냐 하면 일단 타협의 정치라는 측면에서 한국당도 집권 여당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면서. 김종필 전 총리가 무조건 타협만 한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본인이 반대할 때는 확실히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김종필 전 총리가 몽니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몽니를 부릴 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일종의 대화와 함께 반대할 때는 반대하는 이런 걸 하는 게 있고요.

또 하나는 김종필 전 총리는 당시 3당 합당 때 공화계의 대표 역할을 했는데 일종에 계파의 경쟁과 갈등은 있었습니다만 근본적으로 계파 이익 때문에 당과 국가의 어떤 이익을 이렇게 완전히 제동을 거는, 발목을 거는 일은 잘 안 했어요.

그런 측면에서 한국당의 지금 계파 대립은 너무 계파 이익 때문에 오히려 당과 보수세력을 몰락시키고 망가뜨리는 정도로 자기 계파와 자기 이익만 찾아 가는 점에서는 그런 건 좀 김종필 전 총리가 남긴, 그런 계파 이익을 하더라도 더 오히려 중요한 걸 따져보는 이런 걸 배워야 될 점으로 봅니다.

[앵커]
타협의 정치에서 뭔가 좀 한국당이 새겨들을 부분이 있을 것이다. 조금 전에 저희 그래픽에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남겨놓은 어록들이 정리돼 있는 것들이 잠깐 보였었는데 다시 한 번 보여주시면 굉장히 많은 어록들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화면에 나오고 있습니다마는.

[인터뷰]
어록들이 말하면 끝이 없고요. 제 기억에 남는 건 저기에서는 일단 자의 반 타의 반이라고 하는 게 유명한데 뭐냐 하면 박정희 시절에는 같이 쿠데타를 통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들어냈습니다마는 굉장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인척 아니겠습니까? 본인의 처 삼촌, 부인인 박영옥 여사의 삼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요.

[앵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 사위고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야기로 하면 사촌 형부가 되는 거죠.

[인터뷰]
그러니까 김종필 전 총리로 볼 때는 처의 삼촌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종의 협력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챙기고 그런 사이였습니다마는 권력에서 나름대로 어떤 경쟁과 일종의 견제 그리고 이런 것들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외유를, 여러 가지 비리에 휘말렸다라는 게 있어서 외유를 가는 게 있었는데 결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외유를 보냈다라고 해야죠,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이 유명하고요. 그다음에 저기에 나오는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하는 이런 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을 추대하면서고요.

[앵커]
그 밑에 있는 역사는 끄집어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냥 배우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그때 나온 거죠?

[인터뷰]
이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할 때 역사라는 게 그렇게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걸 이야기한 거죠. 그리고 백날을 물어봐, 내가 어떻게 대답하나에서 당시 김대중 정부죠.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 여러 가지 갈등으로 인해서 회동 가능성을 물어봤을 때 대답을 안 하는데 김종필 전 총리가 최근에 어느 언론사와의 증언록에서 쓰지 않았습니까? 본인은 원래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앵커]
결국은 자서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인터뷰]
역사를 증명한다라고 해서 자서전이 됐는데 거기 부제이기도 한건데 소이부답이라는 말을 굉장히 즐겨써셨어요. 소이부답이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썼어요. 거기는 이백이 쓴 말이죠. 중국 당시에.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소이부답이라는 말을 쓰고.

또 하나는 국민을 호랑이처럼 생각해야 된다라는 말, 트루먼 전 대통령의 말을 많이 인용했어요. 국민을 호랑이처럼 생각하고 잘 굉장히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정치인이 사육사가 돼서 호랑이한테 잡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말도 많이 했고요.

[앵커]
몽니라는 표현도 김종필 전 총리가 처음 쓴 말이라면서요?

[인터뷰]
몽니라는 말이 원래 많이 흔하게 쓰지 않는 말인데 몽니라는 말을 굉장히 어떤 지역에서는 가끔 쓰지만 그걸 굉장히 유행시켰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당시 내각제를 추진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내각제가 무산위기에 처했을 때 내가 제대로 안 되면 몽니를 부릴 수 있다라고 해서 몽니라는 말을 했고요.

그다음에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있어요. 80년 서울의 봄 때 봄이 진짜 온 것 같지 않다는 말도 있고요. 그다음에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었는데 줄탁동기가 뭐냐 하면 병아리가 깨어나려면 어미 닭과 안에 병아리가 안팎에서 쪼아야 나온다, 이런 말도 쓰고 그랬습니다.

[앵커]
정말 많은 어록들을 남겼는데요. 지금 묘비명도 미리 써놨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
묘비명을 부인 박영옥 여사가 2015년에 돌아가셨죠. 그때 돌아가신 이후에 묘비명을 미리 썼는데 원래 전 국무총리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데 본인은 국립묘지에 가지 않고 마누라와 같은 자리에 누워야겠다, 이런 표현을 썼어요.

그러면서 묘비명도 미리 써가지고 지금 이미 다 비석까지 만들어놨어요. 그래서 거기에 보면 이런 말이 써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보면 아마 아흔 살에 그걸 쓴 모양이에요. 지금 올해 92세로 돌아가셨는데 아흔이 돼서 되돌아보니 여든 아홉이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되었네라는 말이 거기 있고요.

그리고 사무사를 내가 일생 도리로 알고 살아왔다고 하면서 사무사라는 게 뭐냐 하면 올바르지 않은 것을 버리고 올바르게 생각하는 것, 이런 것을 인생... 이런 말을 했고 또 하나는 무항산 무항심이라는 말이 있어요.

생산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 이것인데 맹자에 나오는 얘기인데 거기에도 묘비명이 나옵니다. 이건 최근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최근에 청소년이 본인한테 애칭을 쓰면서 이렇게 하니까 한마디 해 주고 싶다고 하면서 생계를 챙긴 이후에야 혁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하고 좀 어찌 보면 비슷한 그런 얘기죠.

[앵커]
서예도 좋아하고 그림도 좋아하고 책도 많이 읽다 보니까 여러 가지 어록들도 많이 남겼는데 어쨌든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이어서 김종필 전 총리까지 3김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데, 이런 정치인이 앞으로 또 나올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사실 듭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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