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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주환의 안보이야기-15] 지정학의 복수(Revenge of Geopolitics)
    [김주환의 안보이야기-15] 지정학의 복수(Revenge of Geopolitics)
    “우리가 뼈저리게 느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한반도의 문제인데도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해결할 힘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 합의를 끌어낼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7월 11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한 말이다. 다자 외교의 데뷔라고 할 수 있는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슬프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필자가 과거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 중국 학자가 한 말이 다시 생각한다.

    미국은 정력(精力)이 없고,
    중국은 동기(動機)가 없고,
    한국은 능력(能力)이 없고,
    북한은 신뢰(信賴)가 없다.

    한 마디로 동상각몽(同牀各夢)이다.

    이들 국가가 바라는 진실, 이면에는 사실 다음과 같은 전제가 깔려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북한의 변화(핵과 대남적화 전력 포기)를 바라고,
    북한은 미국의 변화(평화협정 체결)를 촉구하고,
    미국은 중국의 변화(대북 전면 압박)를 원하며,
    중국은 한국의 변화(친미 노선 탈피)를 기다린다.

    이렇게 큰 명제가 어찌 보면 균형점을 이루는 것은 중국의 부상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 7월 11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이른바 중국 책임론에 대해 중국 외교부 겅솽(耿爽)대변인은 “다른 사람의 일을 지휘하려만 하고 자신은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甩手掌柜· 솔수장궤), 목적을 이룬 뒤 도와준 사람의 은혜를 모른 척 해서도 안 되며(過河拆橋· 과하탁교), 등 뒤에서 칼을 찔러서도 안 된다(背後捅刀· 배후통도)”며 3가지의 사자성어를 소개하며 중국 책임론에 강하게 반박했다.

    중국의 이런 자신감 있는 태도는 바로 중국의 급부상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해양과 대륙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지정학의 귀환(Return of Geopolitics)’이라고 한다. 과거 소련이 유라시아의 대륙세력이었다면 지금은 중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유라시아 대륙 지배와 대외팽창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이 서방세계의 기본 인식이다.

    서방은 중국이 해권(海權)을 증강시키고 있는 것을 지난 19세기 말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의 이른바 세계정책과 닮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황제는 해군력 증강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그 임무를 티르피츠 해군 제독에게 일임했다. 1897년 해군 장관으로 임명된 티르피츠는 해군법 제정을 등에 업고 독일의 해군력 증강에 매진했다. 덕분에 육군 국가였던 독일은 이제 해외식민지 개척에 필요한 대양함대(High Seas Fleet)까지 보유하게 됐다. 이러한 독일의 동향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전통적 해군 국가였던 영국이었다. 독일에 맞서 영국도 해군 예산을 대폭 증액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06년 영국은 당대의 최신예 전함인 드레드노트함을 진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응해 신흥 산업국가 독일도 신형 전함을 건조함으로써 양국은 1914년 대전 발발 때까지 일명 ‘건함 경쟁’이라 불린 해군력 증강정책을 추진했다. 그리고 이는 마침내 1916년 5월 31일 벌어진 유틀란트 해전으로 그 정점을 찍게 됐다.

    이렇듯, 중국의 의도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 영향권 구축, 나아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해양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 주도로 아시아 동맹국과 동반자국을 활용하여, 일본-(필리핀)-베트남-싱가포르-호주-인도 등을 연결하는 해양 차단막을 설치하려 하고 있다.

    로버르 카플란은 이를 ‘지정학의 복수(Revenge of Geopolitics)’로 명명하고 있다.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또는 강대국간 세력권 주장이 충돌하는 국가(지역), ▲지정학적으로 중간적 위치로 인해 사건 발생 시 주변에 대한 파장이 높은 국가(지역), ▲내부의 소수민족, 종교분쟁, 민족국가의 미완성 등으로 안정성이 낮은 국가(지역) 등을 ‘파쇄지대(shatter zone)’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의 충격이 반향되어 가장 약한 지대를 파쇄시킬 것이라는 개념이다. 눈에 띄는 점은 그가 한반도를 가장 대표적인 파쇄지역이라고 지목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였을까? 문재인 대통령 역시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6·25 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진단하지 않았는가?

    사실, 어찌보면 한반도는 커다란 세력들의 충돌지점이자 완충지대였는지도 모른다. 과거부터 대륙세력은 지금의 북한이 아닌 한반도 전체를 비유해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인식했다. 그 역사적 궤적을 살펴보자. 우리는 임진왜란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만력(萬曆)의 역(逆)’이라고 한다. 서기 1592년 왜군이 서울을 유린하고 평양을 점령하자 다급해진 명나라는 파병을 결정한다. 파병소식을 조선에 알린 사신 쉐판(薛藩)은 황제 만력제에게 장계를 보낸다.

    “돌아보건대 안타깝게 여겨야 할 상황은 조선에 문제가 있지 않고 우리 나라의 강역에 있다는 점이며 어리석은 제가 깊이 염려하는 바는 강역에만 그치지 않고 내지(內地)까지 진동할까 하는 점입니다. 그러니 군사를 징발하는 것을 한 순간인들 늦출 수 있겠습니까. 대저 요진(遼鎭)은 경사(京師)의 팔과 같으며 조선은 요진의 울타리와 같습니다. (…) 200년 동안 복건성(福建省)과 절강성(浙江省)이 항상 왜적의 화를 당하면서도 요양과 천진에까지 이르지 않았던 것은 어찌 조선이 울타리처럼 막아주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출처: 선조수정실록)

    당시 명나라 요양(遼陽)의 부총병(副總兵) 쭈청순(祖承訓) 역시 “우리는 조그만 이웃 나라를 반드시 도울 것이다. 중국과 조선은 입술과 이처럼 친밀한(脣亡齒寒)관계이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를 폈다. 그로부터 300년 후인 청일 전쟁기 이 순망치한의 논리는 다시 조선 문제에 그대로 대입된다. 당시 중국 외교를 총괄하던 리홍장의 일관된 논리였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일본과의 분쟁을 우려하여 강경파 대원군을 잡아갔던 중국은 갑신정변이 터지자 부랴부랴 대원군을 돌려보낸다. 이제 대원군을 이용해 친일파들을 견제하려 한 것이다. 중국에게 중요한 건 대원군이나 고종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조선이라는 지정학적 가치였다.

    그리고 50년 후인 1950년 10월 초. 미군이 중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38선을 넘어서자 베이징에서는 일련의 정치국 회의가 열린다. 회의에서는 파병을 둘러싸고 격론이 오간다. 린뺘오를 비롯한 다수가 파병을 반대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불과 1년 전 신중국이 건립된 마당에 무슨 파병이냐고. 내부 통합과 건설이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결정적 키를 쥔 마오쩌둥은 파병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논리가 바로 순망치한이었다. 지난 1994년 6월.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 가능성이 높아지던 무렵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인 최광은 중국으로 달려가 장쩌민을 만난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장쩌민은 순망치한이란 단어를 끄집어내며 최광을 안심시킨다.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었다.

    과거 중국에게 있어 순망치한이라는 영역은 한반도 전체였지만, 지금은 북한 지역이다. 중국은 북한이 중국의 핵심이익 지역인 베이징을 보호하는 만주와 보하이만을 지켜주는 ‘참호’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국이 생각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레드 라인’인 셈이다.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주환[kim21@ytn.co.kr]

    [김주환의 안보이야기-15] 지정학의 복수(Revenge of Geopolit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