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잔혹사'...전 정권에서는?

'총리 잔혹사'...전 정권에서는?

2017.05.29. 오전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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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과 임명 동의안 처리 문제가 정국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새 정부 첫 총리 인선이라 이 결과에 향후 국정 운영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 정권은 어땠을까요? 국무총리 내정자는 모두 7명 있었습니다. 각각 제기된 의혹들과 청문회 과정을 돌아보겠습니다.

박근혜 정부 첫 총리 내정자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이었는데요. 두 아들 모두 병역이 면제된 것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김용준 / 국무총리 후보자]
(아들 병역비리 의혹이 있는데 할말 없으신가요?)
"허허허…"

(아들 군 면제에 문제는 없다고 보십니까?)
"…"

결국 인사 청문회 전에 사퇴했습니다. 이후 정홍원 전 국무총리가 내정됐고, 청문회에 들어갔는데요.

정홍원 전 총리도 전관예우와 아들 병역문제로 난타를 당했습니다. 특히 요즘 문제가 되는 위장전입 논란이 있었지요.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 인정하며 억울하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당시 상황 들어보시지요.

[신동우 / 당시 새누리당 의원]
"가족들은 부산으로 이전을 하고 (서울의) 누님 댁으로 주소지를 이전해놨네요. 좀 설명을 드릴까요? 그거 하실 때 죄의식을 느끼셨습니까? 그 당시는 저는 죄송하지만 그때 옮겨야 하는데 법인데 못 해서 법은 위반하지만 조금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왜그러냐면 그 당시 제가 집이 없어서 분양을 주택 청약 예금을 들어뒀습니다. 그런데 이게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면 무효가 되게 되어있어요."

세월호 참사 직후 총리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 등의 의혹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해서 정홍원 전 총리가 직을 이어가기도 했지요.

다음 후보는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로 총리로 내정됐지만, 역사관과 친일 논란 등이 문제가 돼 청문회 전에 사퇴했습니다.

결국, 정치인 출신인 이완구 전 총리가 인사청문회에 나서게 됩니다. 이 전 총리도 역시 병역 면제 논란, 언론사 압박 논란 등이 있었는데요. 논란에 대해 사과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 결국 청문회를 통과하게 됩니다.

[진선미 /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행정고시를 붙었으면 그 조그만 시골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얼마나 두려운 권력입니까? 그런 분이 군청에서 일하시면서 신체검사를 받으십니다. 그것도 재검을 통해서.]

[이완구 /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분명한 것은 제 다리에 문제가 있어서 60이 되는 그 나이까지도 같은 부위의 X-ray를 찍어서 고생하는 이 입장을 이해해주시길 부탁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완구 전 총리도 성완종 사건에 연루돼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며 총리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게 됩니다. 63일 만에 퇴임한 최단기 총리가 됐습니다.

이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 황교안 전 국무총리인데요. 황 전 총리도 내정자 시절 병역 면제 논란, 전관예우 논란 등이 제기됐었습니다.

[황교안 / 당시 국무총리 후보자: 제가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국 복무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늘 국가와 국민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어떤 혜택을 받거나 특혜를 받고 병역 면제를 받은 것이 아니냐 걱정을 하시는 것으로 제가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신검을 받을 때 그때는 저희가 굉장히 어려운 집안이었고 아무런 배경이 없는 집안입니다.]

여기에 '최순실 게이트' 여파 속에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여야의 공방 속에서 인사청문회도 해보지 못한 채 낙마한 김병준 후보자까지 더 하면 지난 정권에서 모두 7명의 총리 내정자가 있었지만, 단 3명만 총리직을 수행한 셈인데요.

과연 새 정부 첫 총리 후보인 이낙연 후보자는 이 난국을 뚫을 수 있을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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