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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파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인물파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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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당 대선 경선에서 안풍(安風)은 거셌습니다.

    국민의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 후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62년 2월생, 올해 만 55세로 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한 안철수연구소, 지금의 안랩의 창립자죠.

    안철수 후보의 첫 직업은 의사였지만 사실 어린 시절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초등학교 성적표에 '수'가 보인 게 이름 철수의 '수'뿐이다" 이런 농담을 할 정도로 평범하고 내성적인 학생이었지만 책을 무척 좋아했다고 합니다.

    성적은 고등학교 때부터 올랐습니다.

    부산 중앙중과 부산고를 나와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가고자 했던 공대 대신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의대생 안철수의 가슴을 뛰게 한 또 다른 물건, 바로 컴퓨터였습니다.

    친구의 애플컴퓨터로 컴퓨터를 독학으로 익히더니,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낮에는 의사로 일하고 새벽 3시부터 6시까지는 컴퓨터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잠이 턱없이 부족했겠죠?

    그래도 컴퓨터로 느끼는 성취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입대 전날 밤까지도 컴퓨터에서 손을 떼지 않았던 안 후보는 결국 군의관 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나온 직후 의사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1995년 안철수연구소, 지금의 안랩을 설립했습니다.

    처음엔 한 달만 이라도 직원들 월급 걱정을 안 하는 것이 소원이었을 정도로 어려웠다는데요.

    하지만 컴퓨터가 대중화되면서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두 번째로 연 매출 100억 원을 돌파할 정도로 승승장구했고, CEO 안철수로 입지를 굳혔습니다.

    CEO에서 물러나 교육자로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을 맡았을 때,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것이 큰 주목을 받게 됐습니다.

    젊은이들의 '멘토'로 떠올랐던 안철수 후보, 이때부터 정치권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50% 가까운 지지율을 넘나들며 유력 후보로 이름이 거론됩니다.

    이때 '안철수 신드롬', '안풍(安風)'같은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죠.

    하지만 지지율 5%였던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조건도 없이 후보를 양보했습니다.

    안풍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거세진 안풍을 타고, 이듬해인 2012년 새정치를 앞세우며 대선 출마 선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 협상에 실패했고, "싸우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후보직을 사퇴하고 물러났죠.

    이렇게 정치 일선에서 물러선 듯하던 안 후보는 2013년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로 돌아온 후 국민의당 창당과 함께 '다당 구도'라는 정치 변화를 이끌며 강철수로 변신했습니다.

    이제 안철수의 시간이 왔다며 다시는 양보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당 대통령 후보 안철수 후보.

    또다시 돌풍이 불어와 안 후보의 꿈이 이뤄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