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의 안보이야기-13] 동북아시아의 화약고-평안북도 동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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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7. 오후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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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환의 안보이야기-13]  동북아시아의 화약고-평안북도 동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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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라는 곳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17년 3월 6일 오전 7시 20분 쯤. 평안북도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인근에서 이동식발사차량(TEL) 4대가 한미 정보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됐다. 한미 군 당국은 정찰위성과 무인기(UAV) 등 감시전력을 총동원해 초를 다투며 TEL의 이동 경로와 배치 형태 등 관련 동향을 밀착 감시했다. 같은 시각 동해에 배치된 세종대왕함(이지스함)과 육상 기지의 장거리레이더(그린파인)도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10여 분 뒤인 오전 7시 34분경부터 TEL에서 약 10분 동안 4발의 탄도미사일이 순차적으로 발사되자 군 당국의 추적 작전이 시작됐다. 첫 발사 2분 뒤인 오전 7시 36분 쯤 세종대왕함의 탐지 레이더와 그린파인 레이더에 미사일들의 비행 궤도가 최초 포착됐다.

동창리는 지난 2012년 4월 13일 오전 7시 39분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광명성 3호’를 발사했던 곳이다. 필자는 당시 발사 8분 만에 이 소식을 가장 먼저 보도하는 특종을 한 경험이 있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기지가 있는 ‘평안북도 철산군’이다. 사실, 이곳은 17세기 초부터 동북아 국제정치의 중심지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서기 1618년, (나중에 청나라가 되는) 후금이 본격적으로 명나라에 대한 공세를 취하자 임진왜란의 생채기가 채 가시지 않았던 조선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1619년 사르후 전투((薩爾滸戰鬪)이후 요동에 거주하던 명나라 주민과 명의 패잔병들이 조선으로 흘러 들어왔다. 이들을 요민(遼民:명의 난민, 요동에서 왔으므로 붙인 명칭)이라고 불렀다. 1621년 명나라 조정이 파악하고 있는 숫자만도 2만 명이었고 이듬해에는 10만 명에 이르렀다. 1621년 3월, 후금이 심양 등지를 점령하자 요동 지방을 지키고 있던 명나라 장수 모문룡(毛文龍, 1576~1629)은 명 주민들과 남은 병력을 데리고 조선의 영토인 압록강변의 진강(鎭江: 오늘날의 단둥 부근)까지 후퇴했다.

당시, 조선의 군주 광해군은 모문룡으로 인해 조선이 병화를 입을 수 있음을 크게 우려했다. 1621년 12월(광해군 13년) 후금의 아민(阿敏)은 모문룡을 제거하기 위해 5천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왔다. 이 기습으로 요민 수백 명이 숨졌지만 모문룡은 용천 관아에 있다가 조선인 복장으로 갈아입고 간신히 탈출했다. 이듬해인 1622년 11월, 모문룡은 광해군의 권유에 따라 평안도 철산 앞 바다에 있는 섬인 가도(假島)로 들어갔다.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대 인접에 있는 가도는 고려가 몽고 침략을 받았을 때 서북면 병마영이 설치될 정도로 일찍이 동북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후금의 처지에서는 자신들의 턱밑을 겨냥하고 있던 명나라의 모문룡을 제거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이것이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으로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동아시아의 신흥 강대국으로 떠오르고 있었던 후금과, 국운이 쇠잔해지고 있었던 명나라 사이에 끼어 마치 넛 크래커(nut-cracker)속의 호두 같은 존재였던 조선은 자주적인 대외 정책을 펼칠 수 없었다. 슬픈 역사였지만 그것이 17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의 정세였고, 영화 활의 시대적 배경이 되기도 했다.

조선의 비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인조가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의 굴욕적인 항복 의식을 거행한 이후 청나라는 1637년 그때까지도 가도에 남아있던 명나라의 패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조선에 수군 파병을 요청했고, 조선은 병선 백여 척과 임경업 장군 등을 중심으로 하는 수군 3천여 명을 징발했다. 15년 동안 청의 서진(西進)을 가로막았던 가도의 명나라 패잔병들은 그렇게 소탕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단순히 명나라의 군진(軍鎭) 하나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조선과 명, 그리고 후금이 뒤얽혀 있던 동아시아의 기존 질서가 무너진 것을 의미했다.

한민족의 비애가 서려있던 그 평안도 철산군의 슬픈 망령이 다시금 21세기 동북아 정세를 뒤집으려고 하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라는 현실로 되살아나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정치선임데스크 김주환 [kim21@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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