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피해 도망치던 피난민 얼굴 생생"

"북한군 피해 도망치던 피난민 얼굴 생생"

2016.07.27. 오후 9:46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앵커]
오늘(27일)은 6·25 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3주년 되는 날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잊지 말자는 정부 기념식이 열렸는데, 한국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한 참전용사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김평정 기자입니다.

[기자]
1950년 9월 15일 새벽, 6·25 전쟁의 전세를 뒤엎은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이 감행됩니다.

북한 전역을 수복할 것 같았던 기세는 그러나, 중공군 개입으로 한풀 꺾이고, 정전협정이 맺어지고 나서야 3년간의 포성은 겨우 멈췄습니다.

미 해병대 예비역 대령인 워런 위드한 씨는 19살의 나이로 6·25 전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한국 땅을 밟은 지 이틀 만에 북한군과 싸웠고, 한 달 뒤 인천 상륙작전에 투입됐습니다.

[워런 위드한 / 6·25 참전용사 : (인천은)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크고 포탄이 쏟아지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전에 성공했습니다.]

미군 전쟁사에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장진호 전투에선 수많은 동료가 눈앞에서 스러지는 걸 지켜봐야 했습니다.

[워런 위드한 / 6·25 참전용사 : 많은 전우가 사망했고, 팔·다리 등을 다친 것을 생각하면 매우 슬픕니다.]

1952년 12월, 미국으로 귀환한 위드한 씨는 본국에서 정전협정 체결 소식을 들었습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 폐허를 딛고 일어선 한국을 보면 만감이 교차합니다.

[워런 위드한 / 6·25 참전용사 : 북한군을 피해 도망가는 피난민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니 한국인과 이 나라를 구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위드한 씨는 장진호 주변에 묻혔을 전우의 유해를 찾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며 남북 화해를 염원했습니다.

YTN 김평정입니다.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