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만 3번!' 하지만 인정 안 해주는 내 나라

'군대만 3번!' 하지만 인정 안 해주는 내 나라

2016.07.23. 오전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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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군대만 3번, 남성분들이라면 상상도 어려운 말일 겁니다.

6.25 전쟁 노무자처럼 군번도 없이 전쟁터에 뛰어든 민간인 참전자들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여러 차례 징집되지만, 역시 증거가 없어 참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쟁 때 2번을 포함해 9년 동안 군대만 3번 다녀온 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박조은 기자가 전합니다.

[기자]
강원도 춘천시의 한 마을. 좁은 골목길 끝에 유난히 눈에 띄는 집 하나가 있습니다.

오늘 신문고의 주인공, 조두표 할아버지입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난 해.

할아버지는 고향 함경도를 떠나 목숨을 건 피난길에 올랐고, 그 길에 인천 부두에서 노무자를 모집한단 광고를 보았습니다.

[조두표 / 6·25 참전용사 : 거기 가서 근무한다고 했거든? 그런데 거기 가니까 집도 업고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허허벌판이죠!]

그곳에서 다시 미군 트럭에 태워져 도착한 곳은, 지금의 경기도 연천, 미1기갑사단 보병 대대였습니다.

할아버지를 포함해 50여 명 노무자에게 주어진 일은, 중공군의 눈을 피해 전장인 고지대로 각종 전쟁 물자를 운반하는 것이었습니다.

[조두표 / 6·25 참전용사 : 탄환 박격포 폭탄 또 가시 철망, 그리고 아침에 올라갈 적엔 거기서 또 밑에서 밥 해준 것도 가지고 올라가는데 6월에 비도 줄줄 오는데 그걸 메고 올라가니까 참 뒤는 뜨겁고 땀은 나고 그런 고생을 했어요.]

그때쯤, 알게 됐습니다.

전쟁터 한복판에서 군인들과 같이 목숨을 걸고 일했어도, 노무자였던 할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했다는 걸 증명할 '군번'이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6.25 전쟁 정전 60주년이 되던 지난 2013년, 미국 시민권자인 조두표 할아버지가 받은 표창 장입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걸 기억합니다. 미국 정부, 그리고 한미 양국 모두 영원히 당신에게 감사할 것입니다."

표창장을 준 사람은 '척 헤이글', 당시 미 국방부 장관입니다.

그런데 내 나라 대한민국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조두표 할아버지가 2014년 한국에 돌아와 국방부에 참전 사실을 인정해 달라고 신청한 것은 모두 4차례.

하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증거가 없다는 겁니다.

우선, 군인이 아닌 노무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군번이나 병적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한을생 / 조두표 할아버지 부인 : 우리 영감은 거기 가서 고생도 하고 했는데도 안 되니까 인정을 안 해주니까 군번 없다는 것으로 인해서 인정을 안 해주니까 너무 억울하죠. 억울하고 답답하고.]

증거를 찾는 것은 오롯이 할아버지의 책임이었습니다.

정부가 조두표 할아버지에게 요구한 것은 '인우보증인',

[조두표 / 6·25 참전용사 : 거기 내가 아는 사람은 경위 하나, 그 밑에 경사 둘. 우리 대원들인데 30명이요. 4년 동안 같이 근무했어요. 그 사람들 찾기 위해서 내가 돌린 거예요. 내가. (사람 찾기 엄청 어렵죠?) 어렵죠. 군번 있으면 금방 찾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읽어 보고 우리 해당하는 것 아니라고 해서 가버리면 끝나요.]

미 1기갑사단에 함께 있었던 예비역 군인, 밥 존슨 씨를 만나 서명까지 받아왔지만, 정부는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한을생 / 조두표 할아버지 부인 : 그러니까 영감이 너무 안됐어요. 불쌍해요. 너무 애쓰는 것 같아서. 그래서 내가 그만 두라고. 그만 두라는 소리도 너무 애쓰는 것 보니까 마음 아파서 몇 번 말했어요. 그래도 자기 끝까지 너무 억울하다고 끝까지 한다고 이렇게 하는 거잖아요.]

YTN 박조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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