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북한과 군사안보 협력 단절..의미는?

우간다, 북한과 군사안보 협력 단절..의미는?

2016.05.30. 오후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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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무, 한국국방연구원 위원 / 김주환, YTN 정치 안보 전문기자

[앵커]
30년 넘게 북한과 이른바 절친 국가로 지내왔던 아프리카의 우간다가 북한과의 군사교류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강화되는 가운데 북한의 전통적 우방들도 등을 돌리고 있어서 북한의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자리에 한국국방연구원 김진무 박사 그리고 YTN 김주환 정치안보 전문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인터뷰]
안녕하세요?

[앵커]
우간다라는 국가는 사실 북한의 동아프리카 거점국가라고 불리지 않았습니까? 절친국가라고도 불렸는데 이번에 북한과 군사안보 분야에서 협력을 중단하겠다 밝혔어요. 상당히 이례적인 일 아닌가요?

[기자]
지금 무세베니 대통령이 1986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과거 평양을 3번을 가서 김일성과 세 차례 만났죠. 그거는 과거 얘기인데 이번에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우간다를 방문하기 직전 작년까지요.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 위원장이 2년 동안 3번이나 갔습니다. 우간다에 그만큼 공을 들여왔죠.

그것뿐만 아니라 군사외교뿐만 아니라 의사들도 파견돼 있는 걸로 알고 일설에서는 확인이 안 된 부분입니다마는. UN보고서 일부에서는 우간다나 탄자니아 일대에 북한이 운영하는 탄약 공장이 있다. 그리고 탄약공장이 있다는 거는 우간다 사람들이 근무를 하기 때문에 어떤 취업 효과도 있는 거고요. 이런 부분 때문에 굉장히 긴밀하게 했는데 어쨌든 무세베니 대통령이 북한과의 군사무기를 끊겠다는 거는 북한으로서는 아마 말은 못하지만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일 거라고 봅니다.

[앵커]
김진무 박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사실은 UN에서 총회가 열리면 북한 관련해서 최근에 인권 문제나 핵 문제 등 이제 안보리는 아무래도 한정된 이사국들이 하지만 UN 총회 차원에서 회의를 하면 꼭 북한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상당수가 나와요. 그 상당수가 사실은 아프리카 국가들입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 국가들을 그대로 북한 지지하도록 그냥 놔두고는 국제적으로 북한을 고립시키는 게 아무래도 제한이 있죠. 그러니까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께서 아프리카 국가에서 북한과의 관계 핵심 중의 핵심, 우간다를 일단 찾아가서 북한과 우간다 관계를 끊었다는 거는 앞으로 북한에 남아 있는 해외 네트워크가 차츰차츰 붕괴되면서 북한의 고립이 점점 심화될 게 아니겠느냐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앵커]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표대결을 할 때도 중요한 나라고요. 자원 보고로써 중요성도 굉장히 큰 나라가 아닙니까?

[기자]
그렇죠. 아프리카 대륙이 어느 정도냐면 중국이 아프리카에 대해서 굉장히 강한 자원외교를 하고 있는데 중국은 1950년대 말부터 비동맹 외교라고 해서 그 당시에 항상 해마다 당서열 2, 3위가 되는 인사가 해마다 신정 때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을 합니다. 그렇게 공을 들여 왔고요. 이 정도로 아프리카 국가들이 내전도 많지만 실제 자원으로 인해서 경제성장률이 굉장히 높은 나라입니다.

이번에도 우리 외교적 성과가 도로건설이라든가 이런 부분이 있었는데 사실 과거의 북한은 이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입각해서 반서구주의, 반제국주의해서 아프리카 국가들과 협력을 맺었는데 지금 탈냉전 이후에 많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아프리카 국가들과 경제 발전을 해야 되는데 북한이 사실 경제적 지원을 해 줄 게 하나도 없죠. 그런데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간다뿐만 아니라 지금은 케냐를 순방 중에 있죠?

그리고 과거에 서부 아프리카 강대국인 나이지리아 같은 경우에는 북한과의 말은 안 하지만 군사외교, 이 사람들이 왕래를 못하게 해서 이미 끊어진 겁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54개국 중에서 북한이 49개 나라와 수교를 맺고 있는데 공간수교국은 9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게 굉장히 축소되고 있죠. 지금 박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네트워크, 북한을 둘러싼 북한의 비이성적인 외교행태를 UN 차원에서 끊을 수 있는 굉장히 고리들을 차단하는 그런 효과가 있는 것이죠.

[앵커]
북한으로서는 굉장히 큰 타격일 것 같은데요. 북한과 아프리카 나라들 어떤 공통적인 정서적 기반이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그렇죠. 사실 냉전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하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실은 서구의 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반서방정서가 굉장히 강합니다. 사실은 비동맹외교라고 해서 70년대에 사실은 중국이 중심이 되고 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 세계라는 강력한 세계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북한이 거기에 동참을 해 가지고 강력한 유대관계를 가졌죠.

그런 부분들이 공통점들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데 북한은 그동안 아프리카에, 없는 살림에도 아프리카 국가들한테도 달러로 지원을 한 적도 꽤 있어요. 우간다에도 90년대 초반에 자기들 경제가 아주 안 좋을 때인데 360만 달러를 우간다에 지원한 적이 있습니다. 그 정도로 공을 들이면서 비동맹외교에 공을 들여왔죠.

[앵커]
공군조종사 훈련을 맡길 정도로 전통적인 우방이다 이렇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기자]
공군조종사 훈련뿐만 아니라 지금 세네갈 같은 곳이 아프리카 부활이라고 흑인노예상에서 굉장히 큰 것인데 김정은 정권 때 사실 북한 돈으로 건립을 해 준 것이거든요. 그래서 북한 나름대로 냉전 때 진영외교라고 해서 사회주의 외교를 했는데 탈냉전 이후에는 이른바 자기들 나름대로 군사적인 분야가 아니라 문화외교를 많이 펼쳤죠. 북한식 이른바 소프트외교를 펼쳐 왔는데 이게 지금 한계에 봉착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각국에서 북한을 안 도와주는데 이번에 우리가 3월 초 대북안보리 결의안 2270호를 발의할 때 그 이면을 잘 봐야 됩니다. 그 안보리 수뇌 의장국이 앙골라였어요. 앙골라도 우간다 좌측편, 중동부에 있는 국가인데 이 앙골라 역시 굉장히 친북성향의 국가죠. 그런데 의장이 우리 손을 들어줬습니다. 인권문제 등. 굉장히 이거는 사실 당시에는 중요한 의미였고 조태열 지금 외교부 2차관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이미 우리가 대통령이 지금 갑자기 간 게 아니라요. 지나간 얘기지만 과거부터 계속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수교 문제, 본국을 한번 방문해 달라 이렇게 한국 정부의 계속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정 때문에 못 가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동부 아프리카 연합국을 보는 건데, 지금 가는 나라들이 대부분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거든요. 군사적으로 굉장히 친밀했는데 결국은 그런 외교의 축이 대한민국으로 넘어왔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사실 북한과 아프리카 국가들과는 무기와 관련돼서 군사협력 문제로 우리가 초점을 맞춰 봐야 되는데요. 북한 무기가 쌉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돈이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북한의 싼 무기를 그러니까 주로 소화기쪽이죠. 소총이라든가 조그마한 아포라든가 이 정도 수준인데. 사실은 북한이 2000년대 초반까지 2~3억달러 정도의 무기를 수출했어요. 대부분이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리고 무기 수출을 하면 그다음에 그것을 훈련시키기 위해서 교관이 따라가죠. 그런 협력을 했는데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한의 무기 수출도 사실은 제재에 포함이 되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한 6000만불에서 3000만불 이렇게 많이 줄었죠.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들이 아프리카 국가들하고 북한하고 무기 협력을 통해서 맺어진 어떤 강한 유대가 점점 느슨해지고 있는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사실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외교가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앵커]
그렇군요.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있었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요. 박근혜 대통령이 우간다 순방 중에 교민 간담회에서 북한의 해외 근로자들의 실태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거든요. 어떤 발언들을 했는지 듣고 오겠습니다.

[박근혜 / 대통령 : 지금 (북한) 민생이 너무너무 어렵다 보니까, 아시다시피 지난번에 중국에서 13명이 가족도 아닌데, 얼마나 그런 탈북을 도모하기가 어렵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가 되어서 13명이 한꺼번에 탈북을 했거든요 그리고 또 여러 나라의 외화벌이로 가 있는 북한 근로자들도 자꾸 이탈을 해가면서 어려움을 도저히 더 견딜 수 없는 그런 상황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앵커]
교민간담회에서 나온 발언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기자]
일단 오늘 몇몇 일간지에서도 나왔죠. 지금 흐름이 일회성이 아니고 계속 저런 형태의 탈북러시가 펼쳐질 개연성이 굉장히 크죠.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가 있는 러시아 북한 근로자들이 있는데 오늘 올 초에 분신사건도 있었않습니까? 그 유서도 남기고요. 굉장히 자기가 노력해서 벌었는데 본인이 취하지도 못하고 다 북한 당국에서 뺏어가고 또 아파도 병원에 못 간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근로자들이 대략 한 5만 내지 6만 명 정도. 두바이에도 한 2000여 명이 있어요.

그런데 두바이에 과거 제가 취재를 가서 본 적이 있는데, 먼발치에서 봤는데도 굉장히 열악한 시설에서 있어요. 그런데 거기 사는 북한 근로자들이 두바이의 휘황찬란한 건물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겠죠. 이런 부분에 대해서 결국은 선택할 수 있는 게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제3국,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오는 경향이 많을 것이다 이런 뉘앙스로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앵커]
북한의 엘리트층 이탈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정작 김정은 정권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는다 이런 전망들이 나오는데 박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뷰]
그렇죠. 북한이 통제, 감시 체제가 사실은 지난 70년 동안 굉장히 강하게 되어 있어서 지금 거의 북한 체제는 어떻게 보면 제도화된 감시 통제 체제다 이렇게 볼 수 있는데요. 특히 엘리트들한테는 3선 감시체제라고 해서 예를 들면 군장교라고 하면 정치공관이 감시하고 보위사에서 감시하고 참모부에서 감시를 하고 세 군데에서 감시를 해서 그 감시 보고 따로따로 올리고요.

또 평양에 있는 최고위층 같은 경우에는 매 시간 뭐하는지가 감시당하면서 김정은 서기실에 보고가 되고 조직지도부에 보고가 되고 있고 그러니까 꼼짝을 못하게 돼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러니까 북한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하면 5명이 모이면 그중에 1명은 보위부 밀정이다. 그러니까 말도 함부로 못하는 거죠. 그 정도로 감시체제가 아주 굉장히 강화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시장이 굉장히 확산돼 있고 뇌물이 일반화 돼 있다 보니까 과거처럼 통제체제가 아주 강한 그런 통제체제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앵커]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환경인가요?

[인터뷰]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북한의 제재 저항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라고 하지만 과거보다는 그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앵커]
북한 주민들의 삶은 점점 더 힘들어져서 탈북행렬은 계속되는데 북한의 쥐어짜기는 계속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주제어를 보시고 더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70일 전투, 종료 한 달도 안 됐는데 또 속도전. 김주환 기자, 이번에는 200일 전투네요?

[기자]
북한의 속도전은 크게 과거에 천리마 운동, 이 속도전의 유래를 보면 김일성이 과거 항일 빨치산운동을 할 때 전쟁에 대비해서 뭐든지 빨리빨리 해야 했어요. 전투나 전쟁은 언제든지 끝났죠. 그러면 보상을 해 주어야 되는데 이미 100년이 가까워오는 그때 방식을 지금도 써먹고 있죠. 공산주의 종주국인 소련과 중국조차 아주 오래 전에 폐기했던 방식이죠. 정치동원이 있고 지금까지 노력 동원이 나중에 충성자금 바치는 그런 세금을 강제로 추가로 바치게 하는 이런 형태가 있는데요.

이것이 효과가 없는 게 너무 당연하죠. 경제를 북한 나름대로 경제활성화를 해야 하는데 아이디어를 받아내고 뭘 해야 되는데 TV에서 보시면 무조건 돌 들고 뛰어나르고 그러다 보니까 최근에 김정은이 자기네 치적으로 얘기했던 백두산 애국청년 발전 3호기 같은 경우에는 준공 3일 만에 누수현상이 나타나고 평양에서는 건물이 붕괴돼서 사람 60여 명이 죽고 이런 부작용이 발생하는 거죠.

[앵커]
지금 나오는 화면이 오늘 화면이라고 하네요. 의료용 탄소생산시설을 시찰하는 화면인데요. 박사님, 빠른 시간 안에 성과를 내고 하고 이것을 당의 치적으로 선전하는 게 쥐어짜기, 200일 전투 이런 것인데 그런데 김주환 기자가 얘기했듯이 효과도 없는데 왜 이렇게 계속 반복하는 겁니까?

[인터뷰]
사실은 지금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를 하니까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모자라죠. 그런데 기업을 그대로 놔두면 기업은 있지만 노동자들은 전부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기 때문에 그 기업이 성과를 못 올리죠. 그러니까 통치자금을 밖에서 못 들여오면 안에서라도 짜서 만들어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기업을 가동시키고 생산성을 높이면 그 돈은 김정은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는 거죠. 그런 부분이 있고.

또 한 가지는 지난번에 70일 전투를 당대회 이전에 했는데 사실은 문제가 많지만 북한의 공직사회 보고체계는 거의 상당 부분이 허위보고를 합니다. 그러니까 70일 전투의 성과가 과장돼서 김정은에게 보고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거 하니까 되는구나 이렇게 해서 김정은이 다시 200일 전투 다시 또 해 보자, 5개년 경제발전계획 전략을 하려면.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에 김정은도 알고 어떤 최고위층도 알고 있을 겁니다. 이것이 문제가 있고 성과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걸.

그렇지만 북한 내 시장이 너무 확장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확산된 시장 체제로는 자기 정치적인 체제 결속을 유지하고 자기한테 충성을 유지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러니까 200일 전투, 노력동원 군중 동원이라는 건 결국 사회주의의 기본원리인 집단주의를 강조하고 그다음에 체제결속을 강화하고 그런 목적으로 지금 200일 전투를 다시 해서 전체적으로 당대회 이후에 북한 체제를 좀더 정비하자 이런 의미가 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앵커]
어린 나이랑 경륜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서 김정은이 앞으로 속도전에 더 집착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는데. 김정은 이모인 고용숙 씨가 인터뷰를 한 내용이 화제가 됐어요. 다음 주제어를 보시고 또 얘기를 나누어보겠습니다.

8살 때부터 후계자를 자각하고 있었다, 이런 인터뷰를 했는데요.

[기자]
김정은의 생모가 고영희 혹은 혹자는 고용희라고 말을 하는데 재일교포죠. 그런데 지금 인터뷰 했다는 여동생도 재일교포입니다. 재일교포인데 평양에 들어 가서 살았는데 고영희가 세 명을 낳았지 않습니까? 김정철, 김정은, 밑에 여동생인 김여정 이렇게 낳았는데 이제 본인이 과거 스위스 유학 시절에 가서 이모니까 어려서부터 챙겨줬다는 것인데.

우리가 고용숙이라는 인물이 작년 말이죠. 국내 어떤 탈북인사들이 자신들, 로열패밀리의 허위사실을 유포했다고 하면서 국내법원에 재판을 청구했던 당사자가 이번에 미국 한 신문과 인터뷰를 했던 이모죠. 이모의 진술이 맞다고 보는 게 김정은의 생일에 대해서 82년생이냐 85년생이냐 또는 1월 8일 생이다 이렇게 설왕설래가 있었는데 84년이 맞다고 주장하니까 그 부분에는 나름대로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앵커]
그런 것 같더라고요. 내 아들하고 나이가 같다 이렇게 증언한 걸 보면요. 그런데 82년생이다, 84년생이다.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겁니까?

[인터뷰]
중요하죠. 김일성이 1912년생이거든요. 김정일이 사실은 극동 지방에서 낳았지 않습니까? 41년생이에요. 그런데 본인 생년을 42년생으로 고쳤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30년 차이가 나게. 그다음에 김정은의 생일이 84년생인데요.

[앵커]
끝자리가 안 맞군요.

[인터뷰]
안 맞죠. 82년생으로 해야만 다시 40년. 북한에서는 정주년이라고 해서 5, 10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딱 끊어지게 30년 차이, 40년 차이 이렇게 만들기 위해서 82년생으로 조작을 했지 않았느냐.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습니다마는 그러다 보니까 국내에서 김정은이 82년생이 아니냐 이렇게 논의가 나왔는데 그 전부터 김정일 요리사인 후지모토 겐지가 얘기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앵커]
84년생이다.

[인터뷰]
네.

[앵커]
이번에 이모가 얘기한 걸로 봐서는 84년이 맞는 것 같다, 이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요.

[기자]
이번 당대회 때 국내 전문가들이 엄마인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할 개연성이 있다고 하는 그런 전망이 있었는데 안 했습니다.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에 엄마인 고용희가 이른바 백두혈통이 아니거든요. 일부 학자는 그 표현력을 일본에서 낳았기 때문에 후지산 혈통이다. 그래서 엄마에 대한 우상화를 하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지 않느냐. 여러 가지 조작들을 해야 되니까요. 그런 와중에 이모가 미국에서 이런 발언도 했기 때문에 이런 보고를 받는 김정은으로서는 여러 가지 불편할 겁니다.

[앵커]
그런데 김주환 기자, 그동안 언론접촉을 기피해 왔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전격적으로 인터뷰를 한 배경이 어디에 있을까요?

[기자]
지금 LA타임즈 기사로 알고 있는데요. 원문을 보면 당장인 게 아니고...

[앵커]
워싱턴포스트입니다.

[기자]
워싱턴포스트로 정정하겠습니다. 굉장히 개인적인 인터뷰 요청은 올해 했고요. 뉴욕 인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산다고 하는데, 이사를 해서 당장 최근에 인터뷰를 했는지 미리 했는지, 기사가 송고된 시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의아스러운 게 평양에 들어 가서 살고 싶다. 그리고 본인이 어떤 대외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다 이 부분은 의아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인터뷰]
그런데 그게 내용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여태까지 밝혀진 내용만 가지고 보면 북한에 대해서 굉장히 우호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자기가 스위스에서 도망을 쳤지만 아직까지도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이라는 표현을 김정은에게 전달하고 싶은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북한에 대해서 반감을 표현했을 때 자칫하면 북한에서 암살조가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변에 대한 위협을 느낄 수 있죠. 그런 부분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것도 하나 있을 것이고.

[앵커]
그런 부분에 의해서 인터뷰가 이뤄졌을 것이다.

[인터뷰]
그다음에 지금 바깥에서 미국에서 사는데 세탁소를 운영한다고 하거든요. 저도 미국에서 공부를 해 봤습니다마는 그렇게 쉬운 삶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북한 삶이 혹시 그립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볼 수 있겠죠.

[앵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주환 YTN 정치안보 전문기자 김진무 박사와 함께 북한 소식 들어봤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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