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파일]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걸어온 길

[인물파일]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걸어온 길

2016.02.29. 오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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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원로들의 별세 소식이 부쩍 자주 들려오는 요즘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새벽엔 소석,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가 타계했습니다.

일제 시대부터 6·25 전쟁을 거쳐 민주화 과정까지 파란만장한 한국의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해온 삶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이철승 전 대표는 아주 당찬 학생이었습니다.

한국인을 무시하는 일본인 선생을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우리 성을 일본식으로 고치게 한 창씨 개명을 끝까지 거부하며 일제에 저항했습니다.

해방 뒤에는 우익 학생 운동을 이끌며 미국과 소련에 의한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반탁 운동에 앞장섰고, 6.25 전쟁 당시에는 피란 학생들과 전국 학련 학도의용군을 결성해 낙동강 전선을 지킨 애국자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이철승 전 대표는 제3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주에서 당선되며 정계에 진출합니다.

이후 7선 의원을 지냈고, 국회 부의장을 거쳐 신민당 대표까지 오른 한국 정치계의 거목입니다.

1954년 초선 의원이었던 이철승 전 대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은 여전했습니다.

당시 국회 부의장이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을 사사오입, 반올림 논리로 가결시키자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단상에 뛰어올라 멱살을 잡은 일화도 전해집니다.

1970년대 신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경쟁을 벌였죠.

'젊고 유능한 정치가들이 정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40대 기수론으로 바람을 일으켰는데요.

결국 DJ가 대선 후보로 나서게 됐지만, 당시 당선으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유신 이후, 반독재 투쟁을 주장하는 야권 정치인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요.

이른바 '중도 통합론',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며 박정희 정권과 싸우면서도 안보 면에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 YS, DJ 양 김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혹자는 이철승 전 대표를 두고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한국 정치사에 주연만큼 빛난 조연이셨다."

민주주의와 반공을 추구하며 한국 정치사에 큰 획을 남긴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

한국 근현대사에 남긴 고인의 헌신을 두고두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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