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통] 故 김영삼 전 대통령, 그가 남긴 것은

[뉴스통] 故 김영삼 전 대통령, 그가 남긴 것은

2015.11.26. 오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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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늘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며 영면에 들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일생은 우리 현대 정치사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처음 국회의원이 된 1954년부터 대통령에서 물러난 1998년까지 40여 년간의 시간은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빛과 그림자, YS가 남긴 유산,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봤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직설화법을 좋아했습니다.

유신 시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이 한마디는 '부마항쟁'과 '10.26'으로 이어져 전 국민의 마음속에 민주화의 불씨를 틔었습니다.

상도동 자택에 연금된 채 무기한 단식에 들어갈 당시에도 "나를 힘으로 막을 수 있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양심을 빼앗을 수 없다"는 말로 숨죽이던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대변하기도 했는데요.

3당 합당의 국면에서는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며 복잡한 상황을 함축해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또 IMF 위기 속에서 대통령 임기를 마친 고인은 "영광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는 퇴임사를 남겼습니다.

이러한 직설적인 표현은 매사 명쾌한 것을 좋아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데요.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말은, 후배 정치인들에게 큰 울림으로 남았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또 다른 유산은 바로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을 처음 한 것도 김 전 대통령으로 알려졌는데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될 성부른 나무'는 정치 성향에 얽매이지 않고 끌어안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상도동계에 이른바 '영입파'가 다수 포함된 것도 이 때문인데요.

영입파의 대표적 인물로는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홍준표 경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있습니다.

손 전 고문은 1993년 YS에게 발탁돼 경기 광명 보궐선거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고 YS 대통령 임기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역시 1993년 YS에 의해 감사원장으로 등용되며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죠.

홍준표 경남 지사는 2011년 한나라당 대표로 당선된 후 가장 먼저 YS의 상도동 자택을 방문할 정도로 YS를 따랐는데요.

김문수 전 지사는 1980년대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이끌던 운동권 출신이지만, YS는 1994년 민주자유당에 김 전 지사를 입당하게 이끌었습니다.

상도동계 사람 중 막내 격인 인물은 'YS 키즈'로 불리는데요.

'YS 키즈'에 속하는 인물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같은 당 서청원 최고위원 정의화 국회의장 등이 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장례 내내 빈소를 지키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임을 자처하며 상주역할을 하기도 했고요.

또 정의화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을 기리며 "정치개혁과 폭넓은 인재발굴을 통해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킨 선구자"로 추억하며 애도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굴한 인재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 입니다.

이제 모두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의 인연도 각별한데요.

두 사람의 인연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부민 사건의 변호를 맡은 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는데요.

김 전 대통령은 13대 총선에서 새 인물을 찾고 있던 통일민주당 총재 YS의 눈에 띄게 됐고 YS의 지원에 힘입은 그는 부산 동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하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90년 3당 합당을 기점으로 갈라서게 되는데요.

당시 노무현 의원은‘민주화 운동의 배신이자 밀실야합'이라고 정면으로 비판하며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였던 YS와 결별했습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는데요.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YS를 '사람 장사'의 천재로 회고하며 YS의 인재 영입 능력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허성우, 경희대 교수]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사실은 이회창 전 총재 그다음에 노무현 대통령, 또 이명박 대통령. 자기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것이나 다름이 없죠. 여야 모두에게 관심을 갖고 존경받는 그런 인물이 되지 않았나. 만약에 김영삼 대통령께서 1992년도에 합당을 하지 않고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또 다른 평가가 될 수 있겠죠. 그러나 어쨌든 3당 합당을 통해서 여권의 지지기반을 확보해서 대통령이 됨으로써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거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역사의 궤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김영삼, 김대중, 이 두 사람은 무려 30년간, 한 세대를 아우르며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탄생시켰는데요.

양김이 남긴 유산 역시 현재까지 정치 지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각각 부산 경남과 호남, 충청 등 지역을 기반으로 합종연횡에 의한 집권 모델을 만들어냈는데요, 이는 오늘날 지역 갈등이라는 과제를 남겼습니다.

동교동은 DJ계로 통하는 일명 계파 정치는 오늘날 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로 이어지며 통합이라는 과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면에 든 오늘, 때마침 서울엔 눈이 내렸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 정치사의 큰 획을 그은 김영삼 전 대통령.

고인은 갔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 유산은 영원히 남았는데요.

앞으로 그 유산을 계승하는 길은 남은 정치인들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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